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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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명랑한 갱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를 접했다. '내가 강도를 하는 게 더 낫겠다.'는 황당한 이유로 모인 4명의 은행 강도는 이번에도 어처구니 없이 위기에 몰리는데, 상대가 워낙 저질이다 보니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처럼 조직 자체가 와해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엉뚱한 개그 캐릭터 못지않게 빌런을 묘사하는 것에도 재주가 있는 이사카 코타로는 - 데뷔작 <오듀본의 기도>의 시로야마, <사신의 7일>의 혼조, <마리아비틀>의 왕자가 대표적일 텐데 이 작품의 히지리도 유형은 달라도 이들에 견줄 만한 악인이었다. -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한 악당을 선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놓고 악당이 아닌 법으로는 재단하기 애매한 기레기 중에 상기레기인데 엄연히 범법자인 명랑한 갱들로선 맞서기 은근히 껄끄러운 상대라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였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미카엘이 기자로서의 윤리를 아웃사이더인 리스베트에게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명랑한 갱은 셋 세라>에서는 윤리 따위 완전히 씹어먹은 개차반 인성의 기자가 나와 공분을 산다. <마리아비틀> 이후로 또 한 번 오랜만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통해 허구의 대상에게 적대심을 품었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적절한 방식으로 응징을 당해 쾌감이 있었다. 무분별하게 혀를 놀린 자, 마찬가지로 혀에 자멸하리라. 다시 말하지만 히지리가 저지른 짓에 비하면 응징이 약한 감은 있으나 경찰이 아닌 명랑한 갱들로서는 이게 최선이었으리라. 아니, 오히려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응징을 했기에 그나마 더 쾌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체포를 당하는 정도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완벽주의자이자 거짓말을 간파하는 나루세, 인간에겐 환멸을 동물에겐 무한한 애정을 품는 구온, 생체 시계를 가진 숙련된 드라이버 유키코, 그리고 카페 사장이나 은행 강도도 어울리지 않는 참된 예능인 교노까지, 완벽한 개성과 케미를 자랑하는 '명랑한 갱'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인 듯하다.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은행 강도 이야기를 가볍고 명랑하게 써도 되는지 고민한 모양이지만 명랑한 갱들이 기본적으로 선을 넘지 않는 의적에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소설이 꼭 올곧은 얘기만을 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에 신작을 냈다고 한다. 독자로서 참 다행인 일인데, 전작에 뒤지지 않는 밝고 건전하고 재밌는 은행 강도 이야기의 신작을 본 것도 좋지만 작가가 고민을 한 보람이 있게 재밌는 한편으론 묵직한 부분도 있어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온갖 저급하고 분별 없는 기사를 써갈기는 기레기, 그 기레기의 기사를 아무런 분별도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독자라고 내세우며 '알 권리' 운운하는 기레기... 대책 없는 악순환에 휘말려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주목한 이 작품은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상상 그 이상으로 쓰레기 인성의 소유자인 히지리를 통해 우리가 악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법의 심판 그 이상의 무언가임을 불현듯 깨닫게 해준다. 그래, 이런 놈에겐 사형보다 더한 것이 필요하다. 


 히지리가 소름 끼치는 이유는 간이 부었는지 명랑한 갱에 관한 기사를 쓰겠다고 당사자들한테 직접 협박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정당화하는 천박한 사상 때문인데, 비록 무력은 별 볼 일 없을지언정 사상이 너무 위험해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사상이 위험한 놈들은 간혹 죽음조차 큰 위협이 되지 않기도 하는데, 히지리는 그 정도로 맛탱이 간 작자는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 왔는지 어느 정도는 깨달을 수 있는 방식으로 - 물론 히지리는 반성하지 않겠지만. - 그를 파멸로 몰고 간 명랑한 갱의 작전은 제법 적절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통쾌하기 그지없다. 

 아마 이 시리즈도 후속작이 계속 나올 듯하다. 이사카 코타로의 '킬러' 시리즈, '사신 치바' 시리즈와 더불어 이 시리즈도 만족스러웠는데 이 작가의 시리즈는 늘 옳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최초의 시리즈 캐릭터인 구로사와 등장하는 작품을 요 몇 년 동안 못 읽은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아직 이 작가의 작품 중 못 읽은 작품이 많아 참 설렌다. <칠드런>의 후속작 <서브마린>도 읽어야 하고... 바쁘다 바빠! 

스스로 은인이라 칭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 32p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아마, 그 말도 거짓말일 거예요. - 66p



인간의 나쁜 부분은 타인에게 조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야. -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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