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입니까 산하세계문학 14
리사 울림 셰블룸 지음, 이유진 옮김 / 산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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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어렸을 적 기억의 이면을 추적하는 이 추리소설은 반전의 내용만큼이나 기억상실증 내지는 입양된 사람이 겪을 만한 정체성 혼란을 그린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는 입양아가 아니기에 - 내가 아는 한 - 한 번도 뿌리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없어서 이처럼 뿌리를 찾으려는 심리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에서 오는 절박함은 확실히 전달됐다. 

 스웨덴의 만화가이자 한국인 입양아인 리사 울림 셰블룸이 실제로 겪은 일을 다룬 <나는 누구입니까>는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되는 상당히 이상적인 작품이었다. 기억의 첫 페이지 무렵부터 스웨덴인 부모로부터 스웨덴어와 문화를 체득하며 스웨덴인으로서 살아가지만 겉모습은 영락없이 한국인이기에 - 자신의 기억 속에선 방문해본 적도 없음에도 - 주변 스웨덴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까지 당하는 고충들이 초반부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내 출산을 하면서 대체 자신은 무슨 연유로 고아가 돼 입양에 이르렀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며 부모를 찾으려는 전개도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이 1부까지는 적어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부모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도 제대로 못 찾아주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부모를 찾으려는 주인공을 귀찮아 하는 기색이나 대충 대충 일을 하는 모습은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주인공은 그런 공무원의 태도에도 의지해야 하지만 제3자인 내가 봤을 때는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안 찾고 만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렵게 찾은 부모도 - 막판에 가면 과연 진짜 부모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 통역을 비롯한 여러 여건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되지 않는다. 사연이 어떻든 간에 부모 자식의 만남은 감동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작품 속의 묘사는 감동적인 척을 하는 것에 훨씬 가까웠고 그마저도 흐지부지되거나 이쯤 했으니 됐다며 서로 갈 길 가자고 부모가 먼저 말하기까지 한다. 

 이 책은 자의든 타의든 자기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나 그 아이를 타국에 입양시키는 국가를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누구 한 명을 제대로 탓하기 힘들 만큼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의 주요 비판 대상은 여차저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요청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다.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입양을 보냈으니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 입양된 사람들 입장에선 부모를 궁금해 하고 찾는 것은 충분히 가져봄직한 이야기기에 100% 공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 좋아 입양을 보내는 것이지, 사실상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타국에 떠넘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판국에 이 무슨 적반하장의 태도인지... 주인공의 씁쓸함이 실감나게 전해져 독자인 나까지 참담할 지경이었다. 이건 뭐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도 아니고. 


 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오기 한참 전에, 88 서울 올림픽 경기를 TV로 시청하며 저자와 저자의 같은 한국계 스웨덴인 아이들이 모여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초반부의 장면은 참 만감이 교차하게 되는 장면이다. 스웨덴인 사이에서의 부적응을 한국, 자신들을 버린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달래려는 듯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은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과연 할 짓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모든 고아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정 인종을 입양하기 원하는 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해당 인종이 있는 국가에서 아이를 유괴하는 브로커도 있는 판국이란 대목을 읽었을 땐 이 세상엔 아이를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적잖구나 하는 인상까지 받았다. 최근에 본 영화 <블랙 위도우>도 고아를 킬러 집단으로 만드는 무지막지한 비밀 조직이 등장하는데 현실 세계도 그에 못지않게 무지막지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가 아이들을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내용의 무거움과 달리 아기자기한 그림은 오히려 내용을 더욱 심각하게 돋보이게 해준 것 같고, 반대로 대놓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듯 나레이션으로 점철된 전개 방식은 가독성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자아냈다. 추측이지만 이런 가독성의 아쉬움이 2017년 스웨덴만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만화상' 후보작에 그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기뻐할 만한, 그러니까 한국인으로서 기뻐할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간혹 국적을 막론하고 한국계 외국인이 유명인으로 자라면 '국위선양'이라고 호들갑 떠는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이는 전혀 국위선양이 아니잖은가. 국위선양이란 말이야말로 정말이지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말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하자면 역시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할 것 같다. 자랑스럽고 어쩌고 이전에, 그만큼 새겨 들을 만한 내용의 작품이니까 말이다. 

한국은 우리가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도 전에 우리를 버렸다. 우리가 가족과 뿌리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입양 아동이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는 일에 대해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다. - 3부 ‘나에겐 나를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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