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패턴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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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본 문화에 관한 가장 뛰어난 안내서라는 명성이 자자한 고전으로 '이후에 나온 일본 문화 책들은 다 이 책의 주석에 불과하다' 라는 평까지 있을 정도며 이 책의 대상인 일본인들에게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옛날부터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연식이 좀 된 책이기도 하고 번역 버전이 무수히 많아 뭘 읽어야 할는지 몰라 손이 잘 안 갔는데 내 나름대로 면밀히 검토한 결과 연암서가에서 펴낸 이 책이 가장 가독성이 높아 보여 큰 마음 먹고 읽게 됐다. 

 혹여나 책의 명성이 무색하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건방진 걱정을 해봤으나 -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이 너무 허다했기에... -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물론 책이 집필된 배경이 50년대인 만큼 만약 이 책이 10년 뒤, 20년 뒤인 일본을, 고도 성장을 이룩한 일본을 분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듯 이 책은 문화 인류학 서적치고 굉장히 불리한 조건을 안고 집필됐는데, 전쟁 중인 만큼 일본에 대한 연구가 절실했지만 전쟁 중이었기에 정작 일본 땅을 밟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에 이민 온 일본인 이민자나 그 2세들을 대상으로 한 발자국 떨어진 지점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제약이 일본의 이질적인 부분을 객관적이고 예리하게 포착해낼 수 있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된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흥미진진했다. 때론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하더니,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아까 말했듯 10년 뒤, 20년 뒤, 아니면 지금 일본을 보고서 루스 베네딕트가 다시 <국화와 칼>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일본의 이질성을 묘하게 과장되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로 기술하는 부분이 거슬리긴 했지만, 저자는 일본이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이전의 군국주의적 마인드를 버리고 나라를 재건하길 기원하며 글을 마쳤다. 그런데 그런 저자의 눈에 나라를 성공적으로 재건했으나 군구주의적 마인드는 실로 교묘하게 숨기면서 그 어떤 반성이나 성장도 없이 과거 모습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 환멸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일본인의 '온', '기리', '기무' 등 여러 개념을 논리적이고 풍부한 예시를 들어가며 접근한 동시에 그 안의 아름다운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자세마저 느껴졌기에 국화와 칼을 동시에 숭배하는 이중성이 극심해진 일본의 현재 모습에 저자로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참 가까우면서 또 무척이나 다르기에 서양인이 바라보는 일본의 이질성이 어떤 것인지 읽기 전부터 궁금했었다. 개인적으로 '온', 보은에 대한 일본인의 철저한 마인드보다도 그 일본인들의 마인드를 신기하게 여기는 저자의 논조가 내게는 더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같은 동북아 문화권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일본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 걸까. 날 때부터 삶에, 특히 천황한테 빚을 졌다는 일본인의 마인드엔 동조하기 힘들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기 꺼리는 심리만큼은 나도 동의할 수 있어서 반대로 그 심리를 신기하게 여기는 저자의, 나아가서는 미국인들의 심리도 만만찮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의도와 달리 이 글은 일본의 어떤 점을 이질적으로 느끼는지 기술함에 따라 미국이란 나라의 실상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삶 속에는 자신의 역할과 행복을 정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있다고 믿는 미국이지만 의외로 성에 대한 관념은 일본과 비할 수 없이 보수적인 점 등 - 얼마 전에 접한 <시녀 이야기>가 떠올라 이 대목이 묘하게 헛웃음을 유발했다. - 알게 모르게 일본 못지않게 미국의 단면도 부각됐다. 원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일본 말고 다른 문화에 대해 쓴 저자의 책도 적잖이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다른 버전은 접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2019년에 출간된 이 <국화와 칼>을 고른 건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가독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책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에 대한 공부도 철저히 한 번역가의 노력과 그 노력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옮긴이의 말도 여러모로 이 책의 신뢰감을 높여 아직 본문을 읽지 않은 상태임에도 이 책을 완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비록 책의 집필 시기가 너무 옛날이란 것과 내용 자체도 일본 땅을 밟지 못한 상태에서 집필됐다는 한계 때문에 불충분하거나 너무 옛스럽거나 나쁜 말로 뇌피셜에 불과한 듯한 부분도 있어 - 더불어 번역가의 안내가 없었으면 한없이 지루했을 파트까지 - 뒤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 책이 고전에 등극한 이유나 상징성은 전해져 역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별개의 문화권의 나라를 이해하고자 했고 성과도 톡톡히 거둬낸 작가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전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 도전이나 다름없었는데, 정말 간만에 그 도전이 가치 있게 마무리돼 뿌듯한 채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인생의 진지한 분야에 대한 행동과 관련하여 어떤 일본인을 가리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심한 욕설이 되며, 그보다 더 심한 욕은 ‘바보‘ 이외에는 없다. -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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