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9.7 














 처음에 제목을 봤을 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무슨 로봇도 아니고 개조라니,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조시켜주는 걸 감사히 여기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주인공이 꼰대라 오히려 순화된 표현이구나 하고 인상이 바뀌었다. 또 한편으로 개조란 단어가 참 적합한 단어란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구제라든가 갱생이라든가 쓰려면 훨씬 자극적인 표현이 있을 텐데 개조라니, 난 이 단어에서 로봇을 떠올렸다. 최근에 로봇과 관련된 소설을 읽어서 그런 걸까? 작품 중반에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계기가 마치 로봇이 특이점을 맞는, 이른바 개조를 당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켰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자에겐 모성이란 본능이 있기에 남자는 바깥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된다고 진심으로 믿는 인간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는 주인공 혼자만이 아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주인공 세대는 다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실제로 정년 퇴임을 할 정도의 연령대인 일본 아저씨들의 생각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씁쓸한 건 주인공과 같은 세대라 할지라도 아내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주인공의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하는 짓이 판박이란 것이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할 얘기가 대단히 많은 작품이지만 작중에선 적어도 성별을 근거로 꼰대의 원인을 분석하진 않는다. 




 주인공이 딸하고 설전을 벌일 때마다 '그럼 내가 구닥다리라는 거냐'고 물을 때마다 딸은 '구닥다리냐 아니냐의 문제라기 보다 그냥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이라 선을 긋는다. 이 작품은 정년 퇴직한 아저씨들이 가정에서 외면을 당하는 사회 문제를 신랄하고 통찰력 있게 들여다본다. 단순히 그들이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국가 차원에서 잘못된 교욱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어느 정도 동정적으로 접근한다. 남자들을 육아 걱정 없이 회사에서 마음껏 굴릴 수 있도록 모성이란 신화를 만들어 여자를 집안에 가두고 자연스레 집안일이나 육아를 여자나 하는 하찮은 일 - 주인공은 아예 일도 아니라서 가정 주부는 부러운 삶이라 생각한다! - 로 생각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해 사회 생활에 자발적으로 매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후 맥락을 떼고 적으니 꼭 음모론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이른바 '정부의 농간'의 실체를 체감하고 자기 신념을 꺾는 것은 바로 자기를 자애롭게 길러주셨다고 믿어온 어머니가 실은 자애로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의 입을 통해 듣고 난 다음부터다. 그 전까지는 아이는 엄마가 최소 3살까지 키워야 한다 -> 그래서 며느리가 일을 하는 건 무슨 가당찮은 일이냐고 생각했고 아이 돌보기는 모성을 가진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 그래서 남자인 자신이 아들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손주들을 돌보는 게 당치도 않다고 어디에서건 불만을 호소했다. 하지만 자신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났다는 기본 전제가 틀렸음을 들은 순간 주인공은 자신의 논리의 구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어쩌면 소설 분량에 맞추느라 주인공의 개조가 약간 급작스런 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로봇도 아닌데 기본 전제가 틀렸다는 걸 계기로 점차 바뀌어 나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잠시 입을 삐죽거렸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첫인상은 딸에게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며 모성을 운운하는 등 딸이 대꾸를 해주는 걸 감사히 여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답이 없는 작자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일단은 대화가 오갈 수 있다는 건 미약하나마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빠른 시일 안에 가능하진 않을 테지만 학력이나 어느 회사 출신이냐를 떠나서 주인공이 가족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아저씨라면, 말년에 그들에게 비참하게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당연히 방법을 찾으리라 결론을 내린 것일 터다. 그래,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말처럼 말이다. 


 중간에 아저씨의 꼰대 마인드는 정부의 농간으로 인한 가슴 아픈 결과라며 사뭇 그들을 동정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가족들로부터 돈 벌어다주는 기계 이상 이하로 취급되다가 버려지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경고를 이 소설에선 놓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이 꼰대 마인드가 단지 중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유난히 그들의 아들들에게 찰떡같이 계승되고 있는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주인공보다 조금 사정은 낫지만 미래에 아내로부터 버림받으리라 뻔히 예상되는 주인공의 아들의 모습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을 단지 여자들 통쾌하라고 집필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비참함이 감도는 이야기지만 저자 가키야 미우의 필력 덕에 읽히기는 술술 읽힌다. 이 작가의 책을 접할 때마다 제2의 오쿠다 히데오란 생각이 늘 드는데 이번에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이 있는데 난 예전부터 채만식의 <치숙>처럼 암 걸리게 만드는 언행을 보이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결국 그 주인공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궁금해서 잘 읽히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그 주인공이 끝까지 변화하지 않고 한심하게 살아가더라도 반면교사 삼으며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는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일종의 공공의 적이 있으면 가독성은 자연스레 확보되는구나 싶었다. 욕하면서 보게 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물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전자에 해당한다. 참으로 감동적이게도 이 이야기에서 실질적으로 개조 계획을 당하는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아들이다. 그 계획은 주인공이 자기 며느리와 상의한 끝에 실행된다. 주인공은 이미 아내로부터 버림받았고 딸도 지고 못 사는 성격이라 맞받아쳤을 뿐 근본적으로 자기 아버지인 주인공을 포기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자력으로 스스로를 개조한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맞벌이하면서 주말엔 자기만 쉬고 아내한테 집안일을 미루는 자기 아들의 꼬라지를 보고서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 주인공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상의하는 장면은 다신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은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육아 문제 등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과장되지 않고 충분히 있음직한 상황과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선사한 수작 중의 수작이었다. 지금까지 접한 작가의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가독성이 좋았고 완성도가 높았다. 읽으면서 나도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작품이다. 가장 변화가 필요한 꼰대들이 과연 이 책을 읽는다고 미동조차 보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애당초 꼰대들이 책을 손에 쥐어준다고 해서 펼칠 것 같지도 않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 책의 주인공은 꼰대로서 약과 중의 약과가 아닌가 싶었다. 






 p.s 이 책을 읽고서 '말을 해줬어야지, 똑바로 말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알아?' 만큼 상대를 열불나게 만드는 말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싫어하는 상대에게 일부러라도 해야지 라는 음흉한 생각도 들었다. 

뭐, 아무튼 뭐가 됐건 간에 지금처럼 아빠가 나설 때는 위기 상황만으로 해 뒀으면 좋겠어.

위기 상황이란 건 평생토록 없어. - 3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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