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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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우리나라 순수 문학 단편집을 접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첫 번째랑 두 번째 수록작을 지나면 급속도로 흥미가 식게 된다는 것인데 이 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아주 전형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뒤로 갈수록 수록작들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평이하게 읽혔는데, 아주 다행인 것은 앞선 두 작품 '위험한 독서'와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보통 단편집의 수록작들의 과반수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판단됐을 경우 과감하게 아예 읽지 않은 셈치기도 하는데, 앞에 배치된 두 수록작 덕에 이번엔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뒤의 작품들도 언젠가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위험한 독서'도 처음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접했을 때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말이다. 



 '위험한 독서' 


 사람의 인생의 흔적을 마치 독서한다는 식으로 묘사하며 풀어낸 게 제법 중독성이 있던 작품.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했을 터인 2000년대 초반에 싸이월드를 비롯한 미니홈피가 왕성해질 무렵이었는데, 그 시대상을 독서 치료사인 주인공의 내면을 통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애정, 이 작가가 얼마나 다독하는지 등이 여실히 전해지는 것도 매력적이었고 스토커처럼 그녀의 일상을 훑는 듯한 주인공의 심상 세계가 나중에 어떻게 좌절되는지 밝혀지는 결말도 인상적이기 그지없었다. 

 나도 지금보다 블로그 활동을 좋아할 때, 혹은 간간이 SNS에 접속할 때마다 눈길이 가게 되는 몇몇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소식을 올리지 않으면 조마조마한 적이 있는데, 이 작가는 그런 조마조마함을 변태적인 감정이자 보편적인 감정이기도 하다는 식으로 주목해 내심 찔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관음에 관한 극히 세련된 소설이지 않았나 싶다.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노동에 관련된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동기가 추천해준 작품이다. 노동 환경의 고충을 너무 무겁지 않게 묘사하려는 내 목적에 아주 딱 맞는 작풍의 소설 - 동기야 고맙다. - 이었다. 더군다나 현직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 이 소설만큼 공감의 연속을 안겨준 경우도 흔치 않아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모든 것이 규격화된 맥도날드를 타겟으로 한 테러에 노출되자 한낱 알바생에 불과한 주인공과 동료들이 매니저가 지급하는 특별 수당에 현혹돼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전개가 왜 이리 웃기면서도 짠하던지... 

 짠한 것은 비단 주인공의 노동 환경만이 아니었다. 주인공의 가정 환경은 평범하면서도 애잔함을 자아냈는데,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패스트푸드 알바처럼 비교적 험한 일을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 도저히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함의는 다소 평범한 구석이 있었으나 씁쓸함에도 어딘지 발랄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여운과 애정이 남는 작품이었다. 그나저나 작가가 패스트푸드 알바 경험이 있는 건가, 아니면 지인으로부터 이야길 많이 들은 걸까. 난 맥도날드가 아닌 버거킹에서 일하긴 하지만 작중 묘사 중에 실감나던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서...... 만약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묘사가 아니라면 이 작가의 정보 수집 능력 및 실감나게 표현하는 문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정말 작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모든 약효의 팔십 퍼센트는 플라시보 효과다. 플라시보 효과로 치자면 책만한 물건도 없을 것이다. 부작용도 거의 없다. 중독? 환영할 만한 일이다. - 12p



화폐로 교환되지 않은 위험은 한낱 허깨비에 지나지 않았다. - 58p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명예의 근거로 삼아야 해요. - 93p



모든 게 책으로 보이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읽는다. 희망에 들뜨지 않고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들은 대개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을 견뎌낸 어떤 것이기 마련이니까. -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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