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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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4







 스포일러 : 이 책의 스포일러는 물론이거니와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누이 구루미의 <이니시에이션 러브>, 츠츠이 야스타카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에 관한 언급까지 나온다. 서술트릭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까 부득이하게 다른 작품과도 비교하게 됐다.



 서술트릭은 '이 작품은 서술트릭을 다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스포일러라 할 만큼 보안 유지가 관건인 트릭이다.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 트릭이지만 이놈의 보안 유지 때문에 남들에게 그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아 두루뭉술하게 '읽어보면 안다'라는 말만 해야 하는 게 단점 아닌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서술트릭을 사용했다는 걸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길 서술트릭은 늦게 내는 가위바위보처럼 치사한 구석이 있어 자신은 최대한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게끔 서술트릭을 사용했다는 걸 밝혔다고 한다. 발상도 참신하고 패기도 있고 무엇보다 공정한 게임이 가능하게끔 노력했다는 말이 사실여부를 떠나 호감으로 비쳐져 트릭의 완성도가 의심되면서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뻥 뚫어주는 신'


 남몰래 막힌 변기를 뚫어준 의인을 찾는다는 다소 사사로운 사건을 다룬 작품. 사건의 규모는 시시하지만 나름대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잘 살렸는데 후반에 밝혀지는 의인의 정체나 사건의 진상이 너무 무리수인 나머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반전은 황당했는데, 반전의 내용도 황당하지만 그 반전의 내용으로 하여금 메시지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추하게 느껴졌다. 그냥 놀라움으로 승부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흉내를 내려니까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 강했다. 트릭의 발상이 괜찮으면 뭐하는가,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는데. 이건 명백히 수준 미달이었다.

 솔직히 말해 도입부에 화자가 푸는 잡다한 썰(?)이 제일 재밌었다. 이 부분에서도 약간 우타노 쇼고가 연상됐는데... 우타노 쇼고가 엉성한 필력을 갖고 있으면 이런 느낌인 걸까 싶었다. 나 원 참.



 '등을 맞댄 연인'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사람을 성과 이름까지 한 번에 부르는 게 아니라 주로 성을 부른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선 사람을 성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데, 이런 문화적 배경에 착안하여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추리소설이 은근히 많다. 이 단편의 경우엔 이누이 구루미의 <이니시에이션 러브>가 떠올랐는데, 심플하지만 교묘한 착각을 유도한 게 괜찮았다. 오히려 사건의 해결보다 훨씬 눈길이 갔다.

 그렇지만 가장 눈길이 간 것은 단연 작중 두 남녀가 맞이하는 결말이다. 간만에 이상적이기 짝이 없는 연애담을 보니 신선하기까지 했는데, 이 결말도 첫 번째 수록작처럼 작중 트릭의 내용과 어울리는 느낌은 없었지만 스토리 자체가 재밌어 큰 불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


 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그 트릭이었던 게 신기했다. 아마 기억하기론 이런 종류의 서술트릭은 처음 접한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 몰입하는 상황은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인 터라 되려 의표를 찔렸던 것 같다. 그래서 맥빠지기도 했지만... 이건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렇게 쓴 작가가 존경스럽기도 했다. 아니, 얼굴에 철판을 깔지 않고서야...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


 이 작품은 내용이나 반전엔 큰 감흥이 없었지만 반대로 반전으로 하여금 작가가 도출해낸 메시지는 인상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수록작과 정반대격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의 선입견을 이용해 시대를 혼동시키는 트릭은 의외로 흔한 것 같은데 그 혼동을 근거로 고전을 읽는 묘한 재미에 대해 서술한 것이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영양가 있게 읽힌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빈궁장의 괴사건'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이 모여 사는 기숙사에서 펼쳐지는 대환장 파티. 이 작품도 사건의 정체나 반전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지만 작가의 대담한 트릭 구사엔 정말 기가 막혔다. 작가는 대놓고 별개의 인물임을 명시했으나 독자들이 게을러서 그 부분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의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이 생각났다. 한 명인 줄 알았더니 둘이었더라는 반전의 내용 자체는 단순한데 그 내용을 숨기지도 않았단 게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이 연출만큼은 정말 인정한다.

 여담이지만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은 츠츠이 야스타카의 위안부 관련 망언 때문에 현재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어느 서점,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다. 망언의 수준이 너무 저열했던 만큼 납득은 가는 현상이지만 작품 자체의 퀄리티는 높았기 때문에 씁쓸하기 그지없다.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 '작가 후기'


 마지막 두 작품의 내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벳시라는 희성을 가진 인물이 모두 별개의 인물이었다는 것과 후기를 빙자해 작가가 사족을 거하게 썼다는 것 정도다. 작품 내용이 난이도가 있어서라기 보단 내 컨디션 때문에 안 읽혔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결말이 썩 재밌다는 느낌을 못 받아서 그냥 과감하게 읽히지 않았다는 것으로 독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서술트릭은 쓰는 입장이나 읽는 입장이나 큰 어려움이 따르는 까다로운 트릭이다. 트릭을 잘 다루면 독자의 편견을 뒤집으면서 엄청난 깨달음과 감동을 안겨주지만 잘 다루지 못하면 그냥 무리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서술트릭의 모든 것>의 수록작 중에는 무리수에 지나지 않는 작품이 몇 있어서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서술트릭과 때론 틈새시장도 패기있게 개척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다수의 수록작들이 스토리와 트릭의 균향감이 별로였고 무엇보다 어정쩡하게 메시지를 넣으려다 역효과만 낳은 경우까지 있어 패기만 좋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잘 쓴 서술트릭을 좋아하는 것이지 서술트릭 그 자체,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번 기회에 그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한테 참 고오마움을 느꼈다. 물론 이건 비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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