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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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이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 로봇은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비롯됐으며 그 말은 동명의 희곡에서 처음 고안된 용어다, 라는 말을 접하고 몇 년이 지난 다음인지 모르겠다. <로봇>은 - 원제는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다. - 정확히 100년 전인 1920년에 창작된 희곡으로 체코의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카렐 차페크에 의해 집필됐다.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거니와 특히 로봇, 인공지능이란 소재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왜 이제서야 읽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오래 전에 집필된 지라 다소 투박한 구성에다 설정도 느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하나 고백을 하자면, 고전에 읽고서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거의 의례적으로 혁신적이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로봇>만큼 그 말을 진심으로 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로봇에 대한 담론이 A to Z까지 담겨졌던 것이다. 후에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그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익히 다뤄진 논쟁들이 이미 <로봇>에서 다뤄진 것들이란 게 - 그러고 보니 작중 로봇의 설정이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칸트를 연상시킨다. - 소름 돋는 일이었다. 로봇만큼 인간에 대해 돌아보기에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을 100년 전부터 시사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희곡답게 모든 전개를 대사로만 처리하느라 로봇을 묘사함에 있어 한계가 있던 건 분명 아쉬웠다. 인간의 모습을 갖췄으나 대놓고 영혼은 없다고 공장 직원들이 못을 박지만 헬레나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로봇들은 인간에게 반기를 들게 되고, 인간은 수세에 몰려 결국 멸망하고 만다는 게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로봇의 태동, 로봇의 변화, 로봇의 반란, 로봇의 지배까지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단편적인 대화로 전달되는 통에 극적인 면이 덜했다. 이건 내가 희곡을 불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이 작품의 경우엔 공연이 아닌 대본으로만 접해서 더욱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공연을 직접 봤으면 좋겠는데...

 캐릭터 구성이나 설정은 그런대로 적절했는데 서막에서 1부로 넘어갈 때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면서 헬레나가 느닷없이 도민과 결혼했다는 건 지금 봤을 땐 좀 어처구니 없는 전개로 비춰졌다. 남자가 구애했다고 그렇게 간단히 부부가 된다는 게 요즘 통념에선 여간 황당한 게 아니었지만... 헬레나를 세상 물정 모르고 무턱대고 로봇의 권리만 주장한다거나 인간성의 회복 운운하느라 일을 그르친다는 식으로 묘사한 걸 보면 그 당시 여성관이 정말 편협하긴 했다는 생각에 씁쓸하게 읽혔다. 그래도 비중이며 역할이며 상당히 의미 있는 캐릭터인데... 만약 오늘날에 공연한다면 이 부분을 현대적으로 손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작 그대로 공연했다간 공연히 논란만 낳을 수 있으므로.


 위에서도 말했지만 100년 전 작품이란 점이 무색하게 주제의식과 통찰력은 지금 읽어도 혁신적이었다. 인간의 외양을 갖췄지만 영혼이 없으므로 도구에 불과하다고 대놓고 하대를 받던 로봇들이 조금씩 인간적인 요소가 주입되자 바로 인간의 가장 안 좋은 부분인 폭력성을 배워 그대로 인간을 말살시킨다는 대목은 인공지능을 마주함에 있어서 우리가 꼭 염두에 둬야 할 반면교사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뿌린 씨앗이므로 우리에게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인데 원작자인 카렐 차페크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이 작품을 대단히 근원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며 집필했던 것 같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자와 피지배자,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이를테면 나와 타자 사이에 같음과 다름이 있고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를 어디까지 의식하고 상대를 대하겠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초반의 갈등은 로봇에게 영혼은 있다고 하는 헬레나와 그에 반박하는 공장측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헬레나는 근거 없이 너무 맹목적으로 로봇을 동정하는 반면에 공장측은 로봇을 철저히 상품으로 여기며 필요에 따른 조치가 아닌 이상 로봇에게 뭘 더 어떻게 대우할 생각 자체를 않는다. 둘 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양새를 취하는데 가만 들어보면 사실 두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로봇을 완전히 인간으로 보긴 힘들지만 엄연히 인간의 외양을 띄고 있고 인공적이긴 해도 인간처럼 사고할 줄 알기에 덮어놓고 인간이 아니라고 보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초로 로봇이라 명명된 작중 로봇들은 실제로 우리가 로봇하면 떠올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신체를 가진 인공 생명체라서 이런 논란을 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만약 나중에 이러한 로봇이 우리 현실에 등장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이 유기체가 아닌 기계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데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성능이 우리의 상상을 상회한다는 건 더 이상 따로 언급해야 할 만큼 새삼스런 일이 아니므로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의 도래는 기정사실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단지 100% 인간과 같지 않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로봇을 배척한다면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 한들 결국 인간에게 앙심을 품게 되지 않을까?

 인공지능을 다룬 대부분의 SF, 디스토피아물은 위와 같은 상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카렐 차페크의 <로봇>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결말은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이 아닌 공통점이 무엇이고 그렇다면 인간인들 로봇인들 다를 건 없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작중 로봇의 신체에 대한 설정이 워낙에 하이테크놀로지라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윤리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인간의 나쁜 점이 아닌 인간의 좋은 점을 체득한 서로 사랑하는 로봇 둘이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킨다면 과거의 인류는 잊혀지고 새로운 인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낙관적으로 말하자면 아마 그 새로운 인류들은 과거의 인류가 범한 잘못을 조금은 덜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린 결말의 이 희곡은 씁쓸하긴 해도 인류의 정의를 자문함으로써 제법 여운을 남기고 있다. 꽤 멋진 연출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고전을 넘어선 세련미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금은 작품의 유명세가 많이 잊혀지기도 했고 -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생각보다 읽은 사람은 적은 걸 보면... - 읽은 사람들끼리는 역시 옛날 작품이라 할 만한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흔히 말하듯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라는 게 바로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체코 문학이라 하면 카프카의 <변신>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로봇>을 접하고 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체코의 문학들도 접하고 싶어졌다. 국내엔 체코의 작가라고 하면 카프카와 쿤데라가 유명한데 두 작가가 체코어가 아닌 각각 독일어, 프랑스어로 집필한 걸 생각하면 체코어로 집필 활동을 한 차페크야말로 체코인들에게 있어 가장 우러러볼 만한 작가일 듯하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국내에도 작가의 작품이 제법 소개됐던데 그 작품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제목만 봐도 재밌어 보이는 작품들이 많던데, 기대된다.

아, 도민,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만큼 낯선 것은 없다네. - 163p




흔히들 이야기하듯 고상한 진실과 사악하고 이기적인 잘못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하나의 진실이 그에 못지않게 인간적인 다른 진실과 대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에서 가장 극적인 요소라고 본다. -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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