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 -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주오일여행자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6.9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여행의 끝. 이 허무한 여행의 끝을 살펴보는 여행 에세이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는 나름 부지런하게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있어 제목만으로 흥미를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 역시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2주를 여행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국하기 전엔 그렇게 한국이 그립고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도 막상 돌아오면 그게 하루를 가질 않는다. 책에서 저자가 '영원히 끝나지 않은 여행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일'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난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게 여행은 힘들고 지루한 일상 속의 나 스스로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보상만 받다 보면 마음이 점점 편치 못하게 되는 법. 그럼에도 귀국하는 날은 역시 허무하고 귀국하고 나면 더 허무한 건 부정할 수 없기에 책의 본격적인 내용이 궁금했다.

 여행 에세이인데 여행의 끝을 얘기한다니,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펼쳐들었든데 생각보다 감흥이 없는 내용이라 놀랐다. 책의 첫 번째 챕터인 '여행이 끝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한 거 있죠'라는 문장과 밑에 '밑줄긋기'에다 따로 옮겨 적은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너무 감상적이고 했던 말 또 하는 식인 터라 읽히기는 빨리 읽히되 머리에 크게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나는 이런 책을 두고 '볼 수는 있어도 읽히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에 딱 맞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저자가 여행 때 찍은 사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어디의 풍경을 찍은 것인지 몰라도 - 솔직히 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사진은 잘 찍더라.


 여행 이야기, 그것도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걸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을 다른 사랑을 잊으려 한다는 말처럼 결국 여행을 다른 여행으로 잊으려 한다는 건데, 이런 태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걸 책의 마무리가 아닌 책의 중간에 넣었다는 것이다. 엄연히 '여행의 끝'에 대해 말하겠다고 공언했으면서 결국 다른 여행 에세이처럼 여행을 가는 이야기를 쓴다는 게 개인적으로 불만이었다. 결국 무슨 내용이든 잘 쓰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난 이렇게 컨셉을 확실히 지키지 않는다는 게 뭔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전에 작가가 여행의 끝에 대해 한다는 얘기가 내 성에 차질 않았기에 드는 불만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보면 여행의 끝을 얘기하는 여행 에세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는지 저자는 여행이 끝나서 다시 여행을 추억하는 식으로 글을 전개했다. 나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블로그에 최소한의 기록은 해두니 사람 생각은 다 똑같구나 싶었지만 난 저자가 그 이상을 얘기해주길 바랐다. 대충 짐작하기로 저자는 무슨 돈과 여유와 배짱이 있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2년 가까이 해외를 여행했는데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집에서 눈치가 보이고 한국 사회에 적응이 좀 힘들고 어째 친구들에게서 뒤쳐진 것 같은 느낌 - 어째 그런 느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뒤쳐졌다. - 이 들었다 하는 얘길 더 했어야 했다. 그걸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고 나서 여행의 후유증을 다른 여행으로 잊는다는 말이 나왔으면 뭔가 울리는 바가 있었을 텐데 내가 기대했던 것들이 전체적으로 가볍고 지극히 개인적인 어투로 적혀있어서 에세이보단 일기를 읽은 느낌밖에 안 들었다.


 에세이 아무나 쓰는 거라고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난 그런 말 진짜 싫어한다. 어쨌든 내가 글을 전공했기 때문도 있고 에세이 자체가 아무나 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물론, 그런 말을 하게 만드는 에세이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 싫어한다. 그래서 난 다른 말을 하겠다. 이 책은 그래도 나름 흥미로웠지만, 내 여행을 돌아보는 게 좀 더 낫겠다 싶었다고. 결국 책을 읽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기억이 나는 건 제목인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와 각 챕터의 문장들이라니 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느 날 문득, 아주 먼 자리까지 떠나고 싶을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여행을 시작하고 끝내며 사는 게 우리 삶의 전부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의 별자리를 만들어 보자.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결국 별자리를 완성하기 위한 작은 흔적일 뿐이다. 자리를 옮겨야 비로소 완성되는 별자리처럼, 우리 인생도 점처럼 찍힌 여행의 좌표들을 이어 붙여야 마침내 완성될지도 모르니까.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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