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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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추리소설의 제목이 <이유>라니, 대체로 소설의 제목이 단순하면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경우가 달랐다. 포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제목의 단순함은 곧 작품의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화려함 없이 단순하게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는 이 작품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는데 이는 단순히 분량의 탓은 아니리라 본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내 입장에선 이 작품은 차라리 분량이 짧은 편에 속하는데, 70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 분권이 된 여러 작품에 비해서도 <이유>는 유독 가독성이 떨어졌다. 사건의 양상은 물론이고 철저하게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전개되는 게 눈길을 잡아끌지 못했고 등장인물은 너무 많아서 집중이 흐트러지기 십상이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들였을 노력이나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능력,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결말까지 써내려간 필력은 인정하지만 때론 그런 장점만으론 수긍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유>의 경우가 딱 그에 해당하고 심지어 르포르타주 형식부터가 기획 단계서부터 이어진 악수惡手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9년 전 고등학생 때로, 그때는 상상 이상으로 방대한 세계관과 디테일이 감탄스러워 꽤나 좋은 인상이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작품이 전체적으로 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이야기하는 바는 매우 간단한데 이는 작품의 제목이 주는 단순명쾌함에 주목하면 더욱 자명해진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의 작품답게 <이유>는 말 그대로 작중의 모든 사단이 벌어진 이유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의 원점이겠고 다르게 보면 새삼스럽고 유난스런 주제의식이라 볼 수 있겠는데 이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자의 필력이 작품의 평범함을 어떻게 상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위에서 말했듯 아무래도 난 이 작품이 정말로 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일단 확실히 해두고 싶은 부분은 이 작품은 결코 미시적인 성격의 작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무를 보느냐, 숲을 보느냐 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미야베 미유키가 숲에 있는 모든 나무를 힘 닿는 대로 보는 작가라고 생각할 테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은 작가가 너무 많은 나무를 살펴보느라 각각의 나무의 모습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오히려 숲의 윤곽만 기억에 남는 아이러니함, 혹은 역효과를 낳고 있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각의 캐릭터에 디테일한 설정을 부여하는 게 미야베 미유키의 장점인데 <이유>에선 그런 면모가 쉬지 않고 인터뷰 형식으로 반복되고 설명될 뿐이다. 그렇기에 작품이 소설 같지 않은 나머지 사건의 윤곽이 흐릿하게 다가왔다.


 처음 읽었을 땐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의 일본인들의 일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자못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은데 9년이 지나 다시 읽기까지 비슷한 배경과 주제의식의 작품을 접해봤기 때문인지 이번엔 큼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전개도 이건 좀 안일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르포르타주 형식 일색이라 식상했고 가장 별로였던 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 직접적으로 사건을 일으킨 야시로 유지라는 캐릭터를 미스터리한 걸 넘어 너무 두루뭉술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600페이지가 넘게 본작에서 보였던 서술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기도 하거니와 결국 사건이 폭발한 경위를 상상에 맡기거나 주변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추만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 분량에 어울리지 않게 결말이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매우 점진적이긴도 사건의 내막에 다가갈수록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결말에서 갑자기 증발해버리니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과거에 좋게 기억에 남은 작품이라 다시 읽은 건데 이번 2회차 독서 때는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어렵사리 완독했다. 다 읽고 나니 다시금 미야베 미유키가 싫어졌는데 <모방범>을 다시 읽을 예정이었던 터라 그 작품도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시 읽으면 더 감탄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미야베 미유키는... 옛날에 읽었던 작품이든, 새로 접하는 작품이든 간에 아무래도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판단해야겠다.

저런 곳에 살면 사람들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거 같아요. - 4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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