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박수 소리 - 또 다른 언어,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
이길보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8.9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는 한마디로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가리키며 이들은 날 때부터 들리지 않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를 동시에 경험한다고 한다. 이러한 코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인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나 일본 소설 <데프 보이스> 등을 접한 뒤 적잖이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까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이길보라였다. 일전에 <그건 혐오예요>라는 책에서도 접했던 저자는 이 책과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했다. 아마 추측하기론 우리나라에서 농인에 대해 얘기하는 창작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듯해 이렇게 책까지 읽게 됐다.  

 영화랑 책의 내용이 어디까지 똑같은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책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느꼈던 관객들의 감상에 대해 더 자주 얘기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 자신의 얘길 듣는 것 같았다'며 저자에게 감상을 들려준 전국의 코다 관객의 이야기에다가 저자의 자전적인 얘기도 곁들여져 코다라는 존재가 상당히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초반에 언급했던 영화나 소설은 아무래도 픽션이라서 - 개중에는 실화 바탕의 작품도 있지만 - 코다라는 정체성이 주인공 개개인의 개성으로만 느껴져던 것에 비해 이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선 순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란 생각됐던 것이다.


 지금까지 코다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만났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걸까. 여타 장애인과 비교해도 유독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청각장애인처럼 그들도 단지 내 눈에 잘 안 보였던 걸까? 아무튼 그렇다 보니 책에 적혀진 저자의 자전적인 내용들이 적잖이 신기했다. 귀가 들리지 않아 경제 활동에 제약이 있었던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 밑에서 청인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통역사를 도맡았던 것, 그렇게 통역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은행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모를 수가 없게 된 것, 그래서 세상 물정을 일찍부터 알게 된 것 등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읽혔다. 자전적인 얘기를 해서 그런지 가독성과는 별개로 퍽 진실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저자가 코다이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상상이 자극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공항에서 아버지와 직원 사이에서 통역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나 드라마 장면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어머니한테 시달리는 장면 등이... 이런 일상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도 다 좋았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농인들의 현주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작중에서 저자와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갔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공항 직원들부터 간단한 수어가 가능해 주인공이 통역할 필요가 없었던 것에서 시작해 아예 농인 전문 대학까지 있었다는 내용들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독자인 나 역시 문화 충격을 느낄 만한 부분이었다. <그건 혐오예요>에서 이길보라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는데,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완 달리 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이 보인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은 없는 사람, 혹은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으로 배척하지만 외국에선 그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놓는다고.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이는 작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면 더욱 명확히 다가온다.


 이길보라 작가의 자전적인 책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보편적인 부모 자식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읽기 전에 코다인 작가라서 엄청 특이한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려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말을 통역하느라 창피하고 곤혹스러운 경험이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게 또 나와 당신들과의 끊을 수 없는 유대의 일부라고 저자는 술회했다. 이걸 보니 청각장애인이나 코다처럼 사회에서 구분 짓는 용어같은 건 진실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가 될 수 없고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 들리지 않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불편하긴 하지만 문제될 것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저자와 저자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겨준 여러 관객의 이야기 덕에 나와 타인 사이의 다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나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나는 어디까지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재보는 것 자체가 실례고 어리석은 건 아닌가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 책과 동명의 영화가 있다. 지금까지 글로만 접했던 저자의 연출 실력은 또 어떨지 기대하면서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