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7.7






 최근 쓰려고 하는 소설 때문에 참고 삼아 읽었는데 생각보다 충격적이라 멘탈이 살짝 흔들렸다. <편의점 인간> 때도 이상한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에 비하면 그 작품을 쓸 때는 그나마 정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 본인이 인정하듯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만 실린 소설집이었는데 이것 참... 대단하긴 하다. 솔직히 어떤 의미에선 좀 감탄했다.



 '살인출산'


 표제작이자 중편으로 200페이지 되는 책에서 60%가 넘는 분량을 차지한, 이 소설집의 인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약 10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10명을 출산하면 사람을 한 명 죽일 수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세상은 완벽한 피임이 이뤄져 성 관계는 애정 행위일 뿐, 더 이상 어떤 우발적인 임신과 출산이 발생하지 않아서 인구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기는 인공 수정으로 낳을 수밖에 없어서 그 세계는 대리모의 역할을 - 남자도 인공 자궁을 통해 수행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자원하게끔 저런 법률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을 낳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죽일 기회를 가진다, 이런 논리가 합리적이고 실로 명예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가상의 미래는 우리 상식을 아득히 초월해 약간 역겹지만 나름의 논리가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작가가 밝히기를 기존 우리들의 세상과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세상을 통해 상식과 평범의 전복을 꾀하면서 진정 상식과 평범이란 무엇인가 독자 스스로 반문하게끔 하는 게 작품을 쓴 이유라고 했다. 엄연히 디스토피아지만 원래 디스토피아가 작가가 말한 측면으로 읽기에 대단히 좋은 설정이라 나 역시 무리없이 읽어나갔는데... 지금 시점에서 비정상적인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나마 소설에 품고 있는 호감마저 다 날아가버렸다.


 출산을 10번 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최소 10년은 걸리는 일이다. 사산의 경우엔 카운트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더 걸릴 수 있는데, 여기서 궁금한 건 출산을 자원한 사람들에겐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살의를 유지시킬, 그 정도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출산자 - 작중 용어 - 들이 명예로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가족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데 이유는 출산자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혹시 자기일까봐;;

 주인공의 언니도 약간 비슷한 취급을 당했는데 아기를 10명 낳고서 죽이고 싶다고 지목하는 사람이 정말 가관이었다. 여기서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용인돼 지목한 사람을 죽이는 장면까지는 가히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고도 남을 만했다. 수위의 문제도 있지만 정말 그 세계 기준에 맞춰 살인 장면을 명예롭거니와 - 죽이는 사람은 물론 죽는 사람까지도! - 아름답게 묘사하는 방식이 소름 끼쳤다. 게다가 살인의 이유며 주인공의 선택은 아까 말했듯이 그 세계 기준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아 불쾌감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자연스런 상상력과 세계관의 SF를 기대하고 읽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읽기 전에 한번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엄밀히 말하면 자연스런 상상력과 세계관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나저나 이 작품이 왜 센스오브젠더상 '저출산대책특별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다. 어, 어딜 봐서...?



 '트리플'


 이후 수록된 작품은 다 짧아서 사실 작품보단 콩트나 소설 형태의 설정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일단 '트리플'의 경우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그 작품도 세 명의 결혼 생활을 장편의 형식을 빌려서도 완벽히 그려내지 못했는데 '트리플'은 너무 많은 부분에서 특유의 논리를 비약시켜 당최 설득이 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다수와 연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런 연애 방식이 유행하게 된 계기나 실제로 만나서 연애하는 과정이 생각만큼 당위성이 부족한 탓이다. 그냥 작중 핵심 등장인물 셋의 좀처럼 와 닿지 않는 애정 행각 정도로만 인식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롭지도 않은 게 문제였다. 내가 이해를 돕기 위해 <아내가 결혼했다>를 언급한 게 창피할 정도로.



 '청결한 결혼'


 이 작품은 비교적 평범했다. 성 관계를 전혀 하지 않는 부부가 어느 정도 일반화된 세상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있을 만해서 그다지 참신하진 않았다. 물론 아기를 가지고 싶어 굳이 성 관계 없이 아기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다 열거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나 각자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되는 장면 등은 작가답게 가감없이 그려져서 재밌었지만.



 '여명'


 4페이지도 안 되는 작품. 자살 외엔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 셀프 자살이 유행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이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죽을 장소를 찾아 약을 먹고 죽는다는 내용인데 분량이 너무 짧아 감상이 남고 자시고도 없었다. 성의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고 싶으면, 당신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을 믿는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어요. - 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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