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9.4







 막 찾아 읽진 않지만 한번 읽으면 빠져나오기 힘든 게 본격 추리소설인 것 같다. 본격 추리소설 자체가 공식이나 클리셰 투성이인 장르라 식상할 것 같지만 그래도 막상 접하면 작품마다 다 다르다. 본격이라는 틀 안에서의 변주란 정말이지 읽기 유쾌한 구석이 있다.

 이 책은 우타노 쇼고가 본격 추리소설의 테마 중 하나인 클로즈드 서클을 본인만의 스타일로 다룬 작품집이다. 8년 만에 두 번째로 읽으니까 이 작가의 개성이 그야말로 '냉소'와 '로망', 두 단어로 규정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작인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에서도 그런 느낌이 나지만 이렇게 3개의 단편- 정확히는 거의 중편에 달하는 분량 - 을 읽을 때도 느껴지니 생각 이상으로 본인만의 세계가 확고한 작가인 것 같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표제작이 가장 재밌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뒤에 수록된 두 작품보다 나중에 써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급하게 써서 그랬는지 추리보다 풍자의 요소가 짙었다. 때문에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풍자하는 대상이 본격 추리소설과 거기에 등장하는 탐정들이라 제법 요긴하게 읽혔다. 한마디로 냉소적이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작품이었다. 돈만 밝히며 정의 구현에 관심조차 없는 탐정, 하지만 명탐정의 화신에 걸맞는 두뇌를 갖고 있는 탐정은 그 두뇌를 해선 안 되는 짓에 활용하고 만다. 앞에서 말했지만 추리소설적인 묘미는 떨어지나 추리소설을 코난이나 김전일 같은 작품부터 접한 사람이라면 굉장히 킥킥거리며 읽게 될 것이다. 제목도 참, 쓸데없이 멋있게 지었고...



 '생존자, 1명'


 사이비 종교의 신도 4명이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무인도로 피신한다. 하지만 그 섬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시체로 발견되면서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연쇄살인극이 발생하는데... 범죄자란 신분 때문에 섬에서 구조 요청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꾸 사람들이 살해당한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읽는 내내 불길했고 마지막 범인의 정체나 결말은 범인만의 논리적인 광기 - 광기는 논리적일수록 무서운 법이다. - 가 제대로 드러나서 무서움이 배가됐던 작품이다. 범인의 계획의 마지막 부분이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점은 좀 깼고 트릭의 난이도도 낮은 편이었지만 클로즈드 서클만의 분위기가 잘 살아났고 무엇보다 연출이 뛰어나서 상당히 흡입력 있었다. 8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땐 수록된 3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재밌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이 가장 본격적이라서 본 작품집에선 제일 이질적이기도 했다.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8년 전엔 '생존자, 1명'이 제일 좋았다면 요번엔 이 작품이 제일 좋았다. 저택이나 섬 등 그런 환경이 고립되는 경우는 보통 자연재해인 경우가 많아 긴박감이 최고조를 찍는 연출이 많은데 이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그러한 연출과는 정반대다. 본격 추리소설하면 깜빡 죽는 부부가 자신들의 로망을 현실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리고 스케일에 있어서도 타협이 없는 방식으로 실현해낸다. 이른바 서양식 저택에서 펼쳐진 살인극을 베이스로 연극을 해보자는 내용인데 대학 시절 추리소설 동아리에 소속된 친구들끼리 펼쳐지는 이 연극은 뜻밖의 감동을,  <벚꽃~>과는 결이 다르지만 이 작품도 로망과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표제작이 '냉소'를, 이 작품은 '로망'을 담아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차이점은 전자는 추리소설적인 재미가 평범한 것에 비해 후자는 추리소설적으로도 걸출하단 것이다. 결코 그냥 나오지 않은 서술들 - 화자가 대놓고 강조하긴 하지만 - 에선 조형미가 느껴졌고 관의 특성에 맞는 물리적인 트릭 역시 기발했다. 이 맛에 본격추리를 읽는 것이라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였다. 가히 중증에 가까운 추리소설 애호가의 모습은 처음엔 헛웃음이 다 나왔지만 이내 순수하게 존경하게 되니...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지만 이것도 참 좋은 인생이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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