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답게 살 권리 소송 사건 -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동물들의 고발장
예영 글, 수봉이 그림, 김홍석 감수 / 뜨인돌어린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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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동물이라면 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우엔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있고 하니 여러 생태계의 동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중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당장 소, 돼지, 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린 그들의 맛에 너무 길들여져 당장 포기하라고 해도 쉽지가 않은 실정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물론이고 이미 사회에 대규모로 자리잡은 사업이라서 혹여 전면적으로 금지당할 시 피해를 입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동물이 동물답게 살 권리를 갈취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래도 늘 우리는 어쩔 수 없다면서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이 있다면,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혹시 관성에 젖어서 그 대안을 외면하는 것뿐이라면 지금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 우리들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겐 동물권이 있으니까.


 이 책은 어린이용 도서로 사람의 이익 때문에 동물권이 갈취당하는 것을 동물의 의인화로 표현한 소설집이다. 처음엔 의인화 특유의 생뚱 맞은 화법에 적응이 안 됐지만 엄청난 주제의식 덕분에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상당히 진지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의인화가 대단히 잔인한 연출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이유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곧 동물은 인간보다 하등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생물이라 여기는 커다란 요소일 터다. 그런데 이 책에서처럼 동물들이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리라 상상해보면 당장 입고 있는 옷에 모피랑 털이 얼마나 들어갔고 아까 먹은 고기가 어떤 식으로 내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도 자동적으로 연상돼 실로 기분이 찝찝해지고 만다.



 '강아지 탐정이 전하는 킁킁이의 안부'


 유기견을 추적하는 탐정견의 수사 일지. 가족끼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 강아지 킁킁이를 놓고 올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혼자 킁킁이를 그리워하는 의뢰인과 매일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제대로 책임질 자신이나 각오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킁킁이의 삶이 그려져 자못 가슴이 아팠다. 또 '애완동물'보다 '반려동물'이라 부르게 된 이유가 새삼 피부로 느껴지기도 했다. 외모만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한 동물이더라도 엄연히 가족이고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길들인 것엔 책임이 있으므로 함부로 버려선 안 될 것이다. 결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말이었지만 연출 때문에 끝까지 조마조마하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북극곰 기적이의 출생의 비밀'


 동물원에 언제 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평생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동물원이야말로 인간의 이기심이 미화된 장소라 생각하는데, 단적으로 말해 그곳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동물을 구경하고 싶다는 인간들 때문에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다니, 지나치게 동물을 괴롭히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북극곰은 특히 기온이 완전 다른 환경인 만큼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우울 증세, 자기 새끼에게도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은 인간이고 동물이고를 떠나서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상태라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망가지는 동물의 본능을 보노라니 내가 다 미안했다.



 '토끼 1369번의 마지막 하루'


 인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은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미친 과학자들을 창작물에서 자주 접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실험 동물로 쥐나 토끼가 많다. 때론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 극단적인 설정도 보지만 그럴 때면 상대적으로 쥐나 토끼의 존재감이 옅어지는 것 같다. 생명을 똑같이 하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건만.

 24시간 동안 인간에게 실험을 당하느라 서서히 죽어가는 토끼의 심리를 소름 끼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정말 암울하기 그지없다. 오늘이 끝나면 편해지리란 희망을 갖지만 마지막에 결국 영원히 편해지는 것을 바라다니... 픽션이고 의인화 설정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듣자하니 동물 실험이 곧 인체에 나타나는 효과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고 하고 대안도 있다는데 이제 이런 잔인한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닭답게 살 권리 소송 사건'


 표제작. 인간의 편의를 위해 무지막지하게 좁아터진 사육장에서 알을 낳는 것 외엔 허락되지 않은 닭들이 '닭답게 살 권리'를 호소하며 벌어지는 재판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결국 판결은 보류됐지만 작중에 나온 말마따나 이 재판이 크게 주목을 받은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으리라 본다. 효율을 위해 털을 벗기고 부리를 자르고 좁은 우리에 세 마리씩 집어넣고... 이 문제에 대해서 남들과 똑같이 닭을 즐겨먹는 내게 지적할 자격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 문제는 영원히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내가 닭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려면 어떠냐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같은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경제적인 문제가 깊숙이 관여된 사안이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제 대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잘못된 줄 알면서 그냥 넘어가는 건 할 짓이 못 되니까.



 '경주마 전력질주의 첫째 주 일요일'


 어렴풋이 경주마들도 힘들겠지 싶었지만 그게 말의 본성과 거리가 있어 매년 죽어나가는 말이 많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말이 빨리 뛸 수 있단 점에 주목해 인간은 말을 전력질주하게끔 길들였지만 본래 말들도 뛰고 싶을 때 뛰고 싶은 하나의 자유로운 생명이다. 작중에서 경주마 전력질주가 경기를 치를 때마다 먼저 결승선에 도달하는 쾌감은 분명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쾌감이라 자기도 덩달아 느껴지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말들은 고된 훈련과 경기 전 폭발할 듯한 긴장감 때문에 결코 행복해하지 않는다. 경마장도 동물원처럼 인간의 재미를 위해 동물을 전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정말... 잔인하지 않은가, 우리.



 '밍크 농장에서 온 편지'


 소재나 전개는 유기견과 토끼 이야기와 흡사했지만 가장 잔인하고 슬펐던 이야기다. 인간의 사치품을 위해 털을 바치고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남은 고기는 동족에게 먹이로 던져지는 등 구역질이 나는 내용이 담겨있다. 처음엔 희망을 가졌던 주인공 밍크가 자기 엄마에게 보내는 가상 편지에 점점 희망을 버리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편으로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적는데...... 이런 내용을 쓰는 작가의 내면이 무너지진 않았을지 걱정될 만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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