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Heads 4 - 완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8.4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장르 가리지 않고 몰아보는 와중에 그의 소설 원작의 만화가 눈에 띄었다. 옛날에 만화대여점이 폐업할 때 전권을 싸게 샀는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떻게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인데 지금 시점에선 그렇게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아무튼 무겁게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소심한 예스맨인 주인공 나루세가 강도 사건에 휘말려 머리에 총을 맞는다. 이후 그는 몇 억 분의 일의 기적의 확률로 뇌 수술에 성공하는데 나루세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차츰 익숙해지며 좋아하는 그림과 여자친구를 위해 재활에 힘을 쓴다. 하지만 그때마다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데, 꼭 자기 자신이 아닌 듯한 언동을 보여 스스로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의사들의 해명은 미심쩍지만 큰일로 치부하지 않고 넘기려 하지만...


 말했듯이 지금 보면 설정이 그렇게 참신한 건 아니다. 만화화와 영화화도 이뤄졌을 만큼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만약 이 만화의 작화를 담당한 마세 모토로의 그림체와 연출이 아니었으면 초반에 나루세가 느낀 공포며 이후 변신해가는 혼돈의 과정이 이만큼 강렬했을까 싶다.  <헤드> 4권에도 실린 작가의 오리지널 단편도 보면 비슷한 작풍의 SF에 확실히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SF, 특히 과학적이고 윤리적 화두를 던지는 본편의 매력을 정말 잘 그린 것 같다. 뭐랄까, 어둡고 끈적한 화풍이 정말 잘 어울렸달까.

 이미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본 만화라서 사실 감흥은 이전보다 덜했다. 최근 작가의 <레몬>을 읽어서 비슷한 계열의 작품을 읽고 싶었던 거지만 의도는 반은 맞아들었고 반은 비껴갔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도 작가만의 클리셰인지... 이번에도 인간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 과학 실험에는 높은 분의 입김이 닿아 있어 주인공의 처지나 심리는 더욱 망가지는데 이때 주인공이 취하는 태도가 아주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라서 속이 시원한 한편으로 씁쓸했다. 이 정도면 사실 화두를 던진 게 아니라 답이 거의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지만 그 사이에 낀 탓에 폭주하는 - 하필 뇌 수술이... 아니 애당초 사고를 당해서... - 주인공의 모습이 몰입은 되지만 그 몰입감 때문에 뒷맛이 개운치 못한 그런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화를 보면서 알게 된 건데 마세 모토로가 그 유명한 <이키가미>의 작가란 사실에 상당한 전율을 느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건가 하고 혼자 슬퍼했는데 정말 괜한 걱정이었다. 이제 그 작품을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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