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2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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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아직 작가의 전 작품을 읽지 못했지만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로 하진을 꼽곤 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자국의 천안문 사태 소식을 듣고 절망해 그대로 미국에 살게 됐다는 하진은 이민자로서 외국어로 글을 쓰게 된다. 그런 그에게는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지, 아니면 부던히 노력한 덕분인지 짧고 간결하고 쉽고도 쉽고도 쉬우면서 품위 있는 문장을 구사해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만다. 외국어로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말로만 쉬운 일이다. 난 소설을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읽는 편은 아니고 하진의 문장이 정독이 요구될 만큼 미학적이진 않지만 읽을 때마다 참 본받고 싶은 문장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영미권, 특히 미국 문학의 투박함과 중국 문학의 우아함이 혼합됐기 때문일까? 일전에 난 작가의 단편집 <멋진 추락>을 읽고 '외국에서 먹는 한식'이란 비유를 했는데 이 작가의 경우에는 정말 맛있는 '외국에서 먹는 한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진은 그간 영어로 하여금 중국의 이야기를 썼는데 <자유로운 삶>이란 작품을 기점으로 미국에도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미국, 그 중에서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민자들의 사회에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진이라면 이민자 사회에 대한 남다른 통찰이 있을 터다. 그래서 이 1,000페이지 가량의 소설을 읽는 게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작품답게 금방 읽히고 실제로 적잖은 생각과 감동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렇게 길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작가는 서문에서 아니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주인공 난 우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분신이란 생각이 안 들 수 없고.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은 난 우에 비하면 운이 꽤 편이라고 했는데 역자 후기에 적힌 내용을 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중국 정부가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친모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작가의 처지에 주목하면 난 우와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아픔의 결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역자 후기를 읽고나선 작가와 주인공이 별개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전엔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너무나도 디테일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극적이면서도 일상적이다. 난 우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힘겹게, 때론 도움도 받아가고 차근차근 안정을 찾아가지만 마음 어딘가가 허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와 인물의 행복에 깊이 관여한 키워드는 바로 자유다. 주인공이 고국을 등지고 미국에 살게 된 건 자유 때문이나 다름없다. 국가에 종속되지 않은 채 부패하지 않은 국가에서 개인이란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주창하는 자유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난 우는 그런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 열심히 살지만 아무리 절망하고 또 아무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도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그가 중국인임에도 타지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아이러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해서 무지하긴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자뻑이 심한 한편으로 자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체제 때문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강제로 수그러지는 사회인 것도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작중에선 타국에 살면서도 여전히 자의로든 타의로든 중국의 그늘에 가려진 이민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난 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중국어로 글을 쓰는 것에 더 이상 미련도 없을 정도라 시를 쓰는 것을 포기했고 나중에 시간이 오래 지나 펜을 다시 잡을 때도 영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렇게 중국을 등지려는 그의 모습에 미국내 중국인 이민자 사회의 사람들은 비웃고 경멸하길 서슴지 않는다. 난 우도 강단이 있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출신과 현재 살고 있는 미국이란 장소 사이의 괴리 때문에 그 고립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는 타인에 대한 고립이자 자기 스스로의 본심을 고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자학적인 언행을 보이는 그를 보면 그 내면의 고통이란 게 충격적인 수준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작중의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견해에 기반한 것이므로 약간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나 난 우의 의견에 적잖이 공감했는데, 국가가 국가를 위해 개인에게 자유를 우선하지 못하게끔 한다면 무구한 역사가 있건 국민의 수가 얼마나 되건 어딘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 역시 동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특정 나라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난 우의 고통을 무려 1,000페이지 동안 접했기에 내 의견을 감히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자전적인 얘기이자 가장 잘 쓸 수 있는 얘기일 것 같아 읽기 전에 기대를 좀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디테일해 깜짝 놀랐다. 중간엔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책의 뒷표지에 '두 걸음 나아갔다 다시 한 걸음 물러서는'이란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전개였다. 길고 디테일한 전개 덕분에 주인공 내면에 대한 이해는 넘칠 정도로 가능했는데 일상적이고 게다가 쉽고도 쉬운 문체도 계속 이어졌기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턴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기도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래도 분량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병상련의 원리에 따른다면 이 부분엔 그다지 동의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선 짧다고 느낄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국가에 지배되지 않는 삶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아무리 길고 지루했어도 일단 이 작품은 좋은 이야길 담고 있었고 아직은 다소 생소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하진의 작품 중 가장 중국을 많이 얘기하는 작품이었는데 덕분에 이웃 나라에 보다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기회가 닿는 즉시 작가의 작품은 물론이고 다른 중국 문학도 읽어봐야겠구나 싶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작품의 어떤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와 인민을 따로 본다는 것이다. 나라와 사람은 많이 다른 것이지 않은가. 문화도 마찬가지다.

애국에 관한 헛소리는 작작해요. 애국주의는 당국이 휘두르는 마지막 회초리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걸로 때리죠. - 1권 161p




자유란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면 의미가 없는 거죠. - 1권 214p




내 인생이 엉망이 될지도 몰라요.

그건 흔한 일이죠. - 2권 144p




그래요, 독불장군이 되겠다는 거겠죠.

맞아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보다 우리가 품위 있는 인간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공정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 2권 253p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 - 2권 436p




시인의 작품은 늘 시인보다 좋아야 한다.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다. - 2권 4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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