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바흐의 추측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강석진 감수 / 생각의나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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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수학 선생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얘기를 하다보니 역시나 수학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선생님이 정의하기에는 수학은 한편의 잘 짜여진 문학 작품과 다를 바 없답니다. 문학이 끊임없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듯이 수학 또한 수학자와의 끊임없는 교감을 원합니다. 진정한 소설에는 정당한 플롯이 있듯이 잘 짜여진 공식에는 흐름이 있답니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 오는 한 줄기 감동까지 수학과 같다고 강조하십니다. 과연 그렇지 않습니까?

초기에 수학자는 철학자와 동일시되었고 현대에서도 철학을 겸하는 수학자는 많습니다. 결국 문학이라는 것도 근본적인 믿음의 근거에 관한 비판적 검토이자 그러한 믿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문학적 장치들의 총합이고 보면 수학과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작가의 수학적 명쾌함과 예술 영화에 주는 인터내셔널 센터상으로 인정받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 입니다.

이 책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문구로 첫 장을 엽니다 이 것이 250년간 완전한 증명 없이 방치된 골드바흐의 추측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이 책을 주인공 페트로스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이 평생을 고민한 명제이기도 합니다. 이 명제는 그들의 삶의 매개인 동시에 그들의 삶에서 이룩하고자 하였던 증명인 것입니다. 페트로스와 그의 조카인 '나'가 처음 만나는 것도 수학을 통해서입니다.

젊은 시절, 실연의 아픔을 성공으로 잊기 위해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한 페트로스는 경쟁자 라마누잔의 죽음마저 기쁨으로 받아들일 만큼 증명에 집착합니다.

어느 날‘참인 명제도 항상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괴델의‘불확정성 원리’를 알게 된 뒤 ‘골드바흐의 추측’도 결국 증명할 수 없는 것 아닌지 회의에 빠지기 시작한 그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알게 된 젊은 천재 튜링이 “어떤 명제가 증명 가능한지 여부는 증명해 보기전에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는 사실까지 증명해 내자 자포자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조카인‘나’는 만년의 고요한 생활에 잠겨 있는 페트로스를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삼촌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불운 때문이 아니었어요. 괴델과 튜링도 포기의 핑계를 삼기 위한 ‘신 포도’였다고요!” 어느 날 ‘나는‘ 증명에 성공했다’ 라는 페트로스의 흥분에 찬 전화를 받게 되지만 '나'가 페트로스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페트로스는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사망한 후였습니다. 다행히 그는 증명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는 새미 앱스타인의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페트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의 비결은 항상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우데 있는 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의 인생을 성공하였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 여부를 떠나 앞을 향해서만 걸었기 때문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눈을 가리고 앞을 가보셨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가지 않아서 안대를 벗어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앞을 보고 가기 때문에, 무언가 목표를 정해 놓고 걸어가기 때문에 지금의 나부터 그 목표점까지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내가 겪어나가야 할 시련들이 차례차례 적히겠지요.

그런데 갑자기 눈을 가려 버리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는 이제 목표점을 버리고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결코 쉽지 많은 않은 일 같습니다. 하지만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만든 단이라도 설사 그 위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 단에 올라가서는 반드시 내려와야만 합니다. 그 위에서 평생을 살기엔 너무 좁은 공간이니까요. 하지만 단을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단을 다 만들고 나서는 미련없이 내려 와서 다시 새로운 단을 쌓을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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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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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소나기를 마냥 다 맞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비라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더군요. 우산은 양면성이 있는 물건입니다. 우산으로 인해서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저리어 옵니다.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우산 안의 세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독자의 세계이기 이전에 작가의 세계이기 때문에 독자는 어짜피 작가의 세계다 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산이 있어도 눈을 가리고 갈수 없는 것처럼 작가의 세계를 독자의 세계, '나'의 세계로 체화 시킴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끔씩 팔이 저리어 오기도 합니다. 한번 걸러진 작가의 세계가 아닌 걸러지지 않은 작가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집에 와서는 책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대담을 매력은 단순한 기술과는 다른 인간미 있는 내용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단념하였듯이 '이 시대의 어른'들도 학문적 회의를 겪기 마련입니다. 대담중 최창조, 탁석산,의 '사람은 땅을 닮고, 땅은 사람을 닮는다'에서 최창조는 <이론과 현장의 평가가 다른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이의가 교단을 떠나는 것에 한 몫 했다고 토로하며 <이 때까지 분류해 놓은 가이드라인 정도는 경험적으로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탁석산의 질문에는 앞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권위적 독설적인 대답으로 딱딱해지기 쉬운 부분을 유연한 이론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학자 최창조의 모습에서 그의 이론 '자생풍수'의 완성을 기대 합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원래 내밀하고도 첨예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법. 구체적인 문제 제기와 실제적인 대답 또한 대담 속에서 어우러집니다. 김화영, 이문열의 '90점이 아닌 70점짜리 문학은 가라'에서는 세계 속의 한국 문학의 본질과 교조성의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 작가가 문학을 창작하는 태도의 문제, 문학의 본질과 교조성의 문제 등에 대한 제법 묵직한 문제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의견의 대립 즉 이견 상태에서 토의 과정을 거치어서 의견을 수정, 화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가볍지 많은 않은 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에 가슴 속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김춘수, 이승훈의 한국 현대시, 트레이닝이 덜 되었다' 의 두 사람의 대담은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현대시보다는 서정시를 좋아하던 저라서 그런지 향토적 경향이 강한 서정시는 아마추어적 작품이라는, 그래서 도시성을 가진 현대시로의 탈출이 필요하다는 두 사람의 공통된 주장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안 것으로 신선한 충격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이 밖에도 주옥같은 대화가 두 사람 씩 13편의 대담 속에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머리말에 올려진 '페르세우스의 방패'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페르세우스의 방패란 페르세우스가 방패에 비치는 메두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화석화되지 않았다는 그 방패로 방패 때문에 메두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대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자료 모음이들은이 대담을 현실을 반성적으로 비추어 보는 것 즉 우리 모든 것을 화석화하고 있는 듯한 현실의 온갖 메두사들보다 휠씬 더 날카로운 반성의 시선을 바로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려 했다고 합니다.

책을 덮고 옷이 다 말랐는지 베란다에 나가 보았습니다. 옷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비도 그쳤더군요. 정선한 대화를 듣다보니 신선한 바람이 마음에 깃들었는지 지루한지 모르고 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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