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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소나기를 마냥 다 맞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비라서 그런지 감회가 새롭더군요. 우산은 양면성이 있는 물건입니다. 우산으로 인해서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저리어 옵니다.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우산 안의 세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독자의 세계이기 이전에 작가의 세계이기 때문에 독자는 어짜피 작가의 세계다 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산이 있어도 눈을 가리고 갈수 없는 것처럼 작가의 세계를 독자의 세계, '나'의 세계로 체화 시킴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끔씩 팔이 저리어 오기도 합니다. 한번 걸러진 작가의 세계가 아닌 걸러지지 않은 작가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집에 와서는 책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대담을 매력은 단순한 기술과는 다른 인간미 있는 내용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적 탐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단념하였듯이 '이 시대의 어른'들도 학문적 회의를 겪기 마련입니다. 대담중 최창조, 탁석산,의 '사람은 땅을 닮고, 땅은 사람을 닮는다'에서 최창조는 <이론과 현장의 평가가 다른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이의가 교단을 떠나는 것에 한 몫 했다고 토로하며 <이 때까지 분류해 놓은 가이드라인 정도는 경험적으로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탁석산의 질문에는 앞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권위적 독설적인 대답으로 딱딱해지기 쉬운 부분을 유연한 이론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학자 최창조의 모습에서 그의 이론 '자생풍수'의 완성을 기대 합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원래 내밀하고도 첨예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법. 구체적인 문제 제기와 실제적인 대답 또한 대담 속에서 어우러집니다. 김화영, 이문열의 '90점이 아닌 70점짜리 문학은 가라'에서는 세계 속의 한국 문학의 본질과 교조성의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 작가가 문학을 창작하는 태도의 문제, 문학의 본질과 교조성의 문제 등에 대한 제법 묵직한 문제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담은 의견의 대립 즉 이견 상태에서 토의 과정을 거치어서 의견을 수정, 화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가볍지 많은 않은 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에 가슴 속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김춘수, 이승훈의 한국 현대시, 트레이닝이 덜 되었다' 의 두 사람의 대담은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현대시보다는 서정시를 좋아하던 저라서 그런지 향토적 경향이 강한 서정시는 아마추어적 작품이라는, 그래서 도시성을 가진 현대시로의 탈출이 필요하다는 두 사람의 공통된 주장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안 것으로 신선한 충격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이 밖에도 주옥같은 대화가 두 사람 씩 13편의 대담 속에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머리말에 올려진 '페르세우스의 방패'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페르세우스의 방패란 페르세우스가 방패에 비치는 메두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화석화되지 않았다는 그 방패로 방패 때문에 메두사의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대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자료 모음이들은이 대담을 현실을 반성적으로 비추어 보는 것 즉 우리 모든 것을 화석화하고 있는 듯한 현실의 온갖 메두사들보다 휠씬 더 날카로운 반성의 시선을 바로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려 했다고 합니다.
책을 덮고 옷이 다 말랐는지 베란다에 나가 보았습니다. 옷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비도 그쳤더군요. 정선한 대화를 듣다보니 신선한 바람이 마음에 깃들었는지 지루한지 모르고 책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