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숨그네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마치 시를 엮어서 만드는 시집처럼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만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의도적으로 운율을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시집 같다. 여기서 운율은 압운 같이 자구를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짧은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형식상의 특징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리듬이다. 이 리듬도 엄격히 통제되어 있다기 보다, 대체적으로 그러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현재 이야기가 나오고,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조금 길어진 다른 단편의 경우에는 수용소에서 나와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근래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라 붙는다. 어떤 경우든 대개 마지막 문장은 아포리즘으로 끝난다.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 이야기의 의도적인 리듬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쓸 경우 반대 급부로 그 단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큰 흐름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대신에 사건들 하나하나, 사물들 하나하나의 개별적 의미가 부각된다. 하조베 같은 조어들 또한 이런 효과에 기여한다. 여러 의미의 단어들이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묶이는 것은, 기억의 확장에 따라 사건들의 시간이 묶이는 것의 비유이다. 왜 이렇게 써야 했을까?
이 소설에는 "절대영도"라는 말이 나온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통계역학적으로 볼때 모든 계가 최저 에너지 상태에 있는 경우를 절대영도라고 하며, 이때 계의 에너지는 완전히 확정되어 있다."라고 정의한다. 전쟁은 인간에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권리를 강탈한다. 타인과의 관계 보다 실존의 생존이 절대적으로 우선시 된다. 실존의 에너지는 부동되어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로, 즉 세계로 확장될 수 없으며, 인간은 그것을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전쟁 상황이다. 이 소설의 말을 또 빌리자면 실존의 "배고픔의 천사"와의 대화가 그 어떤 것과의 대화보다 절실한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적합한 서사의 형식은: 수직의 내적인 시간으로 묶여진 단편들이 수평으로 병렬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온도계가 "절대영도"에서 얼마나 민감하게 흔들리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너무나 세밀하게 흔들려서 그만큼 민감한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 소설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훌륭한 많은 소설들이 문학사에 남긴 실존의 절대영도를 벗어나는 인간 특유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소설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