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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서평
#비채서포터즈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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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뒷산을 오른 게 전부다.
높은 산은 눈앞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압박감이 심하다.
내 성격 탓이리라.
무엇을 하든 무조건 끝을 내야 한다는 강박. 시작이 두려워 지는 마음은 늘 끝을 생각하는데서 오는 불안이다.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산은 어떤 목표도 주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늘 마감이 촉박한 프로젝트를 만난 것처럼 조급하기만 하다.
끝을 생각하느라 주변을 살펴 볼 여유가 없었던 내 마음 탓에 온전히 산을 느끼지 못하니, 큰 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소설 속 사람들은 저마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어떤 이는 꿈을 찾아, 또 어떤 이는 사랑을 찾아, 다른 이는 눈물을 찾아.
과거 회상과 현재 산을 오르며 느끼는 감정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후회, 상처, 사랑, 눈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사연도,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오르는 능선도 제각각, 산으로 오르는 입구도 제각각, 어디까지 오르고 어디서 내려오는지도 제각각.
끝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산은 어떤 비난도, 독려도 없었다.
풀꽃 하나가 가는 길을 배웅할 뿐.
그저 바라보는 눈이 달랐다.
산은 그저 가만히 오는 발길과 가는 발길을 받아들였다.
구름을 보는 사람, 하늘을 보는 사람, 풀꽃을 보는 사람, 무지개를 보는 사람.
누구에게도 이것 좀 보라고 자랑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바람 한 점 내어주고, 그늘 한 자리 마련해 주었을 뿐.
산이 내어준 쉼의 순간, 가만히 서서 흐르는 땀을 식히는 동안 산이 내어주는 풍광을 감상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하늘에 삶을 녹여내고, 흔들리는 가지에 감정을 풀어내고, 여리디 여린 풀꽃에 꿈을 드높이는 시간.
산은 가만히 있었을 뿐, 의미를 찾는 일은 오른 자만이 얻게 되는 은하수 같은 것.
잠시 올려다 본 하늘에서 작은 우주를 발견하는 일이다.
요란한 사연 팔이도 무분별한 풍경 묘사도 없는 소설.
딱 필요할 때 사연을 풀어내고, 딱 필요할 때 산의 쉼을 선물하는 저자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먼저 마음의 여유를 챙겨보는 건 어떨까?
그 때, 운명처럼 <노을 진 산정에서>가 손에 닿길 바란다.
> 밑줄_p44
산은 그때그때 쇼를 보여줘요. 산이 등산객에게 주는 상 같아요. 여기까지 잘 올라왔다, 이런 거라기보다 '매일 고생 많지' 하는. 산 하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다 보면 곧잘 질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이십 년을 등반해도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매번 다른 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이 쇼는 멋졌어요. 분명 산이 제가 아니라 아야코 씨에게 상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 밑줄_p131
구름이 높이 떠 있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그렇다 해도 이 해방감은 무엇일까? 산의 꼭대기와 꼭대기를 연결하는 능선은 다른 데서도 걸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힘든 등반은 이곳을 걷기 위해 존재하는구나, 하고 후지 산 정상에서도 느낀 족쇄가 하나씩 풀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 이 서평은 비채출판사(@drviche) 서포터즈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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