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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인생 - 진짜 나답게 살기 위한 우석훈의 액션大로망
우석훈 지음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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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로 북적이는 병원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데 거참, 태어나서 산다는게 고역이다 싶다.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멋진 계획을 세워봤더니 이런 내가 못마땅한건지 싱그러운 봄날은 나에게 알레르기를 선물해주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막고, 간질간질한 눈두덩이를 부여잡으며 멍하게 앉아있는다.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을까, 힘든 일은 없는지, 사는게 즐거운가요?' 그들을 바라보며 떠올린 질문들은 곧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걸까...

 

  경제학자 우석훈은 <1인분 인생>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고민거리를 말하면 "나도 그런 고민이 있었지, 그건 말야..." 라고 답해줄 것 같은 인생 선배의 모습이다. 실제로 책의 챕터를 구분하는 큰 제목들-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지 못한다면,  의욕도 재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지겹다면 등등-은 그 글귀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생 선배로부터 명쾌한 해답을 들을 수 있을것만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열정적으로 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진짜 이런저런 일을 경험한 인생 선배의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인생에 대한 약간의 허무함, 약간의 회한, 약간의 기대감 등이 글에서 엿보여서 더 현실적이랄까.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저자의 화려한 경력-프랑스 유학파,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책분과 의장 등-이 떠올라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래저래 흥미로운 책이다.

 

  뭐랄까... 산다는건 다 그런건가. 결국 내가 괴롭고 힘든 것은 나에게 없는 것만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고양이 키우는 맛에 산다고 했듯이 결국 우리들을 위로하는 것은 그런 소소한 일들이 아닐까.

그리고 중요한 키워드는 '책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그 분은 열정적인 독서가이기를 나도 작가와 함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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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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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장의 트렌드는 해당 상품이 ‘윤리’적으로 생산되어 소비자에게까지 공급되느냐 이다. 스타벅스 같은 주요 커피 체인점에서도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커피콩으로 커피를 내린다고 설명하고, 실제로 매장을 방문해보면 공정무역 관련 브로셔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 역시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 제품을 보면 신뢰가 간다. 더 많은 커피콩을 재배하라고 아프리카 주민들을 착취하지 않고, 정당한 방식(그런데 정당한 방식이 뭘까?)으로 재배해서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품에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부착되면 그 제품은 정말 공정하게 생산된 것일까? 100% 단정할 수 있을까? 만약 실제로는 인증마크가 부착된 커피를 생산하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면? 단지 공정무역 인증마크라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나는 윤리적이고 바른 소비자야!”라는 자기위안의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 코너 우드먼은 기차 여행 중에 커피를 마시다 컵에 적힌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농민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이 문구가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초콜릿, 휴대폰, 신발, 차(tea) 등 사람들이 자주 소비하는 상품들의 생산과정을 역추적하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공적무역 인증마크를 부착하는 일이 실제로 공정무역과는 별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일종의 사업이 되어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현대 시장의 트렌드를 유지시키기 위한 홍보정책일 수도 있다는 것 이다.

 

 

원조든 경영이든 해당 지역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일명 비정부기구의 아시아․아프리카 원조정책의 비현실성이다. 예를 들어 콩고 민주공화국에는 다양한 비정부 기구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학교를 세우고, 펌프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나 작가가 직접 보니 그냥 방치된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학교를 세웠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가 없었고, 펌프를 설치했지만 펌프를 관리할 사람을 훈련시키거나 유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사실들은 현재 비정부 기구들의 원조정책이 근본적으로 큰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즉 해당 지역의 실정을 간과한 정책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코트디부아르에서 면화사업을 하는 ‘올람’이라는 회사의 운영방침은 주목할 만하다. 올람은 코트디부아르의 농장기계화를 위해 트랙터를 제공하는 대신 자금 대출 패키지로 황소를 제공해 밭을 갈았다.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생각해서 트랙터를 농민들에게 차례로 제공했으나 농부들이 자신이 쓸 차례가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리게 되었고, 결국 작물을 심기에 알맞은 시기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면화 농사의 핵심은 우기가 시작되고 난 뒤 가능하면 빨리 땅에 있는 씨앗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축구장 면적의 1.2배인 1헥타르 짜리 땅에 트랙터를 사용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았고, 반면 황소 한 쌍이면 5헥타르(축구장 면적의 6배)를 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농사의 성격, 경작지 면적, 기후조건 등 현지에 알맞은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마약 근절정책 방안으로 양귀비 재배를 단속하고 있었다. 양귀비를 재배하던 땅에는 대신 대안작물이 심어졌다. 대안작물들은 잘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농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니 대체 무슨 일일까? 농민들은 재배한 대안작물들을 팔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 길에 수많은 검문소를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만나는 탈레반, 경찰, 도적들이 모두 농민들을 세우고 통행료와 뇌물을 요구하므로 이 과정을 잘 거쳐서 시장에 도착했다고 해도 결국 농민들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반면 양귀비를 재배했을 때는 작물의 특성상 소비하는 쪽에서 직접 구매하러 왔기 때문에 농민들 입장에서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서도 잘 살 수 있었다. 즉 마약을 근절한다는 명목으로 양귀비 재배를 막는데 사용하는 자금을 아프가니스탄의 도로 치안 유지에 지원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인 것이다.

 

 

작가는 에필로그 6. 중국을 경계하라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양의 자본주의는 식민주의 역사와 싸우고 있다. 콩고 동부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실패를 서양 탓으로 돌리는 국가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리는 윤리적 난제에 발목을 잡혔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식민지 수탈에 대한 나쁜 기억에서 자유로운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중략) 주의하지 않으면 서양의 어수룩한 윤리 의식이 양심 없는 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서양의 진화된 자본주의가 현재 동양의 노골적인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277쪽)

 

이는 식민지 지배주체로서 서양이 느끼는 죄책감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리고 작가가 접한 중국의 경우를 일반화하여 ‘동양의 노골적인 자본주의’로 치환하는 것이 가능한가? '서양의 진화된 자본주의'란 표현은 적절한가?

 

아마도 이 책을 기점으로 당분간 경제 관련 서적에 손이 많이 갈 것 같다. 어떤 행동의 동기, 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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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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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턴은 <시턴 동물기>로 익숙한 이름이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본 적 없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은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지침서이다. 시턴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 <시턴 동물기> 등 그가 쓴 동물문학을 접해본 사람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인 작품일 거라고 생각한다.

 

  시턴은 1907년 캐나다 북서쪽 끝에 자리한 야생의 삼림지대와 북극 지역의 대초원지대를 향해 카누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주목적은 순록을 관찰하고 그 개체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턴은 이 여행을 오로지 그저 좋아서 자비를 들여서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은 시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정부 ․ 박물관 등에서 비밀스런 목적으로 파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시턴이 가려는 곳은 척박한 자연일 뿐이고 자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야생의 모기떼에게 소중한 피를 헌납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시턴은 카누여행을 하면서 목격한 각종 동물 · 식물 등을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그가 설명해주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카누여행의 길 안내를 위해 고용된 북극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참 재밌다. 길 안내를 위해 고용된 자들은 인디언, 혼혈인 등 다양했는데 문제아들(?)도 있었지만 위소, 윰, 조지, 벨라리즈 등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1907년 10월 20일, 시턴과 동료들은 아타바스카 강 협곡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리게 되었다. 물살에 휘말리면서도 시턴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6개월의 여행을 기록한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이 든 가방이 급류에 휩쓸려 보이지 않자 시턴은 무척 낙담하면서 “좋다. 그런 기록을 잃어버린 것쯤이야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내 삶과 생각의 소중한 단편들을 영영 놓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하고 괴로워한다. 이때 검은 혼혈인 지아로비아가 시턴의 일기장이 든 캔버스 천 가방을 등에 매고 돌아온다. 시턴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붙잡고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네.”라고 외친다. 이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그의 글을 읽다보면 시턴이라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애로 충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인디언들에 대한 우월감, 편견 등도 보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다. 시턴은 사실 지아로비아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기장이었건만, 그가 자신을 위해 20킬로미터를 넘고, 뛰고, 기어오르고, 구르고 넘어지고, 헤엄치는 고생을 하면서까지 일기장을 찾아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기뻐하며 그 일을 소개하고 있다. 이 목소리에는 진정한 감사, 안도, 기쁨 등의 감정이 느껴진다. 가감 없는 진짜 감정 말이다. 시턴은 인디언들이 대부분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백인들의 비인간적 행태를 고발하기도 한다.

 

회복할 기약이 없는 끔직하고 치명적인 질병들을 수도 없이 보았는데, 대부분이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것이었다. (중략) 한바탕 사람들이 들이닥쳤다가 간 후에 피에르 스쿼럴 추장이 던진 간단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지 아시겠지요? 얼마나 고통 받고, 아파하는지요. 조약을 맺을 때 선생님네 정부에서 이곳에 경찰과 의사를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선교사들만 보내더군요.”(130쪽)

   

  시턴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 - 동물학자, 에세이스트, 박물학자, 화가 - 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그가 이 여행의 끝자락에서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만족해하고 기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반평생 꿈꿔온 여행을 마치고 4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다시 돌아가 그 모든 것을 보고 오라”라는 말만 따르겠다며 다시 떠날 것을 다짐한다.

시턴의 “나는 마음속에 동경을 품어왔고, 그 오랜 본능에 구체적인 형태를 불어넣었다”라는 말이 지금 나에게 너도 어서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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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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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브라이슨 이라는 이름을 가진 둥글둥글한 아저씨 얼굴은 익숙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아니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여행기의 본좌를 드디어 만났구나!!!’ 였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저자이므로 멋진 작품을 써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하는 일반적인 여행준비 - 유명한 음식점 검색, 익숙한 유적지·박물관·미술관 등등 - 와는 다른 그의 여행을 준비하는 자세가 멋지다. 그 역시 호주에서 꼭 봐야한다는 울루루 등을 찾아 먼 길을 달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동물, 식물이 가득한 호주의 자연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여행의 특징이라면, 그가 일명 <호주 여행기> 등으로 불릴 수 있을 여행 서적이 아닌 역사책(History!!!)을 중심으로 호주의 얼굴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호주에 정착하기 한참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왔던 애버리저니들 에게까지 시선을 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퍼스에 위치한 ‘거인들의 계곡Vally of the Giants' 또는 ’트리 톱 워크Tree Top Walk'로도 불리는 곳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작가가 그 곳에 찾아간 날도 역시 주차장은 차로 붐볐고,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는 그 곳의 경치에 흠뻑 빠지면서 이곳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만한 곳임을 확인한다. 그러던 중 ‘그다지 높거나 신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은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되자 그는 그곳을 ‘오랫동안 얌전히 둘러보았다.’ 이때 그는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는 그 숲이 진정 오스트레일리아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숲과 수목의 관계는 찰스 킹스포드 스미스와 비행, 혹은 애버리저니와 선사 시대의 관계와 같았다. 사람들이 까닭 없이 무시하는 것들 말이다’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제한된 구역에 오스트레일리아 바깥세상에서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독특하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보였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적으로 가득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384-385쪽)

 

  이 매력적인 여행기의 또 하나의 장점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현실’을 우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전하는 데 있다. 작가는 친구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약 10년마다 일어난다는 산불 재해의 규모를 듣고 놀라며 그 위험성에 대해 묻는다.

 

 “그럼 이곳에서 지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거지?”

 그는 달관한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신의 손에 달렸지. 다음 주가 될 수도 있고, 지금부터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영원히 없을 수도 있고.”

 그러더니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 나라에서 자네 운명은 전적으로 자연의 손에 달려 있다네, 친구.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그게 뭔가?”

 “모든 게 연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런 일들에 반드시 감사하게 될 걸세.” (218-219쪽)

 

  빌 브라이슨은 이 여행에서 여행기(旅行記)만이 아니라 숨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얼굴이 드러난 역사책 한 권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목은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 IN A SUNBURNED COUNTRY>이다. 작가는 1908년 도러시어 매켈러 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시인이 기고한 <나의 나라>라는 시가 십중팔구 오스트레일리아 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일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이 시의 두 번째 연의 네 행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햇볕에 타버린 나라를 사랑한다네,I Love a sunburnt country, 

드넓은 평원, A Land of sweeping plains,

험준한 산맥, of ragged mountain ranges,

가뭄과 억수 같은 비의 땅을. of droughts and flooding rains.

 

  작가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등 작가이름을 앞에 붙여서 ‘빌 브라이슨 시리즈’로 기획·출판되고 있다. 시리즈 형식의 제목도 좋지만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처럼 원제목에 충실한 제목은 어땠을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시의 '나는 햇볕에 타버린 나라를 사랑한다네'가 무척 오래동안 기억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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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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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과 대사 속에 표현된 작가의 감정이 솔직히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시위현장을 찍은 사진으로 특종을 꿈꾸는 출세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내일이면 견디기 힘들지는 않을테지. 그저, 남들의 이야기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인간 본연의 감정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더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은 옳고, 이스라엘은 나쁘다, 또는 그 반대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독자들에게 영양가 없는 감정과잉이 아닌 대체 너는 뭘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 그 물음이 상당히 예리하게 꽂힌다. 아, 어찌 할수없음에 좌절해 허무주의자로 빠지지 말지어다. 그래도 자꾸만 드는 이 자괴감은? 이 '병행우주' 속에서 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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