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책들을 빠른 시간내에 읽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빨리 읽었다. 작금의 상황속에 더 손에 안 잡히라 생각했는데 채식주의자는 빠르게 읽힌다는 말을 듣고 집어들었다. 그리고 정말 빨리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작가의 말에서 본 고통 3부작이라는 글귀가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크게 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무기력한 인간이 각자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감내하려 하거나 그 고통이 노력의 역치를 넘어설때 무너져가는 모습들이라고 나는 이 소설을 이해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 모습이 무너져 내려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간극마저 고통으로 읽혔다.타인과 연결되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의 뿌리를 내리는 인간의 모습이 결국 형태만 다를 뿐 우리 모두에게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의 힘듬이 아닐까 한다.
김애란의 책들은 대체로 좋다. 소재, 배경, 인물들이 항상 밝고 긍정적인 것은 아닌데 뭔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낙천주의가 깔려있다. 그 낙천주의가 읽는 사람을 위로하고 책을 덮고나서도 따뜻한 온기를 남겨준다. 그래서 김애란 책들은 독서의 끝이 포근하고 기분좋은 디저트를 먹은 것과 비슷하다. 이 책도 주인공들의 상황만 늘어놓고 본다면 더이상 암울할 수 없을텐데 그래도 이야기의 끝에는 희망이 있고 작가가 보내는 응원이 있다. 더불어 책을 읽는 돜자들에게도 아무리 어둡고 끝이 안보이는 터널속에 머물러있는듯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응원을 보내는 듯 하다.나 또한 그 응원에 기운을 받고 기쁘게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왔다는 놀랍고도 놀라운 소식을 들은 후 한강 작가의 책들이 모두 품절이라는 또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막상 한강 작가의 책들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생각과 밀도깊은 문장과 감정을 읽어내리기가 꽤 버겁다는 평들도 기억이 났다.그래도 궁금하니깐,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다른 대표작보다는 그나마 읽기 접근성이 수월하다는 두 책, 흰과 희랍어 시간 중 고민하다 이북으로 읽기에 더 나을듯한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엄청 길지만은 않은 소설이지만 작가 특유의 뉘앙스는 알아차릴수 있었고 왜 한강의 소설들이 시와 비슷하다고 하는지도 알겠다. 소설을 쓰는데에도 시어를 고르는듯한 많은 생각과 고민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눈이 멀어가는 강사와 말을 잃은 수강생의 연결고리는 사어가 된 희랍어 시간이다. 이 모든 잊어져가는, 결핍되어가는 크리티컬한 요소들이 이 소설을 이루고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결핍된 감각기관들이 정신을 갉아먹는 것일까, 아님 그 역의 관계일까. 이 두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질문이 많아지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 하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하다.지금의 나로서는 이 정도가 충분하기에 한강의 다른 작품들은 좀 더 심적여유가 생겨 취향이 너그러워질때 접해볼까 한다.마지막으로 작가에게 보내는 축하메시지들에 한 줄을 보탠다. 자랑스럽습니다, 축하합니다!!
우연히 발견해 제목이 맘에 들어 읽기 시작한 책.오렌지 파운드 케잌의 향을 기대하며 읽었다면 실망했을 것 같다. 모순된 두 상태, 자유-통제를 모티브로 쓴 소설인데 그걸 잘 구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거친 아웃라인을 그려내는데는 성공했달까.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아웃라인을 통해 하고픈 얘기를 직접적으로 거칠게 표현해냈으니 그 또한 다른 종류의 성공적인 표현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읽고나니 그렇게 생각이 되더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웃라인보다는 좀 더 깔끔한 완성작을 보는 쪽이 좋겠다는 감상이 드는 걸보니 난 빵칼보다는 오렌지 케잌이 좋은 것 같다.
굉장히 간만에 한 권 끝까지 다 읽기를 해낸 책이 되었다.좀처럼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아서 책읽기를 다 미뤄두었다가 산뜻한 표지 그림과 짧게 나뉘어있는 꼭지들의 글이라서 부담없이 골라들었고 또 내킬때마다 집어들어 잠깐씩 읽고 내려 놓을수 있어 좋았다.우리나라의 24절기를 소재로 한 에세이로 절기를 소개한다기 보다는 그 시기마다 하기 좋은 소소한 일들, 그렇게 사소한 행복을 찾아 즐기다보면 일년이 채워진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절기가 그날 하루의 이벤트가 아니라 다음 절기가 오기 전까지의 기간의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각 계절마다 즐거운 일들을 떠올릴수 있게 모티브를 제공해주어 좋은 책이기도 하다.무엇보다 이렇게 지치고 늘어지고 의욕이 없는 여름 장마철에 산뜻하게 한두 꼭지를 읽고선, 오늘의 책읽기를 해냈어! 하는 성취감도 줄 수 있는 잘 읽히고 잘 쓰여진 글을 만나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