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지 2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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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554

"미안해요, 피터. 하지만 피터를 나처럼 만들 수는 없었어요." 에이미의 말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SF가 거침없이 예상하는 종말의 세계, 군 프로젝트에서 비롯한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바이럴(흡혈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립(콜로니)을 자처하는 동시에 콜로니에서 탈출하려는 의지와 더불어



백년 가까이 살아남은 트웰브(?)의 최종체인 에이미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낮과 밤의 완벽한 초인이 아니라 유한한 관계와 시간의 제약에서도 완벽한 순간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걸 FOX에서 드라마로 만들면서 후려쳤나보다... 🥺 (작가께서 친히 인스타에 올리시기를 드라마는 취소될 수 있지만 요 소설은 그럴 수 없을 것이라며...)



1/3 지점이지만 다음 권인 #트웰브 (2012)와 #시티오브미러 (2016)의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호기심을 돋우는데, 번역가 송섬별 님은 어디 모처에 감금되어 작업을 하고 계실 것만 같은 분량. 자간. 글자 크기.



p541

"모스, 일어나. 바람이 누굴 실어왔는지 보라구."​



에이미, 피터, 알리시아, 사라, 마이클, 모스, 테오, 그리고 다시 울가스트와 레이시 수녀. 그들의 관계와 그리움, 죽음과 기억의 회전하는 힘은 이 소설의 훌륭한 과학적 상상, 디스토피아의 황량함, 이마저도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보다 더 강력한 중추가 된다.



기독교의 상징들을 신념에서 비롯하는 오마주로 쓴 것인지, 반복되는 신화와 역사의 일반성을 강조하려 쓴 것인지 약간 헷갈리지만... 아마 전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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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지 1 패시지 3부작
저스틴 크로닝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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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울가스트 요원, 우리는 단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노아 프로젝트'의 목표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발견하는 거야."​



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연고자 없는 실험체(사형수 등)를 모집하러 다니던 FBI요원 울가스트와 도일은 마침 수녀원에 버려진 여섯 살 에이미를 접촉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과거 딸을 잃은 경험이 있던 울가스트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순수한 에이미에게서 본능적으로 솟아나는 애착을 느낀다.



도주를 시도하지만 비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막강한 힘들에 포위되고. 외딴 실험 장소에서 실험체가 된 에이미와 함께 갇힌 어느 날 또 다른 실험체 제로와 울가스트가 포섭했던 카터가 폭주하고 연구소가 붕괴되는 사이 울가스트와 에이미는 도일과 레이시 수녀의 희생으로 간신히 탈출한다.



멸망의 바이러스를 스스로 퍼트린 인간과 살아남은 인간이 과거와 단절ㅡ고립되어 생존하며 벌어지는 일들이 이후 벌어지는데, 두꺼운 고전보다 작고 촘촘한 글꼴과 서장에서 사그라져버릴 인물들을 섬세하고 생생하게 조각하는 데서 저자의 이 진지한 인류 멸망과 생존의 서사가 향하고 있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정말 작다. 글꼴)



500쪽의 이런 책이 앞으로 다섯 권.



'점프'라 불리는 바이럴이 되어 점프해서 공격하는 흡혈 좀비와 콜로니로 보내져 생존투쟁을 벌이는 인간, 완벽한 실험체로 살아남았을 에이미의 이야기가 2권에서 벌어질 텐데 기대 반 걱정 반.



그렇게 힘들게 꼬박 수십 페이지를 통해서 태어난 인물들의 삶이 툭툭 끊어지는 경험이 일견 문학적인 의도(?)일 수도 있겠으나... 흐끅...



p.s. FOX에서 드라마로 만들면서 원작을 마구 후려쳤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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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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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1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 내 삶은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

그의 장편은 이제 겨우 두 편을 읽었지만, 섬세한 환멸과 냉소, 그럼에도 침범하는 유머의 출현까지 ㅡ 이 소설이 작가 은희경의 영역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절된 완급의 리듬이 있다.

대학 동기 김희진의 소설을 드디어 읽으며, 1977년 여대 기숙사에 갓 들어간 자신을 회고하는 김유경.

까탈스러웠던 기숙사, 내 기억과는 다르게 기록 된 소설 속 선배, 동기들의 모습. 개발시대의 맹목적인 권력과 1977년이 스스로 기념하는 요란한 숫자들과 소란스럽게 자신을 밝히는 남존여비의 유령들.

p325

김희진은 여전히 욕망과 그 박탈에 예민했고 깨어지는 순간에도 소란스럽게 남에게 고통을 전시하며 에너지를 얻었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소설가가 된 김희진(꼭 성을 붙여서 불러줘야 주인공과의 관계가 명확해진다)이 붙들려고 하는 그때 그 시간, 자기만의 장면들은 나ㅡ김유경이 기억하는 파편들의 틈새를 메워주는가, 아니면 깨트리고 벌어지게 만드는가.

p281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과거를 들어내어 지금 읽을만한 관념으로 빚어내는 것. 이 거리와 차이, *배나의 총량을 관측하는 것. 믿을만한 낯섦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모르던 그날ㅡ그들의 자취를 비춰주는 것.

은희경의 팬이 부럽지 않은 이유는 ㅡ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책이 아직도 많다는 것.

p.s. 동기였던 O유경 씨가 생각난다. 내 불평을 사치스럽고 부끄럽게 해준 유걩이... 나랑 키가 비슷했던 유걩이... 손바닥이 매섭던 유걩이... 웃으며 때리던 유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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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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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불안이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면 슬픔이 열린다.


p117 - "우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서로 미안하지? 나한테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누구지? 아무도 내게 사과를 안 해. 누군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요즘 분해서 자꾸 눈물이 나."


L과 L2의 계급이 사는 도시국가 타운의 행정에서 존재하지 않는 3등 시민, 제3의 존재인 '사하'는 유일하게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계급이며, 존재할 수 없게 된 이들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하맨션은 인간성의 헤토로토피아로써 기능하고 존재한다. 


p268 - 우미는 이를 악물고 누워 살아남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의 크기를 증명하지 못하면 털어버리는 체에서 떨어진 사람들. 그 사람들을 쓰다듬는 작가의 오랜 손길이 정성스럽고 따뜻하다. 그래서 사하맨션 밖의 사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살아가는 사하를.





그런데 이야기의 마무리가 들떠있다.
이 절박한 활력이 당장은 내 이해범위를 넘어선다.
갑작스런 갭이 절벽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연해서 막막하다.


장르의 전환이 내게는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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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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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6

다들 내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토로한다. 내게 얼마나 공감하는지. 내가 느낀 걸 그들도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 고립, 자격지심, 외로움. 하지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들이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내가 죽은 다음에야 내가 살아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이.

#사회불안장애 를 겪는 에번 핸슨은 심리치료사 셔먼으로부터 자기에게 쓰는 편지라는 처방을 받고 ㅡ today is going to be a good day, and here's why ㅡ 숙제를 제출하려 출력하고 나서는데 코너 머피와 부딪히게 되고, 또 다른 외톨이인 코너는 에번의 팔깁스에 조롱하듯 자신의 서명을 남기는데.

코너의 자살. 죽은 아들의 주머니에서 에번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아들이 에번에게 쓴 편지로 오해한 코너의 부모는 에번의 깁스에 적힌 아들의 서명을 보고 오해를 확신하게 된다.

대입 프로필에 집착하는 엘레나의 등살에 밀려 코너의 추모행사를 개최하게 되고 첫 연사로 오른 에번의 감동적인 추도사(#youwillbefound )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오해의 살이 두꺼워질수록 에번이 복용하는 아티반은 줄어든다.

변질되는 코너의 정체성과 어떤 사실이 진실로 조작되고 조작된 것이 위로가 되는 아이러니. 역전된 세계에서 짧은 영웅이 된다는 것의 불안.

브로드웨이에선 뮤지컬 창작을 위한 가이드로 이용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도 한다는데, 이 책은 뮤지컬의 메가 히트 후 만들어진 소설. 지난해 토니 어워드를 휩쓸었다.

OST를 백번, 천번 들어도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을 세밀한 부분까지 알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자살, 사회부적응, 소셜네트워크, 동성애와 각종 갈등의 종착지를 막연하고 무리한 해피엔딩으로 응집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뮤지컬 #nexttonormal 과 같은 이가 연출을 맡았는데, 유튜브에 공개된 무대 영상과 같이 즐기면 실험적인 무대와 다소 충격적인 불안의 감동과 #taptaptappingontheglass 의 리듬감이 이 컨텐츠(?)의 소용을 확장시켜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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