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늙은 게이 후안과 젊은 게이 네네는 한 공간에서 후안의 레즈비언 보호자였던 잰 게이와 제냐 게이 커플이 잊혀지고 지워진(검열) 성소수자들의 욕망을 면접 연구한 자료를 열어보며 자신들의 기억까지 함께 떠올린다.

두 게이의 대화는 이미 그 둘이 공유하는 '시대를 초월한' 배제와 차별, 인종(푸에르토리코), 고립과 도피의 경험을 전제로 하기에 이 암전 된 어떤 사실들은 소수자 퀴어들 뿐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다수일 이성애자에게도 적용되는 은유이자 사실이다.

p234 - 제냐가 쓰고 그린 어린이 책들을 연구하며 제냐에 관해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글과 그림이라는 암호로 표현한 자전적 발견의 순간들이었다. 퀴어 아동이 우연히 자신에 대한 금지된 앎에 다가가는, 에로틱한 발견을 담은 사소한 장면들.

다양하게 등장하고 제시되는 퀴어 은어들과 소수자 친화적 언어들은 두 게이가 경험하고 보이는 행동양식의 이질성과 함께 독해를 어렵거나 불편하게 할 텐데, 친애하는 역자는 물론 저자마저도 미주와 각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한다.

퀴어들은 성장하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을 친절한 해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더글러스클림프 의 #애도와투쟁 , #에이드리언리치 의 #우리죽은자들이깨어날때 그리고 미국 A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WHENWERISE

대다수의 독자들은 접하지 않았거나 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대변하거나 변론하는 삶들이 존재하는 데서 시작하는 작품들이다.

이 소설도 거기에서 시작해서 그곳에서 끝난다.

어떤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가려놓은 미스터리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 깜깜한 암전 상태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면 그 온기로 느낄 수 있는 암시와 문학적 은유의 정체가 모두 미스터리는 아니다.

텍스트 너머에 이미 경험하거나 몹시 가까이에서 목격한 삶이 있는데 지운다고 해서 몸이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명백한 어두움인가.

#암전들 #blackouts #저스틴토레스 #송섬별 #justintorres #열린책들 #미국소설 #전미도서상 #퀴어소설 #미국퀴어소설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9 - 가장 가까운 도시인 라이프치히까지의 거리는 북서쪽으로 36.8km이고, 나치가 점령하지 않은 나라와의 가장 가까운 국경은 640km 떨어져 있었다.

콜디츠 성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이 연합군의 장교 포로 수용소로 사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1940~45년 사이에 있었던 포로들의 생활상과 탈출기, 각기 다른 국가 '장교'들 사이의 연대와 소소한 알력 싸움, 인도인 영국 장교를 향한 차별이 주요 소재다.

#존오브인터레스트 나 #쉰들러리스트 , #빅터프랭클의죽음의수용소에서 , #프리모레비 의 저작 등을 통해서 본 유태인 수용소의 실상에 비하면 '콜디츠 수용소'는 안온한 곳이었다.

이들도 적십자사의 보급품 덕에 그나마 독일군에 비해 양호한 영양상태를 유지한 것이지만 승전 후 인근 도자기 공장의 유대인 수감자를 본 줄리어서 그린(콜디츠 포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p445)고 했다.

#윌리엄l샤이러 의 #제3제국사 에서도 이 책과 비슷한 뉘앙스의 상황 설명이 있는데, 콜디츠 수용소는 장교 포로 수용에 관한 국제법을 지키는 '독일군 휘하'의 시설이라서 적십자사 보급, 펭귄 클래식 구독(p240, 연 3기니), 가족 우편, 연극 공연, 소규모의 자치, 탈출 적발 시 비사살 등의 규율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치의 절멸 작전(유대인 학살)도 군부가 아닌 SS(Schutzstaffel, 친위대)의 핵심을 중심으로 비교적 비밀리에 계획되고 이루어졌다.

작가는 영국군 장교에 의사였으나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비렌 마줌다르의 이야기를 주목하는데, 이는 콜디츠에서 여러가지 방법과 끈기로 탈출을 시도한 여럿의 이야기보다 눈길을 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다름의 다른 것을 어떻게든 포착하고 차별의 근거 삼아서 배설의 욕구를 해소하려는 장면은 '제3제국'의 거대한 오류의 그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마줌다르는 영국에서 결혼하고 생활하고 영면한다.

콜디츠의 포로 대우는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참상의 정도와 워낙 차이가 커서 당장 와닿는 감각의 밀도는 낮다.

외려 전쟁이라는 극단적 참화와 장교 출신들의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인간적인 선을 지킬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콜디츠의 소장격인 교사(교장) 출신 에거스가 우스꽝스런 남자들의 연극 공연과 '포로 예우'를 규제에 따른 것일지라도 (독일군 입장에서) 견딘 것도 생각해본다.

양심 때문이든 평판 때문이든 불확실한 전후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그들이 넘지 않은 극단주의의 선 말이다.

#콜디츠 #colditz #벤매킨타이어 #benmacintyre #김승욱 #열린책들 #제2차세계대전 #ww2 #콜디츠수용소 #전쟁사 #세계사 #나치수용소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모 사업장 주인이자 과부인 주디스 펄 주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번 이야기는 #캐드펠수사시리즈 의 13번째 책이다.

부유하고 젊은 과부를 향해 몰려드는 남자들의 시선과 구애는 징그러울 정도. 우리 시대라면 스토킹 범죄에 가깝고 이야기 속에선 실제로 납치도 당한다.

어떤 인물과 사건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드러나는 저자의 의도가 더없이 선명하다.

예전에도 한번 적었는데, 고전 미스터리들이 정격으로 지키는 '분량'은 살짝 귀엽기도 하다. 익숙한 독자들은 트릭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기에 사건 해결의 힌트가 된다.

#장미나무아래의죽음 #엘리스피터스 #김훈 #북하우스 #영국소설 #영국미스터리 #고전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리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55 <이유 있는 밀실(1985년)>

"(전략) 행위 자체가 다잉 메세지라는 점을 은폐하고자 그 행위에 '다른 해석을 없애기 위한 범인의 수작'이라는 새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저자의 최고작이라는데, 이전에 읽은 #붉은박물관 #기억속의유괴 도 창작자의 훌륭한 기본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해법이 묘연한 밀실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문득 나타나 해결해주는 '밀실수집가' 이야기 다섯 편이 담겨있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시대를 초월해 등장한다.

첫 수록작 #버드나무정원 속 음악교사 살인 사건의 증인인 고교생이 경찰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어서 밀실수집가를 재회하는 네 번째 수록작인 #이유있는밀실

각 단편이 뛰어나지만 이 네 번째 수록작이 '밀실 살인이 일어나는 아홉 가지 이유'를 해설해주는 장면은 미스터리 독자에게는 충분히 훌륭하고 뛰어난 밀실 살인에 관한 교훈적인(?!) 가르침이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밀실의 원리를 뽑아낸다.

두 번째 수록작 #소년과소녀의밀실 은 소설 장르 특성을 유감없이, 얄미울 정도로 발휘한 트릭이 등장한다.

밀실에 관한 미스터리이니 밀실에 관해 더 적고 싶지만 하나하나가 트릭의 단서가 되니 이걸 어떻게 더 쓸 수가 없다.

#밀실수집가 #오야마세이이치로 #윤시안 #리드비 #디앤씨미디어 #일본소설 #추리소설 #일본추리소설 #미스터리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129 - 많은 사람이 최첨단 의료가 고통을 연장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깨달아 지체된 죽음의 굴욕을 견뎌내고 있다. (중략)
조력 사망은 애도 과정을 덜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유족이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에 기습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로부터 시한부 6개월 판정을 받은 후에야 가능한 미국식 조력 사망을 문화인류학자이자 조력 사망 봉사활동가인 저자가 여러 케이스를 발췌해서 보여준다.

물론 지역과 이름을 바뀠으며 자신의 목소리조차 '데리애나'라는 인물로부터 전해들은 것으로 설정해서 객관적인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조력 사망 및 안락사를 지지하는 내 입장에선 전문의의 판정과 여러가지 규칙(과정별 숙의 기간)은 수록된 케이스 속 불치병 환자들에게 불리하고 심지어 잔인해 보이기도 했다.

신청자들의 질병(말기암, 루게릭, 고령 치매 등)의 특성상 6개월 시한부 판정 후엔 급속하게 악화되거나 그 자체로 치명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단체 접촉, 서류 절차, 정신 상태(정신 이상이 의심되면 거절 당할 수 있다) 유지, 조력 정도(직접 복약해야 한다), 약물 수령(약사의 거절, 수급 불안으로 수령 지연- 책에선 6주) 등은 사실 당사자나 가족에겐 쉽지 않다.

앞서 적은 내용들이 수시로 발생하고
전체 1/3정도라는 당사자의 변심으로 불이행 되는 경우와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 상황까지 현재 미국식 조력 사망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미비점들은... 오, 죽음의 자리마저 우리에겐 얼마나 값비싼지...

특히 종교계의 적극적인 반대 논리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데, 의사 약사들의 종교적 거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대한 무능력한 인간성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드디어는 오직 '거절'과 '거부'만이 그들의 헤게모니가 된 것이다.

사실 요즈음 다시 감정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어서 읽기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오직 '조력 사망'만을 다루지만 이런 류의 제도의 한계와 기능을 이해하는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더 확실하고 주체적인 죽음의 결정에 공감하면서도 꼭 질병이 아니더라도 죽음에 대한 권리, 고통스럽지 않을 죽음에의 권리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죽음에 관해 걱정되는 그 모든 부작용보다 생의 부작용이 작으리라고 과연 확신할 수 있나.

게이의 조력 사망 현안에 관해 처음으로 여기서 읽었다. 비록 의견일 뿐이고 80~90년대 에이즈로 인한 특정 시기에 관한 의견이지만 한국처럼 파트너쉽조차 법적 보호를 못 받아서 예기치 못한 파트너 사망 후 거주지에서 쫓겨나 파국에 이른 소수자들에 대한 데까지 도약하게 된다.

그러니까 고통스런 질병(혹은 사회적 외면과 방치)에 이은 죽음의 기습.

#내가죽는날 #thedayidie #애니타헤닉 #anitahannig #신소희 #수오서재 #조려사망 #안락사 #인류학 #문화인류학 #인문학 #사회학 #호스피스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boo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