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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p181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 내 삶은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
그의 장편은 이제 겨우 두 편을 읽었지만, 섬세한 환멸과 냉소, 그럼에도 침범하는 유머의 출현까지 ㅡ 이 소설이 작가 은희경의 영역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절된 완급의 리듬이 있다.
대학 동기 김희진의 소설을 드디어 읽으며, 1977년 여대 기숙사에 갓 들어간 자신을 회고하는 김유경.
까탈스러웠던 기숙사, 내 기억과는 다르게 기록 된 소설 속 선배, 동기들의 모습. 개발시대의 맹목적인 권력과 1977년이 스스로 기념하는 요란한 숫자들과 소란스럽게 자신을 밝히는 남존여비의 유령들.
p325
김희진은 여전히 욕망과 그 박탈에 예민했고 깨어지는 순간에도 소란스럽게 남에게 고통을 전시하며 에너지를 얻었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소설가가 된 김희진(꼭 성을 붙여서 불러줘야 주인공과의 관계가 명확해진다)이 붙들려고 하는 그때 그 시간, 자기만의 장면들은 나ㅡ김유경이 기억하는 파편들의 틈새를 메워주는가, 아니면 깨트리고 벌어지게 만드는가.
p281
과거의 빛은 내게 한때의 그림자를 드리운 뒤 사라졌다.
과거를 들어내어 지금 읽을만한 관념으로 빚어내는 것. 이 거리와 차이, *배나의 총량을 관측하는 것. 믿을만한 낯섦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모르던 그날ㅡ그들의 자취를 비춰주는 것.
은희경의 팬이 부럽지 않은 이유는 ㅡ 나는 읽지 않은 그의 책이 아직도 많다는 것.
p.s. 동기였던 O유경 씨가 생각난다. 내 불평을 사치스럽고 부끄럽게 해준 유걩이... 나랑 키가 비슷했던 유걩이... 손바닥이 매섭던 유걩이... 웃으며 때리던 유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