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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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 아라이는 이 청년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다부치가 처음부터 '청각장애인ㆍ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농인ㆍ청인'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라이는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이다.

경찰 사무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아라이는 전직을 준비하던 차에 수화통역사 일을 맡게 되고, 농아 시설을 운영하는 '노미 가즈히코' 살해 사건에 조금씩 엮이는데...

농인과 수어에 관한 글은 #올리버색스 의 #목소리를보았네 를 통해 그 풍부함을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주인공이 농인의 세계의 중심에 있지만 동시에 외따로 있는 CODA(농인 양육자의 청인 2세)라는 점에서 실제적이고 질박한 면을 통해 독자의 편견과 트릭을 끌어낸다.

#마쓰모토세이초 상 최종후보였다는데, 트릭의 전개는 세이초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고전적이면서 정직하다. 어렵지 않다.

p144 - <제 지인도 어릴 때 거기에 입소했었어요. 다들 말했어요. 그놈 죽어 마땅하다고.>

이 책의 진가는 농인과 청인의 간극을 농인을 중심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코다가 느끼는 소외감, 청인인 내가 소설 속에서 단절 당하는 지점(모양으로 묘사하는 수어와 '듣기'의 공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등)에서 소위 말하는 '정상 세계'는 얼마나 빈약하고 권력 지향적인지를 어렵지 않게 체감 '당한다'.

여러 사람의 수어 장면에서 올리버 색스는 수어의 역동성과 풍부한 표정에 집중했던데 반해, 이 소설의 주인공 아라이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낀다. 청인이며 농인 가족이 없다는 저자의 묘사가 여러모로 시리즈 차기작(#용의귀를너에게 #통곡은들리지않는다 )을 기대하게 만든다.

#데프보이스 #마루야마마사키 #최은지 #황금가지 #추리소설 #추리 #미스터리 #일본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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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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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그해 여름 끝>
이번에는 진급 기회가 눈앞까지 다가왔는데 또 중대에서 총을 분실하고 말았으니 마음속으로 욕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총기관리관(정)과 (부)가 있는데... 대체로 어디든 그렇듯이 (정)인 부대장이 일을 하는 경우는 없다.

소설 속 (부)인 3소대장 자오린의 소대 총기가 '명백하게' 도난당한다. 소대의 정치ㆍ사상교육을 담당하는 지도원 가오바이신과 범인을 쫓다가 부대 자살 사고까지 발생하는데... 당원 가문 출신 가오바이신은 예전 베트남과의 전쟁 당시 공훈을 양보한 것을 빌미로 자오린에게 '책임'을 지기를 요구하는데...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전쟁(~'88)이 끝난 직후를 배경으로 부대의 부조리. 책임관들이 죽음에 슬퍼하기보다 죽음에 부과되는 책임을 '전우'에게'까지' 넘기려 급급한 상황이 옛날옛날 이야기가 아닌, 내가 복무했던 바로 옆 부대에서도 발생하고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또다시 기괴하게 포장되어 끝났던 사건과 여러모로 닮은 꼴이었다.

총기 분실도 면피, 자살사고도 면피, 납품 리베이트도 방관하는, 격랑의 시대에 인물들이 당황해서 엉뚱한 발언과 결정을 해서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군 비리와 신분상승(도시 이주, 진급)의 절박함이 뒤섞인 총체적인 당대 난국을 그렸기에 여직 판금작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p353 <한쪽 팔을 잊다>
그 팔이 정말로 진방의 몸에서 떨어진 왼팔이라면 그 반지를 회수해야겠다고 했다. 도금한 가짜 반지라 해도 반지는 반지라는 것이었다.

장편인 표제작에 이은 단편 #류향장 은 성공을 찾아 도시로 이동한 고향 청년들이 도둑질과 성매매로 돈을 버는 것을 겉으로는 꾸짖으나 안(?)으로는 응원해서 결국 고향 개발을 얻어내는 류향장의 이야기.

#한쪽팔을잊다 는 공사장 사고로 죽은 동료 진방의 팔을 발견한 인즈가 장례가 한창인 집을 찾아갔으나 유가족이 보상금과 팔에 남은 반지만 눈독 들이는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극도의 물신주의가 침범한 세태를 짚어낸 비극이다.

망명 작가가 아닌 베이징에 거주하는 옌롄커의 초기작.

홍콩, 대만 출신 작가들에 비해 해학적으로 포장하려는 의도, 각각의 상황과 소재만으로도 은유 하는 바가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ㅡ증정도서ㅡ

#그해여름끝 #옌롄커 #yanlianke #넥서스 #중국소설 #김태성 #세태소설 #중국문학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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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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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증정도서ㅡ.

p72 - 어린 나에게 끄떡없어 보였던 농부들은 이제 다른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자살한다. 농부들을 위한 연방정부의 자살방지 상담전화는 폐지되었다.

의료는 왜 민영화 되지 말아야 하는가.

공적인 의료 지원이 없는 지역에서 왜 마약성 약물 남용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심지어 왜 특정 직업군의 자살률이 높아지는가.

p167 - 내가 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충분히 오래 머무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맹장염에 걸렸다고 해서 한국의 환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과한 검사를 받게 되리라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맹장염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미국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잠깐이지만 사경을 헤매고, 코로나 초기방역을 소홀히 한 정부 의료 정책의 실패로 기억력이 약해지는 후유증까지 얻는다.

p164 -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개인 방호복을 일터에 가져왔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는데, 그 때문에 병원 비축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게 이유였다.

미국 고급(?) 보험의 혜택을 입더라도 기초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고, 당위적인 직업 훈련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체계 안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목격한 비정상적인 의료 환경은 충격적이다.

p199 - 건강은 우리 공통의 취약성이고,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우리 공동의 기회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개인을 넘어 천민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쫓은 의료와 공공의 가치가 훼손된 (트럼프)행정부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의료의 공공성을 다시 손볼 것을 주장한다.

'건강'을 핵심이 아닌 '취약성'으로 정의한 데를 곱씹게 된다. 적절한 의료를 보장받지 못한 곳에서 '건강'의 비용은 그 자체로 사회의 위협이 됐다.

p.s. 여러차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자국(미국)과 비교하는 데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지만, 동시에 별로 잘 살지 못하는 아시아 국가들보다 평균수명이 당연히 높아야 되는 자본 계층사회 '미국'에 대한 자존심엔 살짝 흠칫하게 된다.

#치료받을권리 #티머시스나이더 #ourmalady #timothysnyder #엘리 #미국 #의료보험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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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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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증정도서ㅡ

p308
"안전한 집안, 원만한 가정, 번창하는 가족······ 수호신은 이 세 가지를 관리하지."

사사사사아사와무라 이치-

#보기왕이온다 #즈우노메인형 과 시리즈인 작품으로 '영매사 히가'가 등장하는 동시에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정상성'의 관성을 공포의 소재로 삼는 기조도 유지한다.

이번엔 '정상 가족'과 '집'

유다이와 결혼 후 남편의 전근으로 도쿄로 이사를 온 가호는 2세 준비를 하며 이도저도 아닌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어린 시절 친구 도시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초대를 받는다.

저혼자 한층 기분이 좋은 도시는 힘이 빠진 듯한 부인 아즈사, 치매를 겪는 할머니 도시에와 함께 사는 집 여기저기에는 모래가 쌓여 있고, 그들은 그게 마치 아무것도 아닌냥 살고 있는데...

일본 사회의 봉건적인 기저를 비판하는 시선을 쭉 유지하는 것과 소설의 서술 트릭을 책 중반에 비틀어가며 시대와 속습의 어긋남을 지적하는 것은 매력적이나, 악령의 근원과 결말이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끝맺음 되는 것은 여전히 허전하다.

불운과 사건이 맥락없이 얽혀들어가는 현실의 메타감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생각도 하지만, 소설적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독자에겐 다소 부족하다.

끝이 불길한 '이야미스'의 다음 세대는 약간의 '공허미스'인지도 모르겠다. #이야미스 보다는 그게 나을지도. 도입부는 감각을 쭈뼛 서게 만든다.

p.s. 가호가 얽히는 순간의 장면을 장치로 볼 것인가, 과하게 대상화 된 침해로 볼 것인가에 대해선 개인차가 있을 듯하다.

#시시리바의집 #사와무라이치 #아르테 #이선희 #공포소설 #호러소설 #일본소설 #호러 #공포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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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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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9 - 조 매코널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이 연구 이전에 나이테 기록과 빙하 코어 기록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대 측정을 거치며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제 우리는 나무를 보고 말할 수 있다. '화산 폭발 때문에 냉각이 일어났다'라고."

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연륜연대학자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작은 중심에서 시작해 동심원을 쌓아가는 나이테처럼 퍼져나간다.

목재 악기나 예술품의 연대를 밝혀내는 데서 시작하는 나이테의 이야기는 온도와 강수량과 같은 기후변화의 양상, 가뭄이 야기하는 정치적 격변, 제트 기류와 태풍의 영향, 지진의 발생, 방사능과 태양 흑점의 변동, 기후변화가 산불의 주기에 끼치는 영향 등 지구 역사의 추이가 인간 문명에 간섭하는 정도와 영향을 나이테를 통해서 밝혀낸다.

살아있는 나무는 샘플을 채취해서, 죽은 나무와 숯은 유물이나 발굴 현장을 통해 나이테의 간격과 형태를 데이터화 하고 축적해서 지역과 시대를 연결한다.

저자가 벨기에에서 태어나 공부할 당시엔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뛰어다녀야만 했던, 여성에겐 배타적인 과학계에서도 희소한 전공이었다는 것을 한 단계 한 단계 나이테 연구의 범주를 넓히며 경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귀기울이게 만든다.

친절하고 정갈하게 설명하면서도 범주를 확장해나감으로 해서 인간사의 곁에서 안팎으로 불가분의 동반자로서 자연을 이루는 나무, 숲, 생태계의 심대한 규모와 역할을 일깨워 준다.

저자는 나무 나이테, 연륜연대학의 한계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질학, 인류학, 역사학, 화학, 기상학 등 여러 학문과의 교류와 각국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추적하는 이 이야기가 비단 인간만의 일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거대한 화두이며, 우리가 누구누구라는 것과 상관없이 나무와 나이테를 알고 있다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지적하는 듯했다.

p295 - 이때부터 핵폭탄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나이테나 호수 퇴적물과 같은 생물학적이고 지질학적인 기록 보관소에 영구적이며 추적 가능한 방사성 표시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변화의 죄는 인간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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