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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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증정도서ㅣ
p16 -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살았던 소도시가 지나치게 더럽고 어두웠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곳의 거리들은 뒤틀린 채 서로 포개져 있었고, 발효되어 끓어오르는 친밀함이 남긴 부패한 찌꺼기에 단단히 휘감겨 있었다.

시나 음악은 시작부터 찬란하게 솟아오를 수 있으나, 소설의 그것은 드러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이룰지 헤매기를 주저하지 않고 글자 사이의 길을 건너다 보면 예리하게 뻗쳐나온 문틈의 빛이 그 길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이 건네는 찬란함이 여기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길을 따라가다 멈칫하게 됐던 두 지점 (라티프의 플리머스 도착과 살레 오마르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분명 미소 지으며 했던 생각) 앞에서 돌아보면, 이 이야기는 줄곧 식민지 역사의 시민과 난민, 이방인과 아프리카 무슬림 흑인의 정체성을 줄곧 직시하며 진행됐다.

p388 - 나는 우리의 법률을 신뢰하지 않았고 내 인생에서 더이상의 소란은 감당해낼 힘이 없었으므로

무엇보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문을 열고 닫을 때의 우아함, 솔직함을 두루 보여준다. 그래서 인물의 종교적 태도뿐만 아니라 종교 경전의 플롯이 소설 전반에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 이 또한 다분히 의도된 구성이라고 여길 있도록 만든다.

역자도 밝혔듯이 번역의 어려움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독자가 느끼는 읽기의 어려움은 역자의 다시쓰기의 어려움과 직결되는 동시에 작가의 써서 밝혀내기의 어려움인데 이를 증명하는 소설이다. (정말 깊은 고생이 느껴진다.)

아프리카와 잔지바르, 영국(유럽)의 관계를 전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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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 편 가르기 시대 휘둘리지 않는 유권자를 위한 정당정치 안내서
에즈라 클라인 지음, 황성연 옮김 / 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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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증정도서ㅣ
왜냐하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정책 로드맵이나 상호 복합적인 비전 자체가 불분명한 후보를, 역시 근거가 불분명한 분노와 계량할 명분도 없는 가ㆍ상ㆍ의ㆍ부ㆍ동ㆍ산 수익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으로 뽑았기 때문에 그들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속았기 때문에 병사 봉급도 복무기간 단축도 깨지고 명분도 없는 집무실 이전에 한강 다리만 막히는 것이다.

여기에 쓸 말은 아니지만, 부동산도 경기가 좋아야 오르는 거고 심지어 미국 금리도 따져야 하는 건데 도대체 뭘 기대하고 뽑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알아서 하겠지.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난 그런 대출은 없다.
코인도 안 한다.

p158 - 결국에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2016년에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정치인이 2020년 혹은 2024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압력은 계속 쌓일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양당 체제에서 지지자들이 왜 양극화 되는지와 계속해서 양극화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부추기는 정치인ㆍ미디어ㆍ언론 환경과 인구(인종)구조 변화에 주목한다.

집필 당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지금은 좋겠네요)

지지자가 양극화 되고, 선거구에서 자기 진영의 색을 진하게 띨 수록 후원금이 많이 걷히고 지지세가 강해진다는 점, 정치적 관습을 어겨도 지탄받지 않았던 (오바마 후반기 대법관 추전을 거부한 공화당 상원의장) 사례를 통해 극단화의 양상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진보, 그러니까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상당히 왼쪽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어나는 이민자와 비백인 인구의 증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다양성으로 지지세를 확장하는 민주당의 방향을 공화당(백인 기독교 타겟)의 그것보다 높이, 그리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msnbc와 cnn 같은 언론사가 부재한 한국 땅에 발붙이고 사는 나는...)

저자는 정책도 이성도 '분노'와 '소속감'을 이길 수 없음을 트럼프 당선과 이를 해석해주는 사례 실험으로 보여준다.

유럽의 다당제보다 양당제가 낫다는 (의료보험도 복지도 뒤처지고 양극화가 더 심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주장이 석연치 않지만, 정치 구조가 상당히 닮은 우리가 눈여겨 볼 만한 곳이 상당히 많다.

물론 우리는 nyt나 wp, msnbc 등이 없지만.
(폭스와 그 종편 채널들을 비교할 수도 없다)

저자는 (당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였지만, 나는 좀 비관적이다. 아직도 60대 이상에선 518이나 1987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잔혹한 폭력에 희생됐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 태반이며, 내 나이대의 사람들도 상당수가 그러하다.

그리고 돈, 돈, 돈. 집, 아파트, 부동산, 재개발.
당장 자녀의 교육 복지, 양친의 노후 질병에 대한 답도 없는데 그랬다.

집무실 이전하고 출퇴근 난리라고 하니 "대통령은 퇴근하면 안 돼?"라는 대답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p.s. 뭐 알아서들 잘 살아라. 내가 책임질 애가 있기를 해, 엄청난 빚이 있기를 해, 양친이 연금이 없기를 해. 나는 망해도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인데, 뭘.

#우리는왜서로를미워하는가 #에즈라클라인 #황성연 #whywerepolarized #ezraklein #윌북 #정치 #대중정치 #미국정치 #양당제 #정치사회 #정치사 #미국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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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 개정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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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4 - 다 잘되자고 그런 거였어! 한 사람이라도 현실적이어야 하잖아! 신경쓸 자식들이 있었잖아.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었다.

명불허전.

변호사 로드니 스쿠다무어와 결혼한 조앤은 세 아이를 키워 독립시킨 뒤 중상류층의 안락한 삶을 살던 중 세 번 결혼하고 자진해서 아이의 양육권도 내던지고 사는 고교 동창 블란치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p26 - "조앤, 문제는 네가 죄인이 아니라는 점이야. 그러니까 넌 그 기도와도 연이 없어."

자신에 비하면 부정해 보이기까지 한 블란치는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조앤의 삶이 과연 아무렇지 않아서(?)인지를 슬며시 지적하고, 이는 조앤의 삶에 작은 파동이 되는데...

p25 -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마침 바그다드에 사는 셋째 딸 바버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기차가 지연되며 인도의 숙소에 발이 묶이게 되고, 블란치의 말에서 시작된 삶의 되새김질을 하면서 서스펜스가 시작한다.

농사를 짓고 싶은 남편의 바람을 뭉갠 것, 아들 진로를 반대한 것, 딸의 연애를 후려친 것, 친구들을 비하하고 고용인들을 인간이 아닌 용도로 대한 것 등.

본인이 옳다는 생각에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완전히 배제하고 외면했던 행각이 조앤의 머리속을 휘젓는다.

가족들이 각기 가진 싹이 움트는 '봄'같은 시간에 자신은 완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자신의 기준으로 횡포를 부린 것이다. 기억해야 할 봄, 그래서 다시 돌아올 '봄'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

물론 피상적인 현모양처 역할을 강조하던 빅토리아 시대 여성상의 문제가 명백한 것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동시에 노동하는 여성, 자유로운 여성,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들을 곳곳에 배치해서 조앤의 깨달음을 돕는 것도.

그러나 이 소설의 백미는 조앤의 내적 변화를 대하는 가족들 각각의 입장이다. 살인도 어떤 범죄도 없이 벌어지는 서스펜스의 온도가 이렇게 뚝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온도가 처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메리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의심 받을 만한 감각이다.

#봄에나는없었다 #애거사크리스티 #애거서크리스티 #agathachristie #absentinthespring #공경희 #포레 #문학동네 #심리소설 #영국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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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2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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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168 - "감자 껍질에는 글리코알칼로이드가 가득합니다. 파괴할 수 없는 독소죠. 굽거나 튀겨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자에도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사방에 위헣시 널려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위험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안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중하는 겁니다."
그녀는 칼을 들고서 덧붙였다.
"위험을 처리해보십시오."

정말 오랜만에 파죽지세로 몰아가는 소설을 읽었다. 얼마만인지 찾아보니 작년 10월에 읽은 #박완서 작가의 #도시의흉년 이후로 처음.

매들린을 홀로 키우는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가 딸 매드의 학교 짝꿍의 아버지이자 방송국 pd인 월터에게 그 맛과 영양을 인정받은 '화학적 도시락'을 통해 요리 방송의 진행을 맡게 되고, 특유의 직설적이고 도전적이며 진지한 멘트를 통해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승승장구한다.

물론 어떻게든 능력있는 여성을 멋대로 휘두르려는 ✌남자✌들의 가스라이팅을 뚫고서.

저자의 자전적 경험을 통해 특별히 조명되는 분야는 학계, 미디어, 종교.

성별에 따른 지적 능력의 차등을 의심 않는 과학계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성상을 포기 않는 미디어,
말을 하면 입만 아프고 손가락만 귀찮은 종교계.

소설의 배경인 '50년대를 반추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오만가지 조작된 '정상성'의 망령은 마치 감자를 포대로 까보면 늘상 있는 글리코알칼로이드 꼬다리 같은 것이라 늘 신경을 세우고 처리해야만 하는 피곤한 존재이지만, 어쨌든 감자를 포기할 순 없지 🤷‍♂️

그나저나 엘리자베스는 추방당한 과학자, 미혼모 같은 딱지만 붙었으나, 한국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된다. 🔥오... 하지 말자.🔥

인용면에서처럼 엘리자베스는 주변의 잔가지들은 단호하게 차단하거나 배제시킨다. 우선순위, 가장 중요한 목표와 가능한 자원을 구별해낼 수 있는 논리적 과정을 완성시킨다.

결말에서 엘리자베스에게 찾아오는 선물 세트는 반가우면서도 사알짝... 아주 살짝... '우리 회장님 아버지는 왜 아직도 날 안 찾아오시나'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소설이 첫 장면에서 이미 요리 방송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해서 마치 추리소설처럼 사건과 사건이 치밀하게 호응하며 읽힐 수 있도록 만드는 작가의 구성 능력과도 맞닿는 지점.

사건과 사건, 사건의 조각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균일하게 모여든다. 이 소설이 재빠르게 흥행과 판권 경쟁의 세례를 받게 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어서 빨리 드라마가 완성 되고 흥행해서 페미니즘의 기본값, 아주 몹시 매우 기본값이 되는 상태에 관하여 논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p85 - "그럼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평등해지기 위해 특별해져야 한다면... 여전히 뒷맛이 쓰다.

p.s. ebs의 #건축탐구집 을 보면 아직도 부인의 공간은 부엌, 남편의 공간은 서재다. 대부붇의 에피소드에서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이 전근대적인 차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 잘못한 세계라니 🤦‍♂️ 이 슈밥바비빔밥들아 설거지나 제대로 하렴.

#레슨인케미스트리 #레슨인케미스트리2 #보니가머스 #심연희 #lessonsinchemistry #bonniegarmus #다산책방 #다산북스 #미국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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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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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디자인만큼 '쨍'하다.

'50년대 미국의 화학계에서 어렵사리 석사 학위를 받은 재능있는 여성 #엘리자베스조트 는 캘리포니아의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간신히 취업을 하지만 학계와 산업계의 전반적인 여성차별과 착취, 희롱에 매일매일이 (읽기만 해도) 징글징글하다.

같은 연구소의 #캘빈에번스 는 약간 또라이 같은데도 능력껏 자기 연구 성과도 올리고 간섭받지 않는 연구실도 제공 받는데...

소설의 1권은 얼리자베스 조트가 이 둘의 로맨스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해 긴급하게 동거와 장례식(!?)과 엘리자베스의 임신으로 직진한다.

여성 과학자의 연구는 쓸모가 없고 연애는 성과를 훔치기 위한 꼬리치는 작업이며, 규정과 법을 무시하고 후려쳐도 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개도라이들도 쉴새없이 등장한다.

어쨌든 그래서 태어난 매드 조트와 엘리자베스의 난데없는 TV 요리쇼 출연까지.

#roevswade 판결이 뒤엎어진 부조리하고 역겨운 시기에 읽는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질주하는 이야기 자체가 이런 상황을 긍부정 상관없이 빠르게 무시하고 지나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조트의 심정을 은유하는 것만 같았다. 나라도 나에게 쿨해져야 버틸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더불어 캘빈을 통해 소개되고 배우게 되는 '조정'이 이 소설에 부치는 의미가 남다르다.

p276 - "조정도 육아도 인내심과 지구력, 힘과 헌신이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지 보지 못한다는 것도 그래요. 오로지 우리가 어디까지 왔나만 볼 수 있죠."

#레슨인케미스트리 #레슨인케미스트리1 #보니가머스 #심엲디 #bonniegarmus #lessonsinchemistry #다산북스 #다산책방 #미국소설 #책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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