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장장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의 끝은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의 난폭>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 이번 연휴는 가즈오 이시구로 전작에 도전하기가 목표였던 것처럼 지난 주 노벨문학상 발표가 난 뒤 그의 작품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읽어댔다. 그렇게 어느 작가에 빠져 읽은 적이 있었던가? 아마 그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지난 8월부터 잡고 있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한 요시다 슈이치의 <사랑에 난폭>으로 끝을 맺었다.

 

지난 여름, 절반 가량 읽다만 책의 중간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장 재미가 있어지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사랑의 난폭>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세 모모코 씨는 결혼 8년차 위기의 주부로, 결혼 전 성은 다케노우치다. 그녀의 남편은 마모루로, 자그마치 16살이나 어린 연하의 여성과 바람이 났다. 애인의 이름은 미야케 나오, 현재 임신 중이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변신한 스타일 좋은 미녀 모모코 씨는 비누교실 강사로 소일하며, 병으로 몸져 누운 시아버지의 병간호에도 소홀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집안의 비밀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모모코는 시어머니 데루코가 사시는 안채를 드나들며 비밀을 캐내기 시작한다. 마모루의 중재로 불륜에 얽힌 삼자가 대면헤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호텔에서 모모코 씨가 보여주는 히스테리는 우리네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해서 그런가, 사실 덤덤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간에 마모루는 모모코와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나오와 새출발을 계획 중이다.

 

마모루와 나오의 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서 사건의 실체를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 미션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객관적 실체에 도달하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올해부터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범작은 아닌 <사랑에 난폭>. 한 남자를 두고, 그 남자를 서로 사랑한다고 우기는 두 여성 모모코와 나오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이루게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 스포일러 들어갑니다. 책을 읽으실 분들에게 치명적인 요소이니 감안해서 읽어 주시길.

 

요시다 슈이치가 남성작가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하지만, 이 능구렁이 같은 작가는 어쩌며 이렇게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약간 헷갈리는 일기 구성으로 사실은 모모코가 리츠코와 결혼 생활 중이던 마모루의 결혼을 파탄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게다가 임신이라는 무기로 결혼에까지 골인하는데 성공했지만 계류유산으로 이미 아이는 그녀의 뱃속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독자는 모모코 씨의 현재 일기와 과거 일기가 중첩되는 가운데 마침내 진실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한 번 불륜으로 결혼을 파탄낸 과거가 있는 남자가 두 번이라고 마다할까. 모모코 씨는 한사코 마모루의 이혼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지만, 어쩌면 이미 그녀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분노, 분함 그리고 비참함이라는 3종 세트의 감정이 그야말로 회오리바람처럼 그렇게 몰아 닥친다.

 

시어머니가 자신이 몰래 파놓은 육첩다다미를 뒤졌다고 분노하지만 막상 자신 역시 시어머니의 본채를 마음대로 드나들지 않았던가?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에 난폭’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격렬하게 공감할 수가 있었다. 그렇구나. 왜 역지사지로 사유해 보지 않았던 걸까? 자신도 이미 비슷한 상황으로 리츠코 씨의 결혼을 파탄낸 장본인이면서 이번에는 나오 씨에게 절대 양보할 수 없노라고 버티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 삶이란 그렇게 가는 거지.

 

별채를 찾아온 마모루에게 모모코가 파경의 이유를 찾는 장면은 그래서 더 추해 보였다. 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왜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던지. 친구 하즈키의 조언대로, 챙길 것은 챙기고 미련 없이 보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바람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은 간과한 채, 마모루와 모모코의 부부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아들 편을 드는 시월드의 주인장도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 ‘어이가 없네’라는 말 따위로 자신의 아들의 잘못을 덮을 수 없다는 걸 시어머니는 과연 몰랐을까? 나중에 모모코 씨가 진실을 들려주었을 때 한사코 부인하는 장면에서도 역시나 정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

 

<사랑에 난폭>은 순수한 열정 아니 욕망으로 시작된 격정적인 사랑에 이은 결혼생활이 8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열정은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부부에 대한 요시다 슈이치의 흥미로운 리포트가 아닐 수 없다. 역대급 장기간의 연휴를 마무리하는데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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