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 국가를 바라보는 젊은 중국 지식인의 인문여행기 1
쉬즈위안 지음, 김태성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북한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결국 국내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이 되고야 말았다. 여전히 사드 배치가 국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고 있다. 우선 이웃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복이 시작됐고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중국 시장 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동안 국내 면세점을 싹쓸이하다시피 해온 유커들의 국내여행 제한으로 관광업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역시 보이지 않는 불매의 여파 탓인지 매출이 급락 중이라는 뉴스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하게 중국을 우리의 상품시장으로만 생각해온 게 아니었던가 하는 착각 말이다. 이런 시점에서 중국의 젊은 지식인 쉬즈위안이 자국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단상들을 기록한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는 우리가 중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와 거래하면서 재미를 본 기업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착취하는 폭스콘 정도가 있지 않나 싶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중국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을 대신해서 여전히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즈위안 역시 아무래도 체제 안에서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극도로 조심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이 존재하고, 인터넷을 통한 소통조차 국가적 차원에서 막는 나라가 중국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쉬즈위안이 이 책에서 키워드로 삼은 단어는 바로 단절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시절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 사람인 저자는 내가 그동안 만난 작가들인 옌렌커나 위화, 류전윈 혹은 하진이 자신들의 조국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른 시선을 유지한다. 보다 객관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 앞선 지식인들이 문화대혁명을 직접 겪은 세대라고 한다면, 쉬즈위안은 중국의 역사를 후퇴시킨 문화대혁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에 해당한다. 오히려 개혁개방의 세대라고 해야 할까. 마오쩌둥이 시작한 어처구니없는 문화대혁명이 어떻게 중국을 과거와 현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열 단절시켰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찰이라고 해야 할까.

 

쉬즈위안은 만주에서부터 시작해서 윈난에 이르는 그리고 아직도 중국이 수복하지 못한 타이완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선보인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오래된 가치들은 모두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오로지 개발에 입각한 도금주의가 판치는 세계가 과연 현재 중국의 지향점인지 저자는 묻는다. 이천 년된 고성을 허물고, 어떤 개성도 보이지 않는 신축 건물들이 치솟아 오르는 중국의 오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을 수 없는 중국 인민들을 과연 그들의 지도자들은 관심을 기울일까?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욕구 대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담보해야 하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부의 고민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는 부분이 아쉬웠다. 덩샤오핑의 시장자본주의 도입 이래 가속화되가는 사회적 불공평과 사회복지 그리고 분배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벌써 9년이나 되었지만, 아편전쟁 이래 서방 열강들에게 치욕적인 영토할양과 침탈을 당해온 중국이 대국굴기의 기점으로 잡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쉬즈위안의 스케치는 주목할 만하다. 베이징의 수많은 마천루를 실제로 만들어낸 농민공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국제적 이벤트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까.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천두슈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 설계자이자 이데올로그였던 천두슈를 트로츠키파라고 폄하하고,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우리의 상황과도 비교가 됐다. 우리도 여전히 소모적인 건국절 타령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서세동점의 19세기말, 청나라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해서 마지막 수명을 연장해 보려고 했지만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순 없었다. 청말 급진적 지식인의 대명사였던 캉유웨이나 량치치오 같은 인물들고 보황파로 몰리지 않았던가. 좀처럼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던 제국의 균열을 위해 오월 열사 같은 인물들이 청나라 관료들에 대한 테러로 혁명의 씨앗이 되고자 했다는 사실도 쉬즈위안의 글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어쩌면 쉬즈위안은 시스템 내에서 개혁을 시도하는 작금의 상황을 청나라 말기의 상황에 비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쑨원이 이끄는 혁명이 그렇게 순식간에 제국을 뒤엎게 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물론 그 뒤에 따른 환멸의 과정을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대 중국 예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 보니, 저자가 중원 주유기 후반에서 다룬 자장커나 중국 최고의 현대미술가로 손꼽힌다는 천단칭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저자의 저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장커의 영화나 천단칭의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반박이라도 하겠는데 아는 게 없으니 그저 저자가 기술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꼭지에서 다룬 위화 작가의 경우에는 적잖이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던 <형제>에 대해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엮어낸 것 같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그리고 문제의식은 좋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했던가. 작가가 정치지도자가 아닌 바에야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에서 쉬즈위안이 다루는 바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고 고담준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점을 저자가 인식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인물들과의 다양한 인터뷰가 게재되어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둔한 독자가 무식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