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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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20년 지기 대학 동창들을 만났다. 오늘 아침에도 회사 동료와 말했지만 오랜 친구들과의 어떤 일들은 그렇게 시간이 오래 됐는데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가 하면, 불과 며칠 전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제임스 설터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참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전혀 모르는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름 책 좀 읽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문학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아는 것 이상이구나 싶다. 지지난달 문학동네 팟캐스트 <문학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제임스 설터의 이름을 듣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그의 작품 <어젯밤>을 구입해서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읽기 시작했다.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린 그의 소설집 <어젯밤>은 확실히 특이한 소설이다.

 

이 책의 역자 박상미 씨는 배신을 이 책의 코드로 뽑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수긍이 갔다. 하지만 내가 고른 이 책의 코드는 배신보다는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왕년에 군인이었던 작가 제임스 설터는 자신이 경험한 동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군인이라면 누구나 죽어서 묻히고 싶어하는 알링턴 국립묘지(아마 우리나라도 치면 현충원이겠다)에 갈 수 없는 어느 군인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준다. 그는 어떤 일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되었지만, 그에게 더 소중한 것은 야나와 함께 보낸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라면, 그 군인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한 때 군인이었던 작가는 가치와 추억을 동일선상에 두고 독자는 어떤가라고 조용하게 묻는다.

 

제임스 설터의 단편은 묘하게 과거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현재에 대입하며,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플라자 호텔>이 그 대표 중의 하나다. 월 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중년의 아서는 어느 날 예전에 사랑하던 여인 노린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그 시절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여인의 추억은 스멀거리는 욕망을 주술처럼 불러낸다. 전화 받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일이라는 아서와 노린과의 대화는 묘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게다가 노린은 남편과 헤어져 돌아왔단다. 아주 평범한 그들의 대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많은 것들을 함축한다. 한 때, 여자 때문에 유대교 계율을 어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남자. 결혼하기 전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남자는 물러선다. 그리고 다시 재회하게 된 남자는 그녀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보고 다시 한 번 뒤로 물러선다. ,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쩔 텐가 하고, 또다시 묻는다. 제임스 설터의 단편은 그의 글을 소비하는 독자의 자아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다.

 

기억만큼이나 배신도 <어젯밤>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의 하나다. <포기>에서는 겉보기에 아내와 지극히 평범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는 남자의 이율배반적인 배신을 적확하게 지적한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이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예술가들의 행위는 보통의 도덕률마저도 뛰어넘는다는 말인가. 여기서 포기는 어떤 포기를 말하는가? 남편에 대한 아내의 포기인가? 아니면 내 인생의 절반을 포기하는 남자의 심정인가? 이 포기에 대한 시간적 배경 또한 공교롭게도 어젯밤이다.

 

<귀고리>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금기는 모두 깨지기 마련이고, 해서는 안되는 행위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치르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비극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를 모두 다 가지고 싶어 하는 남자에게 선택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유복한 가정생활 그리고 정부(너무 평범한 어휘일까)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 브라이언은 자신의 애인 패밀라가 자신의 장인과 어떤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만 질투심에 사로 잡힌다. 여기서도 보통 사람이 가지게 될 흔한 도덕은 실종된다. 자신도 그 순간, 매력적인 패밀라에게 차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관계는 중첩된다. 그 중첩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감을 누릴 수도 반대로 비탄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의 선택에 당신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또다시 제임스 설터는 묻는다.

 

왜 작가가 표제작이자 마지막 이야기 <어젯밤>을 말미에 배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어젯밤>은 배신의 코드에 적합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궁에서 시작되어 전신으로 퍼져 가는 병을 매조지하기 위해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아내와 남편.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부부가 알고 지내는 친구 수잔나를 초대한다. 죽음에의 초대. 이 초대는 두 여자 모두에게 끔찍하기 짝이 없는 초대다. 그 죽음을 실행해야 하는 남편 월터는 더하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만찬에서 남편은 생전 마셔 보지 못한 575달러 슈발 블랑을 주문한다. 그는 35달러가 넘는 와인을 시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죽음 앞에서는 비용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비싼 마지막 와인을 수잔나에게 따라줬다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독자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독자의 이성은 무장해제당했다. 그 다음 전개는 죽음의 실행, 배신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도대체 당신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대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가? 그렇다면 제임스 설터를 읽을지어다. 수잔 손택의 비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제임스 설터의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첫 경험이 이럴진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가벼운 나날>(1975)은 또 어떨까. 단언컨대 2013년 최고의 독서 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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