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줘 - 자크 프레베르 시화집
자크 프레베르 지음, 로낭 바델 그림, 박준우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주말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다. 희망도서로 신청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그래픽노블>이 도착했다고 해서. 집에서 출발할 때는 추웠는데, 도서관에 가는 동안 더워졌다. 아니, 걸어서 더워졌는지도. 쓱데이라 쇼핑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이마트에 갔을 적에 지하 주차장 온도는 31도였다. 11월인데 이거 여름인가 싶더라. 근데 걱정하지 마, 다음 주에는 바로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니까.

 

또 살짝 옆으로 새는구나.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화집 <나를 안아줘>였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하지만, 리뷰를 쓰기 위해 일단 대출해서 집에 가져왔다. 책을 다섯 권이나 빌려서 집에 오는 내내 무거웠다. 내가 쓰는 쓰는 리뷰는 그만큼의 무게일까.

 

40쪽 남짓 되는 시화집에는 파리에 사는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내가 또 이런 거 좋아하지. 로낭 바델이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체에서는 왠지 2년 전에 작고하신 장 자크 상페가 떠올랐다. 프랑스 작가들은 대부분 이런 스타일의 왠지 헐거워 보이는 그런 그림체들을 선호하는가 싶기도 하고. 세밀화 보다는 왠지 모르게 빈 공간 혹은 여백의 미학의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 마음에는 든다. 카툰도 왠지 미국 스타일의 그것보다는 유럽 작가들의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시화는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니 키스를 하는 커플에 대한 자크 프레베르의 시선이었다. 이곳이 한국의 서울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대중의 시선은 비슷한 모양이다. 누군가는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해서, 공공장소에서 그런 애정행각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네. 온전히 그 시간은 그들의 것이라고, 작가는 선언한다. 그냥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면 되지 않나.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너그러움과 관대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국 삶에서 온 게 아닐까. 누구나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아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아니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모두 다 알고 싶지도 않다. 결국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본질적 질문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오페라하우스 같이 으리으리한 홀에 우뚝 선 지휘자. 지휘자 좌측에서는 하프로 무장한 궁수 같은 이가 사랑의 화살을 우측의 가냘파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날리기 일보직전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만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에게 노래 혹은 화살로 평생 갈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공통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전달해도, 그전에 이미 무언의 제스처나 공기의 흐름 같은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던가. 짧은 메시지와 한 컷의 그림만으로도 참 많은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도마뱀이 내 손에서 튀면서 꼬리를 남기고 떠났대.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누군가를 구속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남긴 부작용을 작가는 도마뱀 꼬리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시시각각 소용돌이 치는 내 감정조차도 종잡을 수가 없는데 어찌 타인의 감정을 내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삶을 알지 못하고, 날을 알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사랑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가. 삶이나 사랑이 모두 예정된 길로만 가게 된다면 그 또한 심심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변주되면 또 그것도 감당할 수 없겠지만.

 

짧은 시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자크 프레베르의 <나를 안아줘>에는 많은 울림이 담겨 있다.뭐랄까 오래 전, 진지보수 공사 나가서 땅에서 캐낸 칡을 씹는 그런 맛일까. 씹을수록 맛이 나는, 읽을수록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원제 <Embrasse-moi>(웅브하세 무아~)는 샹송 가수 뤼시엥 드릴이 1946년에 발표한 곡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드릴의 샹송은 아주 간드러진다. 책 읽다가 이렇게 샹송곡도 알게 되는구나.

 

[뱀다리] 나온 지 4년 밖에 안 되었는데 절판이라니,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