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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어제 책을 받고 나서 그야말로 걸신들린 책을 씹어 먹... 아니 책을 읽었다. 평소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걸출한 입담으로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시던 황교익 선생이 책을 냈다고 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요즘 한풀 꺾이긴 했어도 먹방 쿡방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유행이 언제나 그렇듯 먹방의 호시절도 지나고 있다. 어디선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제작비 대비 가성비가 뛰어났기 때문에 방송에서 대유행했다는 썰도 들은 듯 싶다. 그리고 어느 맛집이라는 데 가보면 텔레비전에 나온 집, 아니 심지어 곧 텔레비전에 나올 집이라는 광고까지 있을 정도로 어지간한 음식점이면 맛집 타이틀을 달지 않은 곳이 없더라. 내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회사에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피디가 와서 맛있게 먹어 달라며 한 마디 해달라고 하는데 어느 동료는 화를 버럭 내며 내 돈 주고 밥 먹는데 왜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피디를 꾸짖던 패기가 문득 떠올랐다. 나도 한 때 인터뷰 따느라 고생한 적이 있어서, 피디의 말대로 온순한 양처럼 하긴 했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났다.
항상 그렇지만 시작부터 삼천포다. 시작부터 삼천포로 가야 제대로 이야기가 되는가. 암튼 대한민국 맛 칼럼니스트 1호라 부를 수 있는 황교익 선생의 썰은 까칠하다. 아니 이런 양반이 썰전에 나가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우리의 입맛은 우리가 주로 먹는 음식에서 비롯되었다. 삼겹살 신화는 수출장려운동이 벌어지던 시절, 등심과 안심을 죄다 외국으로 수출하고 남은 찌끄래기를 먹을 방법을 고안하다 생겨났다지. 그래서 족발 삼겹살 순대 기타 등등 요리들이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80년대 LPG 가스의 도입으로 지글지글 타는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 놓고 쐬주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음식에 대한 입맛은 지극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황선생의 주장이다. 한국인은 왜 밥을 먹어야 하나? 빵을 먹고 살면 안 되나. 다른 먹거리들이 지천인데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교조주의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 어머니도 ‘사람이 밥을 먹어야 힘을 쓰지’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아니 빵이나 고기를 먹고도 힘을 잘 쓸 수 있는데, 아니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해본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도 공감하다. 이러다 황선생 교도가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다른 걸 먹어 봤어야 그게 맛있는지 알 수 있지.
내가 어릴 적에는 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치킨 이런 건 없었다. 오로지 시장에서 파는 통닭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 닭집에서 튀긴 통닭은 거대했다. 어쩌면 시중에서 우리가 먹는 육계는 산업상 필요하기 때문에 덜 키워서 육향도 나지 않고 그런다는 황선생의 지적이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닭이 너무 작다는 거다. 뉴스공장에서도 선생이 주장했듯이, 다른 고기들은 보통 근수로 파는데 왜 닭은 마리 기준으로 파는 걸까? 그만큼 닭고기가 대중에게 접근성이 강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봤다. 여전히 한우 소고기는 비싸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돈만 있다면 삼시 세끼 흡입할 수 있지만 아직 나의 소비 수준은 그 정도는 아닌가 보다.
모든 건 산업의 논리에 따르게 되어 있다는 선생의 말에 수긍이 간다. 대량구매, 대량생산 시스템의 유통재벌이 서민들을 위해 내놓은 통큰 시리즈를 구입하는 사는 우파 논리를 그리고 조금 까다롭고 비용이 들더라도 원산지와 생산자를 확인하는 공정구매를 선택하는 이들은 좌파 논리를 따른다는 말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식탁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되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도래는 어쩌면 농업국가에서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노동자들을 위한 자본의 필연적 개입이 아니었을까. 어느 책에서는 짜장면이야말로 한국 산업화에 투신한 다수 노동자들의 전투식량이라는 표현도 썼다. 어릴 적 나에게 짜장면은 한 달에 딱 한 번 아버지 어머니 월급날 먹을 수 있는 별미기도 했지만.
황교익 선생이 도전하는 음식 신화는 무궁무진하다.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입맛이 다셔지는 떡볶이가 사실은 떡탕이나 떡고추장조림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생각, 일제가 만들어낸 천일염 신화, 공감할 수는 없지만 김밥의 원조가 일본의 후토마키라는 썰 등 <음식은 어떻게 진화가 되는가>에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해 오던 음식에 대한 다양한 서사가 독자를 유혹한다. 아 그리고 추석 상에 오르는 음식들이 사실은 절기상 가장 맛이 없으며, 전통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음식 준비도 남자가 해야 한다는 주장 앞에서는 환호작약했다. 뭐 우리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잘 모르겠지만,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시던 바나나나 파인애플 그리고 맥주 같은 음식을 올리면 왜 안 되는지 나는 궁금했는데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억압된 집단 기억으로부터의 해방감마저 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읽는 동안, 유쾌하고 즐거웠으며 덤으로 집단기억의 속박으로부터 해방까지 얻을 수가 있어 좋았다. 타자화된 관성적 미각의 판타지로부터 해방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