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 전, 어둠컴컴한 어느 시데마떼끄에서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 블루> 무삭제판을 자막도 없이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 베티의 삶이 화려하고 좋았을 적에는 오렌지색이었다가, 그녀의 광기가 폭발하는 후반으로 갈수록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노란 세계>로 출발한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푸른 세계>를 읽으면서 그 영화 <베티 블루>의 기억들이 그렇게 소환되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이름은 없지만, 편의상 나중에 붙게 되는 이름은 소로야로 부르자. 순전히 얼치기 독자의 편의적 발상이니 이해해 주시길. 어려서 입양된 소로야는 아버지가 죽은 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선고를 받는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다만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니면 애써 외면하면서 살고 있을 뿐.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잊지 않는다면 일상의 생활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두 죽을 텐데하고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로야만큼이나 저자 에스피노사의 삶도 그랬던 모양이다. 오래 전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는데,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아마 그 소설에서도 죽음이 주제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푸른 세계>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니까 죽음이 사나흘 밖에 남지 않은 소로야는 망자들의 휴식처로 알려진 ‘그랜드호텔’로 향한다.

 

비행기를 타고, 자신을 그랜드호텔로 안내해줄 소년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 차가 퍼져서 단봉낙타를 타기도 한다. 작가는 죽음이 어쩌면 그런 경로를 통해 도달하게 된다는 걸 문학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걸까. 우매한 독자는 이게 판타지인지 아니면 리얼리티의 재현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구상하는 바를 읽지 못한 어쩌면 실패한 독서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밝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말이다.

 

낙타몰이는 하나의 신고식이었던 모양이다. 사지가 없는 몸통소년을 비롯해서 소로야와 비슷한 상황, 그러니까 죽음을 기다리는 열 명의 이들이 있는 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들 얼마 살지 않은 이들이지만, 그곳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충분히 삶에 대한 의지를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숙명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죽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는 동안, 소로야는 그들의 리더가 된다.

 

임신한 여자와 춤을 추기도 하고, 어쩌면 춤이라는 행위 자체가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두가 추정이다. 에스피노사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는 모호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열심히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왜냐구? 나 역시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꾸만 죽음 그리고 소멸에 대해 생각해서 무엇하리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자유로운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면 대부분 돌+아이를 떠올린다. 일탈을 배격하는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은 질서와 안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앞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여력을 쏟을 여유가 없겠지. 그런 점에서 그랜드호텔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잉여일 따름이다. 지금은 그런 대로 유용하겠지만, 어느 순간 나도 잉여가 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혼돈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니 불과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읽은 내용들인데도 벌써부터 콘텐츠에 대한 기억들이 휘발해 버리고 있다. 아마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내가 의도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억들을 지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두꺼운 책보다도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무지몽매한 독자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중한 접근 대신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말이다. 생존율 3%의 기적을 이겨내고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