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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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무도 외롭지 않게 되기를.  작가의 말(287쪽)


1. 빛과 그림자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둠 속 가로등 불빛이 창을 넘어 그림자를 남긴다. 해진의 방은 또렷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직사각형 그림자 모양을 한 빛이 멈추는 곳이다.

   그림자는 마음속에 담고 있는 그늘진 면, 쓰라린 기억, 상처, 상실을 상징한다. 이런 그림자는 불안이나 강박증, 심심하고 쓸쓸해 하는 미지의 존재로 발현하는데, 등장인물 누구나 그림자를 가진 채 살아가며 어딘가 이상한 면이 있다.


2. 상실… 이상해 보이더라도 지키고 싶은 것들

   모든 등장인물의 내면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처나 결핍이 있다. 이미 어떤 것을 잃었거나 잃을까 봐, 지키려고 애쓰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친구, 가족, 우체통, 일터, 꿈, 아무 일도 없는 보통의 나날 등 제각각이다. 이런 것을 지키거나 채우기 위한 그들의 행동은 조금 특이하고 이상해 보인다.

   한편, 이들의 슬픔은 자책에 머물 뿐 남을 탓하는 원망으로 번지지 않는다. 이들이 가진 결핍은 일상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슬프고 부족하고 조금 이상해 보이더라도, 스스로 이겨내거나 서로 응원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3. 봄

   이 소설은 계절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지 않지만, 계속 봄을 언급한다. 소설 속 봄은 새하얀 목련처럼 피어나는 시기이면서 상실의 시기이기도 했다. 봄이 찾아오면 쓰라린 아픔이 되살아난다. 반면, 은근하게 나타나 고요하게 주변을 감싸는 봄볕으로도 봄을 표현하였는데,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다독이는 것 같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창으로 들어온 빛 그림자가 잔뜩 웅크린 누군가의 몸을 품은 듯 안온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이 책 속 세상은 봄볕처럼 보드랍고 따스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바람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닿아 온기가 전해지고 아무도 외롭지 않게 되기를, 나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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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캔디 할머니의 비밀 주머니
양부현 지음 / 알투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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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얼기설기 연결되어 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받쳐준다.

1. 단야

   삶의 물음표를 가진 세 사람이 단야역에 내려 잠시 마을에 머물렀다가 떠났다. 각자의 고단한 사연으로, 각자의 시간에, 단야를 스쳐 갔다.

   역 안내도에서도 검색창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누군가에겐 열려 있는 '단야역'은 어디쯤일까? 어쩌면 해리포터의 눈에 띈 킹스크로스역 9와 3/4 승강장 같은 곳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홀린 듯 따라 들어간 토끼굴 같은 곳일까?

   단야는 세 사람의 인연이 겹치는 미스테리한 지점이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변화하였다. 변화의 방향은 세 사람이 단야를 떠나며 바라보는 한자에서 드러났다. 세 사람이 본 단야의 의미는 달랐다. 여자는 '둥근 밤(團夜 : 둥글 단, 밤 야)'으로, 남자는 '넓은 들판에 놓인 연단(壇野 : 조금 높은 자리 단, 들 야)'으로, 젊은 남자는 '야자나무가 줄지어 선 길(單椰 : 오직 단, 야자나무 야)'로 보았다. 각자 본 단야의 의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의 방향을 바꾸고 삶이 변화하였다.

   단야는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선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 시공간은 환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제공하였다.

2. 세 가지 맛 스카치캔디

   이야기는 여자 → 남자 → 여자 → 남자 → 여자와 남자 → 또 다른 젊은 남자로 각 장의 화자가 바뀌며 이어진다. 세 사람 중 스카치캔디 주머니를 가진 할머니를 직접 만난 사람은 여자였다. 여자는 스카치캔디 주머니를 가진 할머니에게 사탕을 얻었다. 남자는 할머니의 스카치캔디 주머니를 주웠고, 또다른 젊은 남자는 스카치캔디 할머니의 아들을 만나 할머니가 남긴 말씀을 전해 들었다. 세 가지 맛 스카치캔디처럼 세 가지 이야기로 풀어갔다.

   작가는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에 격언을 자주 인용하였다. 장마다 열 개 가까이 격언을 배치하였는데, 격언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었다. 마치 스카치캔디 한 알을 입에 물고 녹이듯, 격언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내는 캔디 같은 역할을 했다.

3. 사람들

   사실 세 사람은 얽히고설킨 인연이었다. 상대에게 호감을 느낀 동료였고, 웹 소설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이 시대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단야에서 펼쳐 든 책 속 등장인물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였다.

   단야에 머물었던 세 사람은 제 뜻과 제힘으로 변화를 이끌어 타인을 이해하고 진실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까운 주변의 솔직한 이야기는 힘과 울림을 지니고 타인의 마음에 가닿아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갈 힘을 나눠주었다. 긴 세월 차곡차곡 채운 시간도 힘을 보태었다. 사람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서로에게 중요하다고 이 책이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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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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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이다.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 느낌을 주는 책은 유명한 과학자의 평전이기도,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과 편견을 뒤엎는 폭로성 글이기도, 에세이기도, 과학 교양서이기도 하다.

   룰루 밀러는 삶의 혼돈을 겪으며 내면의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파헤쳤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불굴의 태도와 낙천성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희망을 찾을 처방을 발견할 있기를 바라며 그의 발자취를 좇았다. 하지만, 견제하지 않는 긍정적 착각이 사악한 힘으로 변질할 있음을 목격하였다.

   책 제목 그대로, 우리가 '어류'라고 부르는 범주는 분류학적으로 맞지 않는 정보이다. 룰루 밀러는 기존의 과학적 '범주'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오해를 낳을 있는지 '어류'라는 범주를 통해 보여준다.

좋은 과학이 일은 우리가 자연에 임의로 그어놓은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 모든 생물에게는 우리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또한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순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룰루 밀러는 우리의 존재는 금세 사라질 위의 위의 점처럼 사소하지만, 존재를 잇는 실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살아남게 떠받쳐준다고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사소하고 모두 중요하다메리 올리버 시인이 '우주가 우리에게 선물은 질문하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듯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는 분류와 지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이 상상할 없는 영역을 새롭게 분류한다면, 기존 과학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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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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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호흡의 필요』에 실린 짤막한 글은 시 같기도 하고, 남몰래 꺼내 읽는 쪽지 같기도 하다. 작가가 '필요한 만큼 짤막하게 적은 말'은 온기를 품고 나에게 소중하게 와닿는다.

   산문시 「그때일지도 몰라」 에서 '너'는 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언제 아이가 아니게 되었는지, 그 '언제'가 언제였는지 반복하여 묻는다. '너'는 독자에게 가닿아 수많은 '너'가 되어, 지나온 나날을 되돌아보며 그때를 더듬어 본다. 이미 먼 길을 걸어왔고 더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버렸다고 알아채는 '너'를, 작가의 글이 다정하고 애틋하게 보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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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나라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마리트 퇴른크비스트 그림, 김라합 옮김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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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삐삐 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이 쓴 단편 소설이다. 단편집 『Nils Karlsson-Pyssling』(Rabén & Sjögren, 1949)에 수록되었던 이 글은 마리트 퇴른크비스트(Marit Törnqvist)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1994). 이후 1998년에 영어판 『In the Land of Twilight』로 번역되었다.

다리가 아파서 일 년째 카를베리 거리의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예란(Göran)이 매일 밤 황혼의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정 기간(어스름 녘) 실재하는 세계와 환상의 세계(어스름 나라)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불가능할 것이 없는 모험을 떠난다. 외롭고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약자의 편에 섰고 불의, 인종 차별 및 기타 억압에 반대했던 린드그렌의 글에는 혼자 있거나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란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종일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블록 쌓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어스름한 시간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스름 나라에 사는 어스름 나라 사람, 백합 줄기 아저씨(Mr. Liljonkvast)다! 백합 줄기 아저씨와 예란은 훨훨 날아오른다.

백합 줄기 아저씨는 예란을 데리고 클라라 교회 첨탑, 크로노베리 공원의 사탕 나무, 성 에릭 거리의 4호선 전차, 궁전, 빨간 버스, 동물원, 오래된 시골 농가, 고요한 백합의 집을 누빈다. 자유롭고 거침 없이 훨훨 날아서.

예란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가보고 전차와 버스도 운전할 수 있다. 어스름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말코손바닥사슴과 아기 곰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이 책에 묘사된 스톡홀름은 시적이고 아름답다. 마리트 퇴른크비스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신비하고 따뜻하다.

예란이 백합 줄기 아저씨와 어두운 방을 벗어나 어스름에 싸인 스톡홀름으로 날아오른다. 뿌옇기도 하고 푸르스름하기도 한 어스름에 싸인 스톡홀름은 달콤하고 상냥하고 신난다. 어슬녘의 시간에 펼쳐지는 판타지는 일시적이지만, 예란이 느끼는 제약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진다. 어스름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일 밤 어스름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예란에게, 어슬녘은 자유롭고 따뜻한 시간일 것이다. 단지 꿈이거나 상상일지라도, 나도 마음이 힘겹고 고될 때 어스름이 내리는 틈을 타, 예란과 백합 줄기 아저씨의 시간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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