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하나를 샀다 - 2022 문학나눔 선정도서 시인수첩 시인선 53
이서화 지음 / 여우난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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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 내리는 아침에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
비 오늘 날씨가 마음에 들어 ‘날씨‘라는 낱말이 든 시집이 눈에 띄었고, 여러 시 중에서 오늘 아침 날씨와 딱 알맞은 시 〈부슬부슬〉에 눈길이 머물렀다.
흩날리는 비의 모양새, 여름비가 실어오는 냄새, 여름꽃과 벌레와 익어가는 과실과 장독대 풍경까지 〈부슬부슬〉의 시어에 감도는 것 같은 표현이 좋다.

시 〈흔들리는 채광〉에서는 여름 햇살의 내음이 묻어난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아름답다.

​흔들리는 이파리에서
즐거운 햇살이 와르르 쏟아진다

나는 아침 동 틀 무렵,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못 알아듣기 때문에 듣기 좋은 소리일지도 모르지만—새 소리는 참 듣기 좋다. 시 〈귀로 듣는 새〉에서 ‘귀로 듣는 새‘라는 표현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이지만
귀로는 너무나 익숙한 새
내 귀와 친한 그 새를
귀로 듣는 새라고 한다

〈책들은 말더듬이〉에서는 이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만나는, 더듬더듬 도착한 낱말과 문장들. 그 수고로움과 아름다움에 감사한다.

세상 어느 필자치고
빈 종이 앞에서
더듬지 않은 적 있을까

고작 한 장 채우는 일
그중에서도 여백이니 행간이니
다 챙기면서도 하루를
훌쩍 넘기거나 이틀을 넘긴
그 더듬더듬 도착한
문장의 배열들

〈실뜨기〉에서는 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실을 말에 빗댄 표현이 참 좋다.

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말,
바람의 언어다

실뜨기를 끝낸 뒤 마음에 무늬가 남는다는 표현도 마음에 남는다.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경험한 후에 마음에 남는 수만 가지의 무늬가 떠오른다.

실뜨기를 끝낸 두 사람
실은 어디에도 없지만 마음에는
수만 가지의 무늬가 남아 있다.

〈수소문〉 중 ‘누구에게나 간절해서 무수한 조각을 찾아 맞추는 일‘, ‘뒤를 찾으면 앞이 없고 팔을 찾으면 귀가 없는 그런 수소문‘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공감했다.

이 밖에도 〈얼지 않는 밥〉에서 ‘아침은 각각의 빛으로 오고 저녁은 비스듬한 문틈으로 사라진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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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들은 타고나는걸까요. 아침이 오고 저녁이 사라지는 표현 참 예쁩니다 *^^*

행간 2022-07-19 20:47   좋아요 1 | URL
저도 아름다운 시어와 문장에 포옥 빠졌어요. 따뜻한 댓글 남겨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