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 내리는 아침에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비 오늘 날씨가 마음에 들어 ‘날씨‘라는 낱말이 든 시집이 눈에 띄었고, 여러 시 중에서 오늘 아침 날씨와 딱 알맞은 시 〈부슬부슬〉에 눈길이 머물렀다.흩날리는 비의 모양새, 여름비가 실어오는 냄새, 여름꽃과 벌레와 익어가는 과실과 장독대 풍경까지 〈부슬부슬〉의 시어에 감도는 것 같은 표현이 좋다.시 〈흔들리는 채광〉에서는 여름 햇살의 내음이 묻어난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아름답다.흔들리는 이파리에서즐거운 햇살이 와르르 쏟아진다나는 아침 동 틀 무렵,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못 알아듣기 때문에 듣기 좋은 소리일지도 모르지만—새 소리는 참 듣기 좋다. 시 〈귀로 듣는 새〉에서 ‘귀로 듣는 새‘라는 표현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이지만 귀로는 너무나 익숙한 새내 귀와 친한 그 새를 귀로 듣는 새라고 한다〈책들은 말더듬이〉에서는 이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만나는, 더듬더듬 도착한 낱말과 문장들. 그 수고로움과 아름다움에 감사한다.세상 어느 필자치고 빈 종이 앞에서 더듬지 않은 적 있을까고작 한 장 채우는 일그중에서도 여백이니 행간이니다 챙기면서도 하루를훌쩍 넘기거나 이틀을 넘긴그 더듬더듬 도착한문장의 배열들〈실뜨기〉에서는 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실을 말에 빗댄 표현이 참 좋다.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말,바람의 언어다실뜨기를 끝낸 뒤 마음에 무늬가 남는다는 표현도 마음에 남는다.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경험한 후에 마음에 남는 수만 가지의 무늬가 떠오른다.실뜨기를 끝낸 두 사람실은 어디에도 없지만 마음에는수만 가지의 무늬가 남아 있다.〈수소문〉 중 ‘누구에게나 간절해서 무수한 조각을 찾아 맞추는 일‘, ‘뒤를 찾으면 앞이 없고 팔을 찾으면 귀가 없는 그런 수소문‘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공감했다.이 밖에도 〈얼지 않는 밥〉에서 ‘아침은 각각의 빛으로 오고 저녁은 비스듬한 문틈으로 사라진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