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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나라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마리트 퇴른크비스트 그림, 김라합 옮김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이 이야기는 『삐삐 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이 쓴 단편 소설이다. 단편집 『Nils Karlsson-Pyssling』(Rabén & Sjögren, 1949)에 수록되었던 이 글은 마리트 퇴른크비스트(Marit Törnqvist)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1994). 이후 1998년에 영어판 『In the Land of Twilight』로 번역되었다.
다리가 아파서 일 년째 카를베리 거리의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예란(Göran)이 매일 밤 황혼의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정 기간(어스름 녘) 실재하는 세계와 환상의 세계(어스름 나라)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불가능할 것이 없는 모험을 떠난다. 외롭고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약자의 편에 섰고 불의, 인종 차별 및 기타 억압에 반대했던 린드그렌의 글에는 혼자 있거나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란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종일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블록 쌓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어스름한 시간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스름 나라에 사는 어스름 나라 사람, 백합 줄기 아저씨(Mr. Liljonkvast)다! 백합 줄기 아저씨와 예란은 훨훨 날아오른다.
백합 줄기 아저씨는 예란을 데리고 클라라 교회 첨탑, 크로노베리 공원의 사탕 나무, 성 에릭 거리의 4호선 전차, 궁전, 빨간 버스, 동물원, 오래된 시골 농가, 고요한 백합의 집을 누빈다. 자유롭고 거침 없이 훨훨 날아서.
예란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가보고 전차와 버스도 운전할 수 있다. 어스름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말코손바닥사슴과 아기 곰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이 책에 묘사된 스톡홀름은 시적이고 아름답다. 마리트 퇴른크비스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신비하고 따뜻하다.
예란이 백합 줄기 아저씨와 어두운 방을 벗어나 어스름에 싸인 스톡홀름으로 날아오른다. 뿌옇기도 하고 푸르스름하기도 한 어스름에 싸인 스톡홀름은 달콤하고 상냥하고 신난다. 어슬녘의 시간에 펼쳐지는 판타지는 일시적이지만, 예란이 느끼는 제약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진다. 어스름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일 밤 어스름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예란에게, 어슬녘은 자유롭고 따뜻한 시간일 것이다. 단지 꿈이거나 상상일지라도, 나도 마음이 힘겹고 고될 때 어스름이 내리는 틈을 타, 예란과 백합 줄기 아저씨의 시간을 따라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