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를 모는 여자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전, 단지 제목만을 눈앞에 두고서, 왜 작가는 염소라는 도시사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소설의 화두로 사용했을까 하는 작은 의구심을 가졌었다.

윤미소, 작가가 맨처음 그녀의 이름에 대해 삶의 관대함을 기대했던것처럼, 염소의 등장은 단순한 소재거리가 아닌 자아를 표출하는 한 수단 이었던 것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글의 전개나 내용에 있어, 다양성과 일관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주인공 미소가 염소를 맡게 되는것, 그녀의 친구가 지난 날 세상을 등지고 홀연히 출가한 일, 박쥐 우산을 든 남자... 그모두가 삶의 벼랑끝에서 자아를 찾아 가는 다른 모습들인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작은것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쉽게 우리 머리속에서 떠나가 버릴만 한 미세한 삶의 구석구석에서 진리를 직시하는 능력을 가진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쭉 긴장 하고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 미소처럼 나도 도저히 바뀌지않는 내 일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이미 무어라 정의해 버린건 아닌지 내 생활을 돌아봐야 했다.

우리모두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삶의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내 존재의 의미를, 그리고 어쩌면 불을 보듯 뻔한 인생의 정체성을 작가는 거부하고 그대신 부딪혀 깨어지는 방식으로 삶의 주체가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머무르지 않고 항상 흐르면서도, 그 자체, 그 본질을 유지하는 삶의 진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닌지..

우리의 운명적인,고여있는 삶을 부수어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맞추기를 시작하는것이 곧 자아를 찾는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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