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대한 느낌이 어떠세요?
정향 조병호란 분이 계셨어요.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예 교사로 유명하신 분이죠. 듣기론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우리나라 서예가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이 분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대중적인 지명도는 없지만 사계에서는 인정받는 분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분이 오래전에 지방지와 인터뷰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유달리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어요. 정확하게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대강 이런 취지의 말씀이었어요.
"요즘 글씨는 글씨가 아닙니다. 그림이에요. 학문이 없는 글씨가 무슨 글씨입니까? 그림이지요."
이 말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글씨[서예]는 글씨 쓴 이의 학문적 축적이 바탕이 되어 표출될 때 가치를 지니지 단순히 글자의 형태를 잘 썼다고 글씨가 되는게 아니다." 여기서 학문은 한학에 대한 소양을 말하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 분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 면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글씨를 쓰는 이들이 글을 지을 줄 모른다. 글을 지을 줄 모르니 옛 작품만 임서하거나 흔해 빠진 명구들만 내리 쓰다보니 참신한 맛이 없고 구태의연하다." 여기서 글은 한작(漢作)을 말하는 거겠지요. 조병호 선생의 견해를 빈다면, 한학에 익숙치 않은 현대인들이 진정한 서예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점은 조병호 선생이 다소 비하적인 말로 표현한 그림(동양화)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요. 특히 문인화의 경우에요. 문인화는 어찌보면 변형된 서예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상당한 학문이 축적돼 있어야 제대로 그릴 수 있지요. 특히 문인화에는 화제(畵題)가 있어야 하는데 옛 화제를 그대로 갖다 쓰면 화제의 생명력은 물론이고 그림의 생명력도 상실되고 말죠. 이런 점에서 한문에 익숙치 않은 현대인들이 제대로 된 문인화를 그리기란 이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추측성 의견을 가지고 무리한 결론을 끌어낸 듯 해서 부끄럽네요. 하지만 분명한 건 한학에 대한 소양이 미흡한 현대 서예와 문인화는 옛 서예와 문인화에 비겨 그 아취가 떨어지는건 분명한 것 같아요.
사진은 지인과 음식점에 갔다가 찍은 거예요. 문인화라고 볼 수 있지요. 예의 그 생명력 없는 것이 느껴져 평소 갖고 있던 현대 서화에 대한 생각을 주절거렸네요. "기껏 음식점에 걸린 작품을 가지고 현대 서화를 논하다니 너무 지나친 것 아냐?" 왠지 이런 비판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귀가 간지럽군요. 하지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사진의 내용은 '묵영힘방(墨影含芳)'이라고 읽어요. 일반적으로 "수묵으로 그린 매화의 그림자가 꽃다운 향기를 머금었네" 혹은 "수묵으로 그린 매화 꽃이 향기를 머금었네"라고 풀이해요. 비록 먹으로 그린 매화이지만 향기가 나는 듯하다란 의미지요. 운치있는 문구예요. 그런데 이 문구는 매화도(梅畵圖)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문구중의 하나예요.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전 이 그림을 보면서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더군요. 님께선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군요. 글자 왼쪽에 있는 것은 무자년(戊子年)인데 서기로 2008년이에요. 흥산(興山)이라는 분이 그린 것[作: 지을 작]으로 돼있군요.
墨은 먹묵, 影은 그림자 영, 含은 머금을 함, 芳은 꽃다울 방이라고 읽어요. 한자를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墨은 黑(검을 흑)과 土(흙 토)의 합자예요. 서사(書寫)의 재료가 되는 검은 색 안료[土]라는 의미예요. 먹 묵. 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默刑(묵형, 죄수에게 죄목을 새기는 형벌), 墨畵(묵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影은 景(빛 경)과 彡(形의 약자, 형상 형)의 합자예요. 빛의 이면에 생기는 형상, 그림자란 의미예요. 그림자 영. 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影像(영상), 撮影(촬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含은 今(이제 금)과 口(입 구)의 합자예요. 잠시 잠깐[今] 입 속에 넣고 있다란 의미예요. 머금을 함. 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含有(함유), 包含(포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芳은 艹(풀 초)와 方(放의 약자, 놓을 방)의 합자예요. 향기를 발산하는[方] 풀이란 의미예요. 꽃다울 방. 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芳草(방초), 芳年(방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플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墨 먹묵 影 그림자영 含 머금을함 芳 꽃다울방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年 ( )畵 包( ) 撮( )
3. 매화에 대한 화제(畵題)를 하나 소개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