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기후 변하나 昏旦變氣候
산수 항상 맑은 빛 머금고 있네 山水含淸暉
맑은 빛 사람을 즐겁게 해 淸暉能娛人
노니는 이 편안하여 돌아갈 것 잊네 遊子憺忘歸
...
서울에 갔다 올 때마다 하는 말이 있어요. "서울 사람들 참 대단해!" 전 서울에서 단 하루도 못있겠더군요. 일단은 사람이 너무 많고, 공기도 탁하고, 복잡하고, 도무지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런 곳을 마다않고 살고 있는 분들이니, 어찌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혹자는 자조적으로 "어쩔수 없어 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 같으면 도저히 못살 것 같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서울에 사는 분들에게 '승자'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어요. 저처럼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는 분들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자연(시골)은 치유의 공간으로 여겨지죠. 이를 달리 말하면, 자연(시골)은 '패자'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경쟁을 피하여 혹은 좌절하여 도망한 공간이기 때문이죠. 만일 그들이 '승자'라면 굳이 치유의 공간을 찾을 필요가 없었겠지요. 이렇게 보면 자연을 찬미한 작품들은 그것이 제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결코 '승자의 노래'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러나 이런 이유로 '승자'의 공간, 다시 말하면 서울같은 도시가 찬미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은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기 마련이고 승자도 언젠가는 패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면 오히려 '패자'의 공간, 다시 말하면 치유의 공간인 자연(시골)이 훨씬 더 찬미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인용한 시는 위진 남북조시대 사영운(謝靈運)의 '석벽정사환호중작(石壁精舍還湖中作)'의 첫 대목이에요. 자연(시골)이 주는 치유를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어 인용해 보았어요. 사영운은 명문대가 출신이었지만 현실 정치에서 좌절을 맛봤죠. 이때 그가 찾은 것이 바로 자연(시골)이었고, 자연(시골)에서 느낀 미감을 십분 발휘한 시들을 많이 지었죠. 후대 문학사가들은 사영운을 산수시(山水詩)의 개조(開祖)라고 불러요. 만약 그가 현실 정치에서 좌절하지 않았다면 굳이 자연(시골)을 찾을리도 없었겠고 산수시라는 독특한 미감의 시를 창작할리도 없었을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패자의 공간인 자연(시골)은 그에게 치유와 함께 산수시의 개조라는 불후의 명예를 선물로 안겨 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러니 어찌 자연(시골)을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진은 가야산 -- 합천의 가야산이 아니라 서산의 가야산--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펜션의 입구에 놓인 돌을 찍은 거예요. "심산유곡"이라고 읽어요.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라는 뜻이에요. 산중에 위치한 펜션이라 이런 문구를 새겨놓은 듯 해요. 사진을 찍으며 모쪼록 이 곳을 찾는 이들이 충분한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深은 깊을 심, 山은 뫼 산, 幽는 그윽할 유, 谷은 골짜기 곡이에요. 쉬운 글자들이라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할까요? 山은 빼도록 하죠.
深은 본래 물이름이에요. 한나라때 계양현 남평현에서 발원하여 영수라는 물과 합류하는 물줄기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죠. 그래서 氵(물 수)가 뜻을 담당하고, 오른쪽의 글자는 음을 담당해요. '깊다'라는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심수의 수량이 많다는데서 나온 의미지요. 깊을 심. 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深化(심화), 深層(심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幽는 山(뫼산)과 幺(작을요)의 겹자가 합쳐진 거예요. 깊은 산중에 놓인 작은 물체는 잘 보이지 않아 찾기 어렵다는 의미예요. 그윽할 유. 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幽靈(유령), 幽閉(유폐, 가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谷은 골짜기의 모습을 그린 거예요. 八 과 八은 양 옆으로 늘어선 산과 그 아래의 골짜기를 표현한 것이고 口는 골짜기의 입구를 나타낸 것이에요. 골짜기 곡. 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溪谷(계곡), 峽谷(협곡)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深 깊을심 幽 그윽할유 谷 골짜기곡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쓰시오.
( )化 ( )靈 峽( )
3. '심산유곡'을 한자로 써 보시오.
여담. 사영운은 현실 정치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현실 정치에 복귀하려다 생을 마감해요. 역모죄로 죽게 되죠. 그에게 자연(시골)은 일시적 치유의 공간이지 지속적 치유의 공간은 될 수 없었나봐요. 아쉬운 대목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