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멋져 보이나요? 모처럼만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는 모녀지간이에요. 맞춰 보세요? 누가 모고 누가 녀인지? 쉽지 않죠? 후후. 왼쪽이 제 딸이고, 오른쪽이 저예요. 딸은 올 해 5살이고 저는 8살인가 9살인가 그래요. 자기 나이도 제대로 모르냐구요? 글쎄, 그게 말이죠, 제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저는 이미 성숙한 고양이였거든요. 아니, 그래도 데려다 준 사람이 있을테니 나이를 알 수 있잖냐구요? 아, 제가 이 집에 들어온 건 누가 데려다 줘서가 아니라 제발로 들어왔어요. 전에 있던 집에서 가출해 먹을게 없어 이 집을 얼쩡거렸는데, 이 집 아이들과 아줌마가 제법 친절하더라구요. 처음엔 밖에다 음식을 주더니 어느 날 저를 방안으로 들였어요. 아, 처음 방 안으로 들어오던 날의 그 포근함. 아마도 전 영원히 못잊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방문이 잠깐 열린 틈에 전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살짝 밖으로 나왔죠. 아무도 눈치를 못챘어요. 그 날 이 집 안에서는 아이들의 대성통곡과 아줌마가 아저씨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방문을 열어 놓은 것이 바로 아저씨였거든요. 이 집에서 저를 꺼리는 사람은 아저씨 뿐이었어요. 털이 날려 싫다는 거였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아줌마가 저를 끔찍히 아끼는지라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였죠. 이런 아저씨였으니, 아줌마와 아이들이 아저씨를 오해할만도 했죠. 일부러 저를 내보낸 것이라고요. 그러나 제가 밖으로 나간 건 주인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나가고 싶어 나간 것이었죠. 아저씨는 억울했을 거예요.
전 약 한 달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어요. 옛날에 다니던 장소에도 가고 낯선 장소에도 가보고 그랬죠. 그 사이 힘센 녀석을 만나 여기저기 얻어 터지기도 했고, 음식을 잘못 먹어 죽을 뻔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 사이 잠시 눈에 콩깎지가 끼어 한 놈과 연애도 했구요. 덕분에(?) 아이도 갖게 됐구요. 그 놈은 제게 단물을 다 빼었는지 어느 날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저는 굳이 그 놈을 찾지 않았어요. 전 애면글면 하는게 제일 싫거든요. 그런데 뱃속의 아이가 점점 커져가자 몸이 무거워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어요.
전 할 수 없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 오던 날, 아이들과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던 말을 기억해요. "어디갔다 이제 왔니?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멀대같은 아저씨도 이 때 만큼은 반가운 표정을 짓더군요. 그 사이 아이들과 아줌마에게 받은 설움도 많았으련만. 전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죠: "냐~ 웅"
다시 돌아온 이 집에서 전 아이를 출산했어요. 그런데 보통 우리 고양이들은 순산을 하는데, 전 난산이라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아줌마가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병원에 데리고 갔죠. 다섯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중성화 수술을 받았어요. 제가 가임 주기가 짧아 그대로 두면 너무 아이를 자주 낳고 그러다 보면 낳은 아이들을 건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였지만 저를 키우고자 하는 아줌마의 처지를 생각해 내린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제 이름을 갖게 됐어요. 처방전에 제 이름을 써야 하는데, 간호사 분이 아줌마와 아이들에게 제 이름이 뭐냐고 물어 보더군요. 그 때 이 집 큰 딸 아이가 '웅야'라고 하면 어떠냐고 해서 그게 제 이름이 됐어요. '야옹'을 거꾸로 읽고 음을 약간 바꿔서 부른건데, 처음엔 어색하게 들렸지만 자꾸 들으니 정감이 가더군요. 이름을 갖게 됐던 날, 제 처방전에는 '웅야님 귀하'라고 써 있었어요.
아이들은 조금 크자 바로 분양을 시켰어요. 그런데 한 녀석만 다시 되돌아 왔어요. 바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딸아이예요. 분양해갔던 집 아주머니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 되돌려 보냈다고 해요. 딸 아이를 다시 분양할 곳을 물색하던 중 이 집 아들 아이가 '웅야' 혼자 있는게 외로우니 같이 키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아줌마와 딸 아이는 찬성을 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난색을 표했어요. '하나도 버거운데 둘 씩이나...' 이런 생각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아줌마의 애교 작전과 아이들의 읍소에 넘어가 결국 딸 아이는 이 집에 남게 됐어요. 딸 아이에게 어느 날 아줌마가 '애기'라고 불렀는데, 이 '애기'가 그냥 딸 아이의 이름이 됐어요. 지금은 5살이나 먹어 저보다 등치가 큰데도 여전히 '애기'라고 부르니, 웬지 좀 우스워요.
딸 아이는 식성이 까다로와요. 아줌마가 주는 사료와 이따금 간식으로 주는 멸치만 먹지 다른 것은 일체 안 먹어요. 저는 완전 잡식성이에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지요. 딸 아이는 절대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무릎 위에 올라가지 않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죠. 저는 안그래요. 틈만 나면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배 위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죠. 이따금 아저씨 다리 위에 앉기도 해요. 이 아저씨, 참 많이 변했어요. 처음엔 질색했는데 제가 올라가도 가만히 있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제가 묻히는 털이 싫은가 봐요. 늘 입버릇처럼 말하죠. "이 녀석 털만 안빠지면 좋겠는데..."
이 집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아이들이 커가는 것과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지켜 봤어요.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집이라 뭐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았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이 집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직장 생활을 하는 집이라, 낮에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도 전에는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외지에 나가 있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딸 아이와 둘이 있을 때면 가끔 돌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아저씨가 보면 질겁할 일이지요. 딸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든요. 털이 엄청 날리죠. 아저씨한텐 미안한 일이지만(이 집은 아저씨가 청소 담당이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거든요. 단순히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것 가지고는 찌뿌둥한게 풀리지 않거든요. 전에는 달리기 시합과 숨바꼭질 하는 것에 대해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좀 뻔뻔한 생각을 해요. 우리가 집을 지켜주니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거든요. 후후.
우리가 먹는 나이는 사람이 먹는 나이와 달라요. 제 나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노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고, 딸 아이도 중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년기에 들어서서 그런가, 제가 어쩌다 아무데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주인 아저씨는 처음에는 질색팔색을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한 것을 치워줘요. 그러면서 저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죠. "웅야, 실례는 꼭 제자리에 했으면 좋겠구나." 저도 미안해서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죠. "냐~웅"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지나간 옛날이 생각 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앞날도 생각하게 돼요.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이집 식구들과 이별하는 거예요. 언제 그 이별의 시간이 닥쳐올지 모르지만, 모쪼록 크게 슬프지 않게 이별했으면 싶어요. 그게 나를 이 집에 살게 해준 이 집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최근 이 집 아줌마가 몸이 아파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게 됐어요. 수술도 받기로 돼있구요. 몸이 많이 야위었더라구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안타까워요. 언제가 아저씨가 저를 품에 안고 -- 그래요, 안아주기도 해요! 정말 많이 변했죠! -- 그러더군요. "웅야, 너도 엄마[이 집 아줌마]를 위해 기도 좀 해주렴. 건강하시라고." 당연히 그러마고 대답했죠. "냐~ 옹"
오늘은 제법 봄날씨 같네요. 바람도 산들 바람이고 햇살도 따뜻하고. 창가에 가서 한 숨 자야 겠어요.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냈더니 좀 피곤하네요. 아, 고양이를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래요. 猫(묘)라고 하지요. 猫는 본래 貓로 표기했어요. 貓는 豸(狸의 약자, 삵 리)와 苗(싹 묘)의 합자예요. 집에서 기르는 삵과 닮은 동물이란 의미예요. 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苗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삵과 닮았으며 식물의 싹을 해치는 쥐를 잘 잡는 동물이란 의미로요. 고양이 묘. 貓(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猫兒(묘아, 고양이 새끼), 猫柔(묘유, 고양이같이 겉으로는 유순하나 속음 음험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잘 익혀 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