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멋져 보이나요? 모처럼만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는 모녀지간이에요. 맞춰 보세요? 누가 모고 누가 녀인지? 쉽지 않죠? 후후. 왼쪽이 제 딸이고, 오른쪽이 저예요. 딸은 올 해 5살이고 저는 8살인가 9살인가 그래요. 자기 나이도 제대로 모르냐구요? 글쎄, 그게 말이죠, 제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저는 이미 성숙한 고양이였거든요. 아니, 그래도 데려다 준 사람이 있을테니 나이를 알 수 있잖냐구요? 아, 제가 이 집에 들어온 건 누가 데려다 줘서가 아니라 제발로 들어왔어요. 전에 있던 집에서 가출해 먹을게 없어 이 집을 얼쩡거렸는데, 이 집 아이들과 아줌마가 제법 친절하더라구요. 처음엔 밖에다 음식을 주더니 어느 날 저를 방안으로 들였어요. 아, 처음 방 안으로 들어오던 날의 그 포근함. 아마도 전 영원히 못잊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방문이 잠깐 열린 틈에 전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살짝 밖으로 나왔죠. 아무도 눈치를 못챘어요. 그 날 이 집 안에서는 아이들의 대성통곡과 아줌마가 아저씨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방문을 열어 놓은 것이 바로 아저씨였거든요. 이 집에서 저를 꺼리는 사람은 아저씨 뿐이었어요. 털이 날려 싫다는 거였지요. 하지만 아이들과 아줌마가 저를 끔찍히 아끼는지라 아저씨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였죠. 이런 아저씨였으니, 아줌마와 아이들이 아저씨를 오해할만도 했죠. 일부러 저를 내보낸 것이라고요. 그러나 제가 밖으로 나간 건 주인 아저씨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나가고 싶어 나간 것이었죠. 아저씨는 억울했을 거예요.

 

 

전 약 한 달간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어요. 옛날에 다니던 장소에도 가고 낯선 장소에도 가보고 그랬죠. 그 사이 힘센 녀석을 만나 여기저기 얻어 터지기도 했고, 음식을 잘못 먹어 죽을 뻔하기도 했죠. 그리고 그 사이 잠시 눈에 콩깎지가 끼어 한 놈과 연애도 했구요. 덕분에(?) 아이도 갖게 됐구요. 그 놈은 제게 단물을 다 빼었는지 어느 날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저는 굳이 그 놈을 찾지 않았어요. 전 애면글면 하는게 제일 싫거든요. 그런데 뱃속의 아이가 점점 커져가자 몸이 무거워 돌아다니기가 힘들어졌어요.

 

 

전 할 수 없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 오던 날, 아이들과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던 말을 기억해요. "어디갔다 이제 왔니?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멀대같은 아저씨도 이 때 만큼은 반가운 표정을 짓더군요. 그 사이 아이들과 아줌마에게 받은 설움도 많았으련만. 전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죠: "냐~ 웅"

 

 

다시 돌아온 이 집에서 전 아이를 출산했어요. 그런데 보통 우리 고양이들은 순산을 하는데, 전 난산이라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아줌마가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병원에 데리고 갔죠. 다섯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중성화 수술을 받았어요. 제가 가임 주기가 짧아 그대로 두면 너무 아이를 자주 낳고 그러다 보면 낳은 아이들을 건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였지만 저를 키우고자 하는 아줌마의 처지를 생각해 내린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제 이름을 갖게 됐어요. 처방전에 제 이름을 써야 하는데, 간호사 분이 아줌마와 아이들에게 제 이름이 뭐냐고 물어 보더군요. 그 때 이 집 큰 딸 아이가 '웅야'라고 하면 어떠냐고 해서 그게 제 이름이 됐어요. '야옹'을 거꾸로 읽고 음을 약간 바꿔서 부른건데, 처음엔 어색하게 들렸지만 자꾸 들으니 정감이 가더군요. 이름을 갖게 됐던 날, 제 처방전에는 '웅야님 귀하'라고 써 있었어요.

 

 

아이들은 조금 크자 바로 분양을 시켰어요. 그런데 한 녀석만 다시 되돌아 왔어요. 바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딸아이예요. 분양해갔던 집 아주머니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 되돌려 보냈다고 해요. 딸 아이를 다시 분양할 곳을 물색하던 중 이 집 아들 아이가 '웅야' 혼자 있는게 외로우니 같이 키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아줌마와 딸 아이는 찬성을 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난색을 표했어요. '하나도 버거운데 둘 씩이나...' 이런 생각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아줌마의 애교 작전과 아이들의 읍소에 넘어가 결국 딸 아이는 이 집에 남게 됐어요. 딸 아이에게 어느 날 아줌마가 '애기'라고 불렀는데, 이 '애기'가 그냥 딸 아이의 이름이 됐어요. 지금은 5살이나 먹어 저보다 등치가 큰데도 여전히 '애기'라고 부르니, 웬지 좀 우스워요.

 

 

딸 아이는 식성이 까다로와요. 아줌마가 주는 사료와 이따금 간식으로 주는 멸치만 먹지 다른 것은 일체 안 먹어요. 저는 완전 잡식성이에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지요. 딸 아이는 절대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무릎 위에 올라가지 않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하죠. 저는 안그래요. 틈만 나면 주인 아줌마나 아이들 배 위나 다리 위에 올라가 앉죠. 이따금 아저씨 다리 위에 앉기도 해요. 이 아저씨, 참 많이 변했어요. 처음엔 질색했는데 제가 올라가도 가만히 있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제가 묻히는 털이 싫은가 봐요. 늘 입버릇처럼 말하죠. "이 녀석 털만 안빠지면 좋겠는데..."

 

 

이 집에서 5년을 지내는 동안 아이들이 커가는 것과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지켜 봤어요.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집이라 뭐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매일 그 날이 그 날 같았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이 집은 아저씨와 아줌마가 직장 생활을 하는 집이라, 낮에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도 전에는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외지에 나가 있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딸 아이와 둘이 있을 때면 가끔 돌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아저씨가 보면 질겁할 일이지요. 딸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거나 숨바꼭질을 하거든요. 털이 엄청 날리죠. 아저씨한텐 미안한 일이지만(이 집은 아저씨가 청소 담당이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하거든요. 단순히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는 것 가지고는 찌뿌둥한게 풀리지 않거든요. 전에는 달리기 시합과 숨바꼭질 하는 것에 대해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좀 뻔뻔한 생각을 해요. 우리가 집을 지켜주니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거든요. 후후.

 

 

우리가 먹는 나이는 사람이 먹는 나이와 달라요. 제 나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노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고, 딸 아이도 중년기에 들어선 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년기에 들어서서 그런가, 제가 어쩌다 아무데나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주인 아저씨는 처음에는 질색팔색을 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한 것을 치워줘요. 그러면서 저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죠. "웅야, 실례는 꼭 제자리에 했으면 좋겠구나." 저도 미안해서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죠. "냐~웅"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지나간 옛날이 생각 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앞날도 생각하게 돼요.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이집 식구들과 이별하는 거예요. 언제 그 이별의 시간이 닥쳐올지 모르지만, 모쪼록 크게 슬프지 않게 이별했으면 싶어요. 그게 나를 이 집에 살게 해준 이 집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최근 이 집 아줌마가 몸이 아파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게 됐어요. 수술도 받기로 돼있구요. 몸이 많이 야위었더라구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안타까워요. 언제가 아저씨가 저를 품에 안고 -- 그래요, 안아주기도 해요! 정말 많이 변했죠! -- 그러더군요. "웅야, 너도 엄마[이 집 아줌마]를 위해 기도 좀 해주렴. 건강하시라고." 당연히 그러마고 대답했죠. "냐~ 옹"

 

 

오늘은 제법 봄날씨 같네요. 바람도 산들 바람이고 햇살도 따뜻하고. 창가에 가서 한 숨 자야 겠어요.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냈더니 좀 피곤하네요. 아, 고양이를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래요. 猫(묘)라고 하지요. 猫는 본래 貓로 표기했어요. 貓는 豸(狸의 약자, 삵 리)와 苗(싹 묘)의 합자예요. 집에서 기르는 삵과 닮은 동물이란 의미예요. 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苗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삵과 닮았으며 식물의 싹을 해치는 쥐를 잘 잡는 동물이란 의미로요. 고양이 묘. 貓(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猫兒(묘아, 고양이 새끼), 猫柔(묘유, 고양이같이 겉으로는 유순하나 속음 음험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잘 익혀 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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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야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냥이군요. 사람들 앞에 애교 부릴 줄 알아요. ^^

찔레꽃 2017-04-02 07:12   좋아요 0 | URL
고양이마다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애기‘는 무척 도도해요. ^ ^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1203 - 1342)의 시조예요. 늙음에 대한 공포를 해학적으로 그렸죠. 재미있는 것은 우탁이 역학(易學)에 정통한 학자였다는 거예요. 역학에 정통한 이라면 늙는 것에 웬지 초연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평범한 이들에게 늙는다는 것은 더할나위없이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도 과거 사회에서는 늙는 것이 지금처럼 공포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자식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 기풍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자식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정말 공포스럽죠. 가장 가까운 자식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데 그 누가 자신을 돌봐주겠어요? 오늘 날 늙는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공포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이는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 돈도 저축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할 거예요. 가장 가까운 자식한테마저 버림받은 삶이니까요.

 

한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지표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노인 복지 아닐까 싶어요. 우리 사회의 노인 복지 수준은 어떠할까요? 굳이 통계치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노인 분들의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으니까요.

 

사진은 수현경로당(秀峴敬老堂)이라고 읽어요. 수현은 동네 이름인 듯 싶어요. 혹 '깔딱 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경로당의 뜻은 아시죠? ^ ^

 

퇴근 무렵에 이곳에서 하루 일과(?)를 보낸 노인 분들이 나오는 모습을 종종 봐요. 할머니들에게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할아버지들에게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 목례를 하면서 지나가죠. 그러면서 노인 분들의 표정을 슬며시 살펴 봐요. 대부분 무심한 표정이에요. 나이 탓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삶이 행복하지 않은데서 오는 무심한 표정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드물게 찾아오는 자식들, 힘겹게 견뎌야 하는 질병, 특별한 일없이 시간을 때워야 하는 지루함, 경제적 빈곤 등이 빚어낸 표정이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의 성숙도는, 적어도 노인 복지 차원으로 보면,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禾(벼 화)와 乃(仍의 약자, 당길 잉)의 합자예요. 벼에서 끌려 나온 것, 즉 이삭이란 의미예요. 이삭 수. '끌려 나왔다'란 본뜻에서 '빼어나다'란 의미가 연역되어, 빼어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죠. 빼어날 수. 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俊秀(준수), 秀作(수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뫼 산)(볼 견)의 합자예요. 고개라는 의미예요. 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고개에서는 아래에 있는 것들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요. 고개 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阿峴洞(아현동), 泥峴(이현, 진고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羊의 줄임 글자, 양 양)과 勹(包의 줄임 글자, 쌀 포)와 口(입 구)와 攵(칠 복)의 합자예요. 양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하듯이 엄숙하고 진중한 태도로 일에 임할 것을 스스로 채찍질한다는 의미예요. 공경 경. 敬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恭敬(공경), 敬虔(경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人(사람 인)과 毛(털 모)와 匕(化의 약자, 화할 화)의 합자예요. 검은 머리에서 흰 머리로 변화한 사람이란 의미예요. 이런 사람을 늙은 이라고 하고, 이런 상태를 늙었다라고 하죠. 늙을 로. 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老人(노인), 老衰(노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土(흙 토)와 尙(숭상할 상)의 합자예요. 높은 토석 축대 위에 지은 집이란 의미예요. 土로 의미를 표현했지요. 尙은 음을 담당하면서(상→당)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높은 토석 축대 위에 지은 집은 집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란 의미로요. 집 당. 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堂號(당호, 집 이름), 神堂(신당, 신령을 모신 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秀 빼어날 수   峴 고개 현   敬 공경할 경   老 늙을 로   堂 집 당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衰   (   )作   恭(   )   (   )峴洞   (   )號

 

 

3. 다음 지문을 참고하여 '노인 복지'에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맹자가 말했다. " 백이가 주임금을 피하여 북해 가에 숨어 지내다 문왕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내 어찌 저에게 가지 않겠는가! 들으니 서백[문왕]은 노인을 잘 모신다고 하더라.' 주임금을 피하여 동해 가에 숨어 지내던 태공도 똑같은 말을 했다. 두 노인은 천하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서백에게 귀의한 것은 곧 천하 모든 노인들이 서백에게 귀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천하의 모든 노인들이 서백에게 귀의했는데, 그들의 자식들이 서백에게 귀의하지 않고 누구에게 귀의하겠는가! 만일 제후들 중에 문왕과 같이 노인을 잘 모시는 자가 있다면 그는 7년 이내에 천하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맹자>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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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화는 다른 사람을 믿는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으로부터 제압받게 된다. 신하는 그 군주에 대해 혈육간의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에 매어서 어찌 할 수 없이 섬기는 것이다 … 군주가 되어 자식을 지나치게 신임하면 간악한 신하들이 그 자식을 이용하여 자기 사욕을 이루게 된다 … 또 군주가 되어 처를 지나치게 신임하면 간악한 신하들이 그 처를 이용하여 자기 사욕을 이루게 된다 … 대저 처 만큼이나 가까운 사이와 자식만큼이나 친밀한 사이까지도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것이니 그 나머지는 믿을 만한 자가 있을 수 없다." (이운구 역, 한비자Ⅰ(한길사; 2012), 245쪽)

 

한비자는 인간을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해요. 하여 이런 이기적인 존재들을 추스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군주는 철저히 법을 집행하고 술(術)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가 살았던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전국시대를 생각해 본다면 한비자의 논리는 더없이 현실적인 논리였다고 볼 수 있어요. 진시황이 그의 논리를 철저히 신봉하여 전국 시대를 통일한 것은 한비자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이후 2대 만에 망한 것은 역으로 한비자의 주장이 갖는 한계를 입증해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어요. 한비자의 주장이 갖는 한계, 다시 말하면 법과 술이 갖는 한계는 인간이 지닌 도덕적 가치에 대한 불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가의(賈誼)는 그의 <진나라의 허물을 논한다[過秦論]>라는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해요: "진나라는 구구한 옹주 땅을 가지고 만승의 권세를 이룩하여 8주를 점령하고 동렬(同列)들에게 조회받은 지가 백여 년이나 되었다. 그런 뒤에 육합(六合)을 집으로 삼고 효(殽)와 함(函)을 궁궐로 삼았는데, 한 필부가 난을 일으킴에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몸이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어째서인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서였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여기 "인의를 베풀지 않아서 였고"는 바로 한비자가 불신했던 인간이 지닌 도덕덕 가치가 '법과 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이정미 헌법재판관 대행이 이임사에서 인용한 한비자의 말이에요.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며 이러한 법을 준수할 때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의미로 인용한 듯 해요.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재판관이 인용한 글이라서 그런지 한결 더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와요. 이 인용구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혼란을 이 번 탄핵 정국을 통해 우리 모두 너무도 뼈저리게 학습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말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철저한 준법 이전에 가져야 할 '도덕적 가치'가 아닌가 싶어요.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준법이란 자칫 '질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그의 수하들이 준법의 중요성을 과연 몰랐을까요? 몰랐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그의 수하들이 어떻게 '국기문란' '원칙' 등의 용어를 밥 먹듯이 내뱉었겠어요? 그들 역시 준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런 용어를 밥 먹듯이 내뱉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뱉은 용어들이 사실은 국민들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자신들 또한 질곡에 갇히게 만든 것은 도덕적 가치를 상실하고 형해화된 준법의 중요성만 강조했기 때문이지요. 한비자가 놓쳤던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불신은 법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반성(反省)해야 할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본래 氵(물 수)와 廌(해태 치)와 去(갈 거)의 합자 형태로 사용되다가 후에 廌채가 빠진 형태로 사용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 廌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廌는 뿔이 하나 달린 양인데 죄진 자를 알아보는 신이한 능력이 있었다고 해요. 고요라는 사람이 옥사를 맡았을 때 이 廌를 풀어놓아 죄의 유무를 판단했다고 전해요. 氵는 여기서 공평하다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종합하면, 廌처럼 죄의 유무를 분명히 가리고 물처럼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할 처벌이란 의미예요. 그게 바로 '법'이지요. 법 법. 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法律(법률), 法治(법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아랫부분인 乁은 땅을 의미하고 나머지 윗부분은 발을 의미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갈 지. 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단어로는 들만한 게 없네요. 문장으로 예를 들어야 겠네요. 將何之(장하지, 장차 어디로 가려는가?)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之는 '가다'라는 뜻보다 '~의'라는 소유격 조사와 '그'란 지시대명사의 쓰임으로 더 많이 사용해요. 이 때는 '어조사 지'라고 읽어요. 이 경우 雲雨之情(운우지정, 남녀간의 좋은 정분), 淵深而魚生之(연심이어생지, 덕망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는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 손으로 코끼리를 이끌고 일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둘. 爪(손톱 조)와 원숭이를 나타낸 글자의 합으로, 손톱으로 긁기를 좋아하는 원숭이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하다, 되다, 위하다'란 의미로 사용하죠. 모두 본래의 의미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할(위할) 위. 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行爲(행위), 爲人(위인), 爲我(위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辶(걸을 착)과 首(머리 수)의 합자예요. 머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향하여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또는 그렇게 걸어가는 도로란 의미로도 사용하죠. 진리란 의미의 '길'이란 뜻은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걸어가는 길처럼 사람으로서 지켜나가야 할 올바른 가치란 의미로요. 길 도. 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道德(도덕), 道路(도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止(그칠 지)와 舟(배 주)의 합자예요. 지금은 모양이 많이 바뀌었죠. 止는 본래 발을 그린 거예요. 前은 배에 올라타서 발을 움직이지 않은 채 배가 가는 것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간다란 의미예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은 형국이지요. 앞 전. 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前後左右(전후좌우), 前進(전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艹(풀 초)와 古(옛 고)의 합자예요. 도꼬마리란 약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艹로 뜻을 나타냈지요. 古는 음을 담당해요. 후에 이 약재의 맛이 써서 '쓰다'란 뜻도 갖게 됐어요. 쓸 고. 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甘呑苦吐(감탄고토, 야박한 세상 인심), 苦衷(고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턱과 턱수염을 그린 거예요. 턱수염이 턱에 붙어있듯, 앞말과 뒷말 사이에 붙어 문장의 의미를 상호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글자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어요. 말이을 이. 而가 들아간 예는 무엇이 을까요? 和而不同(화이부동), 簡而易(간이이, 간단하고 쉽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은 장발 머리의 사람을 그린 거예요. 一 윗 부분은 장발 머리를, 一 아래 부분은 몸체를 표현한 것이지요. 긴 장. 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長短(장단), 長髮(장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禾(벼 화)와 刂(칼 도)의 합자예요.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벼를 수확한다란 의미예요. 이익이란 이 글자의 의미는 여기서 나온 거예요. 곡식을 거두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有利(유리), 利益(이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法 법 법   之 어조사 지   爲 될 위   道 길 도   前 앞 전   苦 쓸 고   而 말이을 이   長 긴 장   利 이로울 리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衷   (   )後左右   和(   )不同   (   )律   (   )人   將何(   )   (   )益   (   )短   (   )德

 

3. 다음을 한문으로 써 보시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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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두렁 밑에서 한 납자가 청정한 마음을 내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절이요 그것이 바로 불교라네."

 

법륜 스님이 불교 개혁을 소리 높여 주장할 때 서암 스님이 해준 말씀이었다고 해요. 법륜 스님은 서암 스님의 이 말에 깨우친 바 있어, 진정한 불교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밖으로 향한 목소리를 안으로 불러들여 자신부터 성찰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불교 개혁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진정한 절, 진정한 불교란 청정한 마음을 내는 곳(것)이지 그외 다른 곳(것)이 아니라면 감옥도 예외없이 도량(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자료 출처: http://www.bzer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43)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옥중감회(獄中感懷)란 시예요. 읽어 볼까요?

 

일념단각정무진(一念但覺淨無塵)   한 생각 깨우치면 티끌없이 깨끗해

철창명월자생신(鐵窓明月自生新)   철창의 밝은 달 절로 새로워라

우락본공유심재(憂樂本空唯心在)   우락(憂樂)은 공한 것 오직 마음에 달려거니

석가원래심상인(釋迦原來尋常人)   석가도 원래 보통 사람이었네

 

선생은 지금 감옥에 있어요. 그런데 그 답답한 감옥 안에서 한 순간 깨달았어요. 대상에 대한 희노애락은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며, 마음이 지어낸 대상에 대한 희노애락이 소멸되면 모든 대상은 청정 그 자체라는 것을요. 이런 깨달음의 순간, 감옥 안 철창에서 바로 보던 서글픈 달빛도 이제는 달리 보여요. 더없이 깨끗하게요. 달빛이 슬픈 것은 내 마음이 슬프기 때문이요, 달빛이 명랑한 것은 내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에요. 달은 본래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인데 내 마음의 희노애락에 따라 달리 보였던 것이지요. 마음의 희노애락이 사라진 그 상태로 달빛을 보니 달빛은 청정무구 그 자체예요. 하여 선생은 대결론에 다달아요: "부처, 별 것 아니다. 깨달으면 부처일 뿐이다. 그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와 진배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런 선생에게 감옥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었을 거예요. 청정한 도량(절)이었겠지요.

 

요듬 적폐 청산[개혁]을 부르짖는데  적폐 청산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단순히 제도나 관습을 바꾸는데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본래 청정한 마음을 되찾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보수를 탓하지 말고, 진보를 탓하지 말고, 내 자신부터 성찰하여 청정한 마음을 되찾을 때 그것이 적폐 청산[개혁]이 아닌가 싶은 거죠. 너무 유심론적인가요? ^ ^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見(볼 견)과 學(배울 학)의 합자예요. 잠이 깨어 주변의 사물을 인지한다는 의미예요. 見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學은 음을 담당해요(학→각). 깨달을 각. 覺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觸覺(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爭(다툴 쟁)의 합자예요. 때를 씻어 제거한다는 의미예요.  氵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爭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쟁→정). 씻어낼 때는 때와 물이 서로 다투게 된다는 의미로요. 깨끗할 정. 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淸淨無垢(청정무구), 淨化(정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鹿(사슴 록)과 土(흙 토)의 합자예요. 사슴이들이 달릴 때 일어나는 먼지란 의미예요. 티끌 진. 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塵土(진토), 塵埃(진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검은 색의 철이란 뜻이에요. 金(쇠 금)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鐵에서 金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쇠 철. 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鐵鑛(철광), 製鐵(제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木(나무 목)과 斤(도끼 근)과 辛(매울 신)의 합자예요. 나무를 잘라 땔감을 장만한다란 의미예요. 木과 斤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辛은 음을 담당해요. 섶 신. 지금은 '섶 신'을 薪으로 표기하고, 新은 '새롭다'란 뜻으로만 사용해요. 새롭다란 뜻은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땔감을 새로 장만했다란 의미로요. 새 신. 新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新舊(신구), 新生(신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寸(마디 촌)과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彡(터럭 삼)의 합자예요. 교묘한[工] 말[口]에 대해 합리적 기준[寸]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헤아려[又] 본다란 의미예요. 彡은 음을 담당해요(삼→심).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尋訪(심방), 심사(尋思,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尋을 길이의 단위[여덟 자]로 풀이하기도 해요. 이 경우는 尋을 ()()()의 합자로 보고, ‘양손[左右]을 벌리면 쉽게 잴[] 수 있는 길이란 뜻으로 사용한 거예요. 나아가 이 의미를 연역하여 보통(普通이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위 시에서는 보통이란 의미로 사용했어요.

 

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예요. 천자와 제후가 사용하는 깃발이란 의미예요. 巾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尙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존귀한[尙] 자들이 사용하는 깃발이란 의미로요. 常은 지금은 깃발이란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이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천자와 제후가 사용하는 깃발은 항상 존중되며 선두에 세운다란 의미로요. 항상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恒常(항상), 平常(평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覺 깨달을 각   淨 깨끗할 정   塵 티끌 진   鐵 쇠 철    新 새 신   尋 찾을 심    常 항상 상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舊   (   )訪   (   )醒   (   )化   (   )埃   恒(   )   製(   )

 

3. 다음을 읽고 풀이해 보시오.

 

   一念但覺淨無塵 / 鐵窓明月自生新 / 憂樂本空唯心在 / 釋迦原來尋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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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자 풍우란은 중국 철학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초세간(超世間)'을 말해요. 초세간은 현실과 초월이 통일된 제 3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현실에 있으면서도 현실을 초월하는 경계를 말하는 것이에요. 그는 이러한 경지를 중용의 한 구절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에서 '이(而)'를 가져와 설명해요. 이 '이'는 고명[초월]과 중용[일상]이 대립되지만 이미 통일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며, 초세간이 바로 그러한 경지라고 말해요.

 

그렇다면 초세간처럼 상반되는 대립을 통일시킨 제 3지대의 사회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질적인 것이 극렬하게 표출되는 -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도시와 농촌,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등 - 우리 사회이다보니 그 모습이 더 궁금해져요.

 

혹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바로 그런 제 3지대의 사회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화이부동은 이질적인 것의 무화(無化)가 아니고 각각의 고유성이 유지되면서 조화된 모습을 말해요.

 

이질적인 모습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것은 얼핏보면 대단히 불안해 보일수도 있지만 조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질적인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인정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 바로 상반되는 대립을 통일시킨 제 3지대, 화이부동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점에서 요즘 대선의 이슈로 떠오른 어설픈(?) 사회 통합 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오히려 좀 더 선명하게 각자의 이질성을 드러내고, 그 선명한 이질성 위에서 상대를 인정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차지미 무미이지미(茶之味 無味而知味)'라고 읽어요. '차는 맛이 무미하면서도 지극한 맛이 있다'란  뜻이에요(이 문장에서 '이(而)'는 무미와 지미를 통일시키는 제 3지대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맛이 없으면 없는 거고, 지극한 맛이 있으면 있는 거지, 맛이 없으면서도 최고의 맛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화이부동'을 적용해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맛이기 때문에 두 맛이 공존한다고, 아니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도 이 차 맛처럼 상호 이질적인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공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가는 길일테구요.

 

사진의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艹(풀 초)와 余(나 여)의 합자예요. 쌉싸름 한 풀 혹은 그 풀로 우려낸 음료란 뜻이에요. 余는 음을 담당해요(여→다). 차 다(차). 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茶道(다도), 雪綠茶(설록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아랫부분인 乁은 땅을 의미하고 나머지 윗부분은 발을 의미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갈 지. 之는 '가다'라는 뜻보다 '~의'라는 소유격 조사와 '그'란 지시 대명사로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걸어가는 것은 누군가의 발이란 의미로 '의'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간다는데서 '그'란 의미를 이끌어 낸 것이지요. 어조사지. 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將何之(장하지, 장차 어디로 가려 하는가), 淵深而魚生之(연심이어생지, 연못 물이 깊으면 물고기들이 그곳에 산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口(입 구)와 未(아닐 미)의 합자예요. 입을 통해 느끼는 맛이란 의미예요. 口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未는 음을 담당해요. 맛 미.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味(조미), 吟味(음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땅을 의미하는 二와 人(사람 인)의 합자예요. 사람이 죽어 땅 속에 묻혀 그 흔적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란 의미예요. 없을 무. 無(없을 무)와 통용해요. 无涯(무애, 끝이 없다), 无名(무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턱과 턱수염을 그린 거예요. 一은 턱을, 나머지 부분은 턱에 붙은 수염을 그린 것이지요. 턱에 붙은 턱수염처럼, 앞 말과 뒷 말 사이에 붙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말이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어요. 말이을 이. 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笑而不答(소이부답,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다), 視而不見(시이불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새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모양을 그린 거예요. 一은 지상을, 나머지는 새가 내려오는 모양을 그린 거예요. 이를 지. '지극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있는 힘껏 끝까지 내려온다는 의미로요. 지극할 지. 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至極(지극), 至誠(지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茶 차 차(다)   之 갈(어조사) 지   味 맛 미   無 없을 무   而 말이을 이   至 이를(지극할) 지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視(   )不見   調(   )   (   )名   雪綠(   )   將何(   )   (   )誠

 

3. 다음을 한문으로 써 보시오.

 

  차는 맛이 무미하면서도 지극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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