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의 화는 다른 사람을 믿는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 사람으로부터 제압받게 된다. 신하는 그 군주에 대해 혈육간의 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에 매어서 어찌 할 수 없이 섬기는 것이다 … 군주가 되어 자식을 지나치게 신임하면 간악한 신하들이 그 자식을 이용하여 자기 사욕을 이루게 된다 … 또 군주가 되어 처를 지나치게 신임하면 간악한 신하들이 그 처를 이용하여 자기 사욕을 이루게 된다 … 대저 처 만큼이나 가까운 사이와 자식만큼이나 친밀한 사이까지도 오히려 믿지 못하는 것이니 그 나머지는 믿을 만한 자가 있을 수 없다." (이운구 역, 한비자Ⅰ(한길사; 2012), 245쪽)
한비자는 인간을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해요. 하여 이런 이기적인 존재들을 추스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군주는 철저히 법을 집행하고 술(術)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가 살았던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전국시대를 생각해 본다면 한비자의 논리는 더없이 현실적인 논리였다고 볼 수 있어요. 진시황이 그의 논리를 철저히 신봉하여 전국 시대를 통일한 것은 한비자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이후 2대 만에 망한 것은 역으로 한비자의 주장이 갖는 한계를 입증해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어요. 한비자의 주장이 갖는 한계, 다시 말하면 법과 술이 갖는 한계는 인간이 지닌 도덕적 가치에 대한 불신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가의(賈誼)는 그의 <진나라의 허물을 논한다[過秦論]>라는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해요: "진나라는 구구한 옹주 땅을 가지고 만승의 권세를 이룩하여 8주를 점령하고 동렬(同列)들에게 조회받은 지가 백여 년이나 되었다. 그런 뒤에 육합(六合)을 집으로 삼고 효(殽)와 함(函)을 궁궐로 삼았는데, 한 필부가 난을 일으킴에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몸이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어째서인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서였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여기 "인의를 베풀지 않아서 였고"는 바로 한비자가 불신했던 인간이 지닌 도덕덕 가치가 '법과 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이정미 헌법재판관 대행이 이임사에서 인용한 한비자의 말이에요.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며 이러한 법을 준수할 때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의미로 인용한 듯 해요. 현직 대통령을 파면한 재판관이 인용한 글이라서 그런지 한결 더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와요. 이 인용구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난 혼란을 이 번 탄핵 정국을 통해 우리 모두 너무도 뼈저리게 학습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말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철저한 준법 이전에 가져야 할 '도덕적 가치'가 아닌가 싶어요.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준법이란 자칫 '질곡'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그의 수하들이 준법의 중요성을 과연 몰랐을까요? 몰랐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그의 수하들이 어떻게 '국기문란' '원칙' 등의 용어를 밥 먹듯이 내뱉었겠어요? 그들 역시 준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런 용어를 밥 먹듯이 내뱉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뱉은 용어들이 사실은 국민들을 질곡으로 몰아넣고 자신들 또한 질곡에 갇히게 만든 것은 도덕적 가치를 상실하고 형해화된 준법의 중요성만 강조했기 때문이지요. 한비자가 놓쳤던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불신은 법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반성(反省)해야 할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法은 본래 氵(물 수)와 廌(해태 치)와 去(갈 거)의 합자 형태로 사용되다가 후에 廌채가 빠진 형태로 사용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 廌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廌는 뿔이 하나 달린 양인데 죄진 자를 알아보는 신이한 능력이 있었다고 해요. 고요라는 사람이 옥사를 맡았을 때 이 廌를 풀어놓아 죄의 유무를 판단했다고 전해요. 氵는 여기서 공평하다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종합하면, 廌처럼 죄의 유무를 분명히 가리고 물처럼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할 처벌이란 의미예요. 그게 바로 '법'이지요. 법 법. 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法律(법률), 法治(법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之의 아랫부분인 乁은 땅을 의미하고 나머지 윗부분은 발을 의미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갈 지. 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단어로는 들만한 게 없네요. 문장으로 예를 들어야 겠네요. 將何之(장하지, 장차 어디로 가려는가?)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之는 '가다'라는 뜻보다 '~의'라는 소유격 조사와 '그'란 지시대명사의 쓰임으로 더 많이 사용해요. 이 때는 '어조사 지'라고 읽어요. 이 경우 雲雨之情(운우지정, 남녀간의 좋은 정분), 淵深而魚生之(연심이어생지, 덕망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爲는 두 가지로 설명해요. 하나. 손으로 코끼리를 이끌고 일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둘. 爪(손톱 조)와 원숭이를 나타낸 글자의 합으로, 손톱으로 긁기를 좋아하는 원숭이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하다, 되다, 위하다'란 의미로 사용하죠. 모두 본래의 의미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할(위할) 위. 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行爲(행위), 爲人(위인), 爲我(위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道는 辶(걸을 착)과 首(머리 수)의 합자예요. 머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향하여 걸어간다는 의미예요. 또는 그렇게 걸어가는 도로란 의미로도 사용하죠. 진리란 의미의 '길'이란 뜻은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걸어가는 길처럼 사람으로서 지켜나가야 할 올바른 가치란 의미로요. 길 도. 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道德(도덕), 道路(도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前은 止(그칠 지)와 舟(배 주)의 합자예요. 지금은 모양이 많이 바뀌었죠. 止는 본래 발을 그린 거예요. 前은 배에 올라타서 발을 움직이지 않은 채 배가 가는 것에 의지하여 앞으로 나간다란 의미예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은 형국이지요. 앞 전. 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前後左右(전후좌우), 前進(전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苦는 艹(풀 초)와 古(옛 고)의 합자예요. 도꼬마리란 약재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艹로 뜻을 나타냈지요. 古는 음을 담당해요. 후에 이 약재의 맛이 써서 '쓰다'란 뜻도 갖게 됐어요. 쓸 고. 苦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甘呑苦吐(감탄고토, 야박한 세상 인심), 苦衷(고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而는 턱과 턱수염을 그린 거예요. 턱수염이 턱에 붙어있듯, 앞말과 뒷말 사이에 붙어 문장의 의미를 상호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글자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어요. 말이을 이. 而가 들아간 예는 무엇이 을까요? 和而不同(화이부동), 簡而易(간이이, 간단하고 쉽다)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長은 장발 머리의 사람을 그린 거예요. 一 윗 부분은 장발 머리를, 一 아래 부분은 몸체를 표현한 것이지요. 긴 장. 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長短(장단), 長髮(장발)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利는 禾(벼 화)와 刂(칼 도)의 합자예요.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벼를 수확한다란 의미예요. 이익이란 이 글자의 의미는 여기서 나온 거예요. 곡식을 거두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有利(유리), 利益(이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法 법 법 之 어조사 지 爲 될 위 道 길 도 前 앞 전 苦 쓸 고 而 말이을 이 長 긴 장 利 이로울 리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衷 ( )後左右 和( )不同 ( )律 ( )人 將何( ) ( )益 ( )短 ( )德
3. 다음을 한문으로 써 보시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