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좌우 연해에 큰 적들이 가득하여 저돌해 오는 환난이 반드시 아침과 저녁 사이에 있습니다. 군사를 일으킨 지 3년 만에 공사간의 재물이 탕진되고 전염병 또한 극성한데다 사망으로 거의 다 없어진 것이 육지나 바다가 똑같습니다. 대총(大總) 유정(劉綎)은 이미 군사를 철수시켜 고국으로 되돌아가니 위급한 형세가 호흡하는 사이에 닥쳐와 있어 온갖 생각을 해봐도 막아 지킬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 " (노승석 역 『난중일기』259 쪽)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년이 된 1594년 11월 28일 난중일기에 적힌 내용이에요. 당시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고립무원의 위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대 군단의 적들이 앞에 있는데 자신의 상황은 물자와 인력이 절대 부족하고 원군으로 왔던 명군마저 철수했으니 고립무원의 지경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진은 같은 날짜에 나오는 장군의 시예요. (사진은 수안보의 한 숙소에서 찍었어요.)

 

  蕭蕭風雨夜(소소풍우야)    우수수 비바람 치는 이 밤에

  耿不寐時(경경불매시)    맘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懷痛如摧膽(회통여최담)    아픔 마음은 쓸개가 잘리 듯

  傷心似割肌(상심사할기)    슬픔 마음은 살을 에는 듯

  山河猶帶慚(산하유대참)    산하는 오히려 부끄러운 빛 띄고

  魚鳥亦吟悲(어조역음비)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國有蒼皇勢(국유창황세)    나라에 다급한 형세가 있는데

  人無任轉危(인무임전위)    평정을 맡길 인재 없도다

  恢復思諸葛(회복사제갈)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長驅慕子儀(장구모자의)    적을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經年防海策(경년방해책)    여러 해 바다 막을 계책 세웠으나

  今作聖君欺(금작성군기)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번역: 노승석 역 『난중일기』262 -263 쪽 인용)

 

 

이 시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장군이 처한 상황과 연계하면 금방 이해가 돼요. 더없이 힘든 상황에 처한 장군의 고뇌를 읽을 수 있죠. 그런데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군의 고뇌와 더불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배후에 있는 마음 자세예요. 

 

제갈량과 곽자의를 생각하는 것은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 제갈량과 곽자의처럼 자신도 고립무원의 상황을 타개하고 승리를 쟁취해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성군을 속인 것이 됐다는 것은 조정의 지원없이 전쟁을 수행하지만 결코 조정을 원망하지 않는 충의의 마음을 표현한 것 이에요.

 

이 시는 고뇌하면서도 고뇌의 수렁에 침몰하지 않고 희망을 찾으며, 타인[성군, 조정]을 원망하기 보다는 외려 가엾게(?) 여기는 평범하면서도 초월적인 한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최근 군 장성의 갑질 논란이나 군에 만연한 방산 비리 등을 생각하니 장군의 시가 한결 더 묵직하게 다가와요.

 

여담. 사진의 시는 『난중일기』에 나오는 시와 달라요. 『난중일기』에는 사진의 시와 유사한 내용의 시가 2편 나오는데, 사진의 시는 이 2편의 시를 짜집기한 거예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진의 시는 이은상 씨가 난중일기의 시를 '무제육운(無題六韻)'이란 제목으로 번역한 거라고 나오더군요. 그런데 노승석 씨가 새로 번역한 『난중일기』에는 이 시의 제목이 '소망(蕭望, 쓸쓸히 바라보며)'이라고 나와요. 이렇게 보면 이은상 씨는 이 시의 원제를 제대로 탈초해 읽지도 못하고, 원시도 함부로 짜집기 해 유포시킨 잘못을 범한 셈이 돼요. 아쉬운 일이죠. 하지만 인터넷 정보에도 오류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이은상 씨를 그릇된(?) 유포의 주인공으로 확정짓는 것은 좀 조심스러워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艹(풀 초)와 肅(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향기나는 쑥이란 의미예요. 艹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肅은 음을 담당해요(숙→소). '쓸쓸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향내가 다하고 시들었다란 의미로요. 쑥 소. 쓸쓸할 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蕭颯(소삽, 쓸쓸한 바람 소리), 蕭瑟(소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火(불 화)의 합자예요. 잠을 제대로 못자 귀가 뜨겁다(열이 난다)란 의미예요. 편안치않을 경. 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耿耿(경경, 마음이 편안하지 아니한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는 잠잔다란 의미예요. 정확하게는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편안하게 몸을 눕혔다란 의미예요. 未(아닐 미)는 음을 담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뜻을 나타내요. 잠잘 매.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寤寐(오매), 寐語(매어, 잠꼬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扌(손 수)와 崔(높을 최)의 합자예요. 꺾는다는 의미예요. 扌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崔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꺾으려면 높은(강대한)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요. 꺾을 최. 催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催枯拉朽(최고납후, 마른 나무를 꺾고 썩은 나무를 부러뜨림. 일이 대단히 용이함의 의미), 催感(최감, 기가 꺾이고 마음이 슬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刂(칼 도)와 害(해칠 해)의 합자예요. 베어낸다란 의미예요. 刂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害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베어내면 대상을 해하게 된다란 의미로요. 벨 할. 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割引(할인), 分割(분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마음 심)과 斬(벨 참)의 합자예요. 부끄럽다는 의미예요. 忄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음이 베어질듯이 부끄럽다란  뜻으로요. 부끄러울 참.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愧(참괴), 悔(참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忄(마음 심)과 灰(재 회)의 합자예요. 마음이 넓다는 뜻이에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灰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바람이 불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재처럼 그같이 마음이 넓다란 의미로요. 넓을 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恢恢(회회, 여유가 있는 모양), 恢弘(회홍, 크고 넓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馬(말 마)와 區(지경 구)의 합자예요. 말을 몬다는 의미예요. 馬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區는 음을 담당해요. 말몰 구. 驅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驅使(구사, 사람을 몰아쳐 부림), 驅逐(구축, 쫓아 버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竹(대 죽)과 朿(가시 자)의 합자예요. 채찍이란 뜻이에요. 竹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朿는 음을 담당하면서(자→ 책)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채찍에는 가시처럼 돌기 부분이 있다란 의미로요. '꾀'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말을 달리게 할 때 사용하는 채찍처럼, 위기를 타개할 때 사용하는 지혜란 의미로요. 채찍 책. 꾀 책. 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鞭策(편책, 채찍질 함), 秘策(비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欠(이지러질 결)과 其(그 기)의 합자예요. 속인다란 뜻이에요. 欠로 뜻을 표현했어요. 속이는 사람은 그 마음에 흠결이 있다란 의미로요. 其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속일 때는 어떤 대상을 예로 들어 상대를 오도한다는 의미로요. 其는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예요. 속일 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詐欺(사기), 欺瞞(기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蕭 쓸쓸할 소   耿 빛날 경   寐 잠잘 매   摧 꺾을 최   割 벨 할    부끄러울 참   恢 넓을 회   

   驅 말몰 구      欺 속일 기   策 꾀 책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逐   (    )弘    (    )悔   分(    )     寤(    )   (    )耿   (    )瑟   秘(    )   (    )感   詐(    )

 

3. 다음을 읽어 보시오. 

 

  蕭蕭風雨夜 / 不寐時 / 懷痛如摧膽 / 傷心似割肌 / 山河猶帶慚 / 魚鳥亦吟悲

  國有蒼皇勢 / 人無任轉危 / 恢復思諸葛 / 長驅慕子儀 / 經年防海策 / 今作聖君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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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청도터널 기념 휘호를 하나 쓰시지요?"

 

 

"뭐가 좋겠나?"

 

 

"글쎄요?"

 

 

"복리천추(福利千秋)가 어떻겠나?"

 

 

"복과 이로움이 끝없다 …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 청도터널로 조선인들이 무궁한 혜택을 입을테니 말입니다."

 

 

"자네 아직도 세상 물정 어둡군!"

 

 

"예에~?"

 

 

"왜 조선인들이 무궁한 혜택을 입나? 우리 대일본제국이 무궁한 혜택을 입지!"

 

 

"아, 아~ 그런 뜻이…. 역시 각하의 생각은 깊고 멀으십니다."

 

 

"으하하핫 …"

 

 

 

사진은 감 와인 숙성지로 유명한 청도터널 입구 옆에 세워진 석각이에요. '복리천추(福利千秋)'라고 읽어요. '복과 이로움이 끝없다'란 의미예요. 낙관 부분이 파손되어 있어 누구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일본 고위층 인물이 쓰지 않았나 싶어요. 청도터널이 일본에 의해 완성되었으니(1904), 그 기념으로 일본 고위층 인물이 쓰지 않았나 싶은 거죠. 낙관 부분의 파손은 후일 민족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누군가가 손을 댄 것 같아요.

 

 

복리천추란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가없이 좋은 의미예요. 하지만 누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대상으로 이 말을 썼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위 대화는 그 '전혀 다른 의미'를 가상한 대화예요. 복리천추가 결코 조선(인)의 복리가 영원하길 기원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복리가 영원하길 기원한 것이라고 본 것이죠. 자신들이 놓은 철도로 인하여 생기는 부가 가치가 지속적으로 일본에 공급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말이죠. 이렇게 보면 복리천추는 일본(인)에게는 말 그대로 복리천추지만 조선(대한제국)에게는 고혈천추가 되는 거죠. 복리천추란 석각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만 보는 것은 단견일 거예요.

 

 

이 석각은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아요. 낙관도 파손된데다 석각 내용도 음흉하고(?) 글씨의 미적 가치도 별반 없어 보이거든요. 혹 청도터널과 관계된 불행한 역사의 흔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석각 상단 오른 쪽에 빨간 색의 경고 문구 ― 손을 대지 마십시오 ― 를 붙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여요. 하지만 아무런 설명없이 그저 경고 문구만 붙여놓으니, 개인적으로는, 없어졌으면 하는 억하심정이 더 들더군요. 굳이 보존을 하고자 한다면 석각의 유래와 낙관 파손 경위 그리고 보존하려는 이유를 적은 안내판을 석각 옆에 세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자를 살펴 볼까요?

 

 

은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畐(가득할 복)의 합자예요. 신이 상서로운 일로 인간을 도와준다는 의미예요. 의미를 줄여 '복'으로 사용해요. 示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畐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인간을 만족시켜 주는 일이 바로 '복'이란 의미로요. 복 복. 福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禍福(화복), 福券(복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禾(벼 화)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익은 벼를 베어[刂] 수확한다란 뜻이에요. 이롭다란 의미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그렇게 수확을 하여 이익을 얻었다란 의미로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利益(이익), 利權(이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人과 十의 합자예요. 사람의 수명을 보통 100으로 잡으면 열[十] 사람의 수명은 1,000이란 의미예요. 일천 천. 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千年(천년), 千字文(천자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禾(벼 화)와 火(불 화)의 합자예요. 온갖 곡식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란 의미예요. 禾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火는 음을 담당해요(화→추). 秋는 귀뚜라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해요. 가을의 대표적 곤충인 귀뚜라미로 가을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죠. 가을 추. 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春秋(춘추), 秋收(추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福 복 복   利 이로울 리   千 일천 천   秋 가을 추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年   (   )權   (   )收   (   )券

 

 

3. 아래 인용문을 읽고 우리가 취할 복리천추의 길은 무엇인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등문공: 우리나라는 소국이올시다. 제 아무리 정성을 다해 대국을 섬긴다해도 화를 면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런지요? 선생의 혜안을 빌리고 싶습니다.

 

 

맹자: 음... 옛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고 싶군요. 태왕이 빈 땅을 다스릴 때 일입니다. 적인이 빈을 침입해 왔습니다. 태왕은 온갖 재화와 육축으로 그들을 달래며 빈 땅에서 나가주길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허사였습니다. 태왕은 빈 땅의 원로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온갖 재화와 육축으로 그들을 달래며 떠나주길 요청했지만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땅을 차지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내 들으니, 군자는 사람에게 소용되는 물건을 가지고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땅 때문에 이 백성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 땅을 떠나고자 합니다. 내가 없다하여 무슨 큰 일이 있겠습니까?" 태왕은 빈 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 정착했습니다. 빈 땅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어진 이를 어이 좇아가지 않으랴! 어서 따라 가자!" 빈 땅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들은 어떤 이의 말을 해드리고 싶군요. "이 땅은 선조때 부터 대대로 지켜온 소중한 터전이다. 내 어찌 이 땅을 함부로 남에게 넘길수 있으랴. 죽음으로써 지키리라!" 왕께 드릴 수 있는 제 답은 이 두 가지 뿐입니다. 택일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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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또다른 피서 명소인 ㅇㅇㅇㅇ공원입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새벽의 모습은 전날 밤과 크게 다릅니다. 빈 술병과 생수통은 물론이고 먹다남은 음식이 돗자리 위에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밤새 북적이던 이곳은 사실상 쓰레기장으로 변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본 한 방송사의 뉴스 일부분이에요.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니 딱히 오늘 뉴스라기 보다 해마다 피서철만 되면 접하게 되는 뉴스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모른긴해도 내년 이맘때 쯤에도 역시 똑같은 뉴스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뉴스를 접할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 오죽 덥고 답답했으면 저렇게 질펀하게 한 여름 밤을 보냈겠어? 그런데, 과연 덥고 답답한 것은 얼마나 해소됐을까?"

 

사진은 경주 대릉원에 갔다가 찍은 거예요. 대릉원 후문 맞은 편에 법장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 담벼락에 걸려있는 현수막이에요. 한자를 읽어 볼까요? 수인조선 궁공조각 재장조목 지자조신(水人調船 弓工調角 材匠調木 智者調身). 해석은? 현수막에 나와 있네요! ^ ^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활을 구부리며, 목공은 나무를 다루고,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리네." 『법구경』6장 현철품(賢哲品)에 나오는 말이에요. 그런데 '수인조선(水人調船)'은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라고 해석하기 보다 "사공은 배를 손질하고"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선(船)'이 배란 뜻이니 '수인(水人)'은 사공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 싶은거죠. "물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는 의미가 불분명한 의역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문구는 이런 의미예요.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대는 사람이고, 활을 구부리는 이가 활 만드는 사람이며, 나무를 다루는 이가 목공이듯, 자신을 잘 다루는 이가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죠. 그런데 위 문장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의미가 확 달라져요.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을 대듯, 활 만드는 사람이 활을 구부리듯, 목공이 나무를 다루듯, 현명한 사람은 그같이 자신을 다스린다." 현명한 사람의 마음 다스리는 요령을 소개한 것이 돼죠.

 

이런, 현수막의 문구를 흠집 잡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방향이 엉뚱한데로 갔네요. 다시 원 위치로. 현수막에 나온『법구경』의 내용이 현명한 사람에 대한 정의든 아니면 현명한 사람의 마음다스리는 법이든간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자신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거예요.『법구경』엔 자신을 잘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와요.

 

"눈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귀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코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혀를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몸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말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생각을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잘 절제하게 되면/ 그는 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난다" (25장 비구품, 인용 출처:http://cafe.daum.net/suu0/1Mll/166?q=%B9%FD%B1%B8%B0%E6%20%C0%FC%B9%AE)

 

한마디로 압축하면 '심신의 절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런 심신의 절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요령은 바로 현수막에 나온 내용대로 하면 돼죠. 물을 끌어들이는 이가 물을 대듯, 활 만드는 사람이 활을 구부리듯, 목공이 나무를 다루듯! (이런, 저의 견강부회한 해석을 대놓고 옳은 것처럼 말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물의 이치에 맞게 중용을 지켜서! 물은 순류에 맞게 끌어 들여야 어렵지 않게 끌어 들일 수 있고, 활은 적당한 강도에 맞게 구부려야 부러지지 않게 구부릴 수 있으며, 나무는 재질과 용도에 맞게 다듬어야 재목이 될 수 있죠. 그같이 심신을 절제하면 되는 거죠. 절제는 궁핍이 아니라 중용인 것이죠.

 

뜨거운 여름 밤을 질펀하게 보낸 피서객들, 그들은 과연 제대로 피서를 한 것일까요? 질펀은 궁핍의 또 다른 얼굴이며 이는 절제(중용)와 거리가 먼 것이니, 해답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네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調는 言(말씀 언)과 周(두루 주)의 합자예요. 조화를 이루다란 뜻이에요. 言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사가 잘 통해야 상대와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로요. 周는 음을 담당하면서(주→조)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빠진 부분 없이 두루두루 흡족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요. 고를 조. 위의 현수막에서는 調를 '고르다'란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지만, '길들이다'란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어요. 이 경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대상을 과불급없게 다룬다는 의미로요. 길들일 조. 調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節(조절), 調攝(조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따라내려갈 연)의 합자예요. 배란 뜻이에요. 舟로 뜻을 표현했어요.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연→선)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따라내려가는 것이 바로 배란 의미로요.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艦船(함선), 船尾(선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뿔의 모양을 그린 거예요. 윗 부분은 뿔의 뾰족한 부분을 나머지 부분은 뿔의 외곽과 결을 표현한 거예요. 뿔 각. 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銳角(예각), 觸角(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匚(상자 방)과 斤(도끼 근)의 합자예요. 匚은 가구를 의미하고, 斤은 공구를 의미해요. 공구를 사용하여 가구를 만드는 사람, 즉 목수(장인)란(이란) 의미예요. 장인 장. 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匠人(장인), 巨匠(거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知(알 지)와 日(날 일)의 합자예요. 대상을 빠짐없이 고르게 비추는 햇빛처럼 세상사에 대해 두루두루 잘 안다는 의미예요. 슬기 지. 智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智慧(지혜), 智略(지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오늘은 정리 문제 대신 앞의 내용과 관계될 법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내용 일부분을 읽어 보도록 하죠. 일종의 피서법인데 '궁핍'에 가까운 피서법이에요. 중용에는 맞지 않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질펀' 피서법 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따라해 볼 생각입니다 ^ ^;;

 

"8,9년 전이던가, 해인사 소소산방에서 『화엄경 십회향품』을 독송하면서 한여름 무더위를 잊은채 지낸 적이 있다 … 조석으로 장경각에 올라가 업장을 참회하는 예배를 드리고 낮으로는 산방에서 독송을 했었다. 산방이라고는 하지만 방 하나를 간막아 쓰니 협착했다. 서까래가 내다뵈는 조그만 들창과 드나드는 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 그러니 여름이 아니라도 답답했다. 그래도 저 디오게네스의 통 속보다는 넓다고 자족했었다 … 더러는 목청을 돋구어 읽기도 하고 한자 한자 짚어 가며 묵독하기도 했었다.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 밖에 있는 정랑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런 때는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있지 않느냐, 사람의 양심이 썪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체가 유심소조니까. 저녁 공양 한 시간쯤 앞두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가사 장삼에 땀이 흠뻑 배고 깔았던 방석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비로소 덥다는 분별이 고개를 든다. 골짜기로 나가 훨훨 벗어 버리고 시냇물에 잠긴다. 이내 더위가 가시고 심신이 날 듯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절절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이다. 스스로 우러나서 한 일이라 환희로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법정,『무소유』(범우사:1985),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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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책이 없는 것은 몸에 정신이 없는 것과 같다 / 키케로의 말 소전 손재형 쓰다"

 

교학사에서 펴낸 필승이란 참고서 뒷면에 인쇄된 내용이에요. 이 참고서를 접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이니 벌써 38년 전 이네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이 내용을 쓴 글씨가 특이했기 때문이에요. 특이해서 자주 흉내냈던 기억이 나요(이 흉내가 기억에 도움을 준 듯 싶어요). 후일 이 특이한 글씨체가 '소전체(素體)'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소전체의 대표적인, 아니 대중적인 작품은 '샘터'와 '바둑'이란 제호예요(둘 다 월간 잡지죠). 한 번 쯤은 보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소전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호예요.

 

손재형은 근현대 서예가로, 추사이후 첫 손으로 꼽히는 서예가죠. 손재형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서예(書藝)'와 '세한도(歲寒圖)'예요. 손재형은 해방이후 서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어요. 유학의 교과였던 육예(六藝)의 '예'와 육예 중 한 과목이었던 '서(書)'를 합쳐 만든 서예란 용어는 중국의 서법(書法)과 일본의 서도(書道)란 용어에 비해 서의 예술적 풍미를 강조한 용어죠. 서법과 서도란 용어를 차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쓴 것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손재형이 한글 서예의 신기원을 연 것도 이런 의지와 상관성이 있을 거구요.

 

그가 일본인 후지즈카(藤塚)에게서 추사의 세한도를 돌려받은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보여요. 그가 세한도를 돌려받기 위해 애쓴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죠. 석달 넘게 일본 동경에 머물며 후지즈카를 설득해 댓가없이 돌려 받았다고 하죠. 추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던 후지즈카가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댓가없이 돌려줬다는 것은 손재형의 정성이 그만큼 극진했으리라는 것을 반증해요. 재미있는(?) 것은 세한도를 돌려받은 지 얼마 안있다 후지즈카의 집이 미군의 공격으로 전소됐다는 거에요. 이런 우연의 사건 때문에 혹자는 하늘이 손재형을 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했다고도 말하고, 역으로 손재형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됐다고도 말하죠.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돌려받은 세한도를 그가 말년에 선거 자금으로 저당 잡혔다가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이죠(애고, 정치가 뭐길래...). 하지만 세한도를 되찾아 온 그의 공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거예요. 

 

 

사진은 관음전(觀音殿)이라고 읽어요. 왼쪽의 낙관은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이라고 읽구요. 불국사에서 찍은 거예요. 아는 분의 글씨라 그런가 한결 더 정감있게 와닿더군요. 관음'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 본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를 의역한 거예요.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죠. 관음전의 관음은 정확하게는 관음 보살의 준말이에요(보살은 산크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 따라서 관음전관음 보살을 모신 이란 뜻이죠. 관음 보살은 대개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표상되는데 중생의 수많은 고통을 살펴보고 구제하는 일을 맡고 있기에 그렇게 나타낸다고 해요. 불국사의 관세음 상도 후면에 천수천안 도상이 있더군요.

 

현판을 응시하노라니 문득 손재형은 관음전 현판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사와 비견되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면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처럼 자신의 글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해 주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썼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건 돈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요. 비록 말년에 선거 자금을 위해 세한도나 자신의 소장품들을 저당잡히고 매매했지만, 그건 말년의 일이고 그의 생애 대부분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위해 분투했던 삶이었으니까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雚(황새 관)과 見(볼 견)의 합자예요. 황새처럼 세밀하게 살펴 본다는 의미예요. 황새가 물가에서 물고를 잡을 때 집중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네요. 볼 관. 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觀念(관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丰과 糸(실 사)의 합자예요. 丰은 초목의 꽃과 열매가 무성한 모습을 표현한 거예요. 그렇듯 곱고 촘촘하게 짠[糸] 흰색 명주란 뜻이에요. 지금은 '흰 색'이란 뜻으로 줄여서 사용하죠. '바탕'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하얀 색은 모든 색의 '바탕'이 된다란 뜻으로요. 흴 소. 바탕 소. 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素服(소복), 素質(소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全(온전할 전)의 합자예요. 매우[全] 향기로운 풀이란 뜻이에요. 향초 전. 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蕙(전혜, 향초의 이름)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殸(磬의 약자, 경쇠 경)과 香(향기 향)의 합자예요. 경쇠 소리처럼 멀리까지 그 냄새가 퍼져나가는 향기라는 뜻이에요. 향기 형. 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馨香(형향, 향기 좋은 냄새), 馨逸(형일, 향기가 보통 때와 달리 유달리 좋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觀 볼 관   素 흴 소   향초 전   馨 향기 형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蕙   (   )服    (   )逸    (   )察

 

3. '觀音殿'에 나타난 소전체의 특징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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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말 서울 문화 재단 남산 센터에서 만화 연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때 건물을 드나들면서 복도 쪽 창 너머 건물 외벽에 있는 낯익은 글씨를 자주 보았어요. 70년대 같으면 각별한 보호를 받았을 그 글씨는 관리는 커녕 조만간 철거될 모양인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더군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였어요. 지금은 어떤 상태로 있는지 궁금하네요.

 

 

박정희 대통령만큼 전국 곳곳에 자신의 서흔(書痕)을 남겨놓은 지도자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한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를 찬양까지는 아니래도 독특한 서체라고 추켜 세웠던 적도 있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가 많은 것은 그가 집권한 기간이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병영사회를 지향한데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병영사회는 일사불란한 행동 통일을 필요로 하는데 이때 효율적인 수단이 바로 구호이죠. 곳곳에 박정희 대통령의 구호성 휘호가 많은 것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은 거죠. 이런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구호성 휘호가 널려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그래도 정권이 바뀌어 박정희 대통령의 구호성 휘호가 철거되거나 가려진데 반해 북한은 여전하죠. 통일된 이후 북한 곳곳에 새겨진 김일성과 김정일의 휘호성 구호는 골치 아픈 처리물이 될 거예요.

 

 

사진은 '대천성공(代天成功)'이라고 읽어요. '하늘을 대신하여 공을 이루다'란 뜻이에요. 감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청도터널 입구에 새겨진 글씨예요. 의미상으로 보아 하늘이 해야 할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란 찬사인 듯 싶어요.

 

 

그런데 글씨를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군 중장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예요. 메이지(明治) 37년(1904)에 쓴 것으로 돼있어요. 대한제국 시절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따낸 일본은 1896~1904 사이 경부선 철도를 놓았는데 청도터널도 그 와중에 완성되었다고 해요. 청도터널은 고지대에 위치하여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에 '대천성공'이란 글귀를 써놓은 듯 싶어요.

 

 

세월이 지나 이제는 감 와인 숙성지로 변모됐지만 이 청도터널은 돌이켜보기도 힘든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금처럼 장비가 잘 갖춰진 시대도 철도 놓기가 만만치 않은 고지대이니, 부설 당시야 더없이 어려운 지역이었을테고 이 철도 조성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겠어요? 게다가 그 희생이 결코 일인(日人)이 아닌 한인(韓人)일 것이며 보태어 그런 희생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고스란히 일본의 치적으로 돌려졌으니 말이에요(터널위에 순종의 휘호나 우리나라 관리의 휘호가 아닌 일본 군인의 휘호가 걸린 것이 이를 증명하죠).

 

 

휘호를 쳐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랜 세월이 흐는 지금까지 저 휘호가 걸려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의 흔적이니 두고 보자는 것일까요? 아니면 휘호를 건드리면 터널 건축 구성에 악영향이 있기 때문일까요? 지나간 정권의 지도자 서흔도 방치하거나 지우려 하는 판에 쓰라린 상처를 준 상대국의 군인 휘호를 굳이 보관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싶어요. 떼버리고 대신에 터널을 건설하는데 동원됐던 수많은 무명씨들을 기리는 휘호를 써놓든가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써붙이지 않는게 어떨까 싶어요. 이런 생각때문이었을까요? 청도터널 안에서 맛 본 감 와인은 그다지 맛이 없었어요(제 입만만 그랬을 거예요. 다른 시음자들은 다들 좋아하는 표정이었어요).

 

 

代와 功 두 자만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人(사람 인)과 弋(문지방 익)의 합자예요. 바꿔 지속시킨다는 의미예요. 人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弋은 음을 담당하면서(익→대)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내외(內外)의 중간점에 있으면서 내외를 이어주는 문지방처럼 내용과 형식을 바꿔 이어준다는 의미로요. 대신할 때. 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代身(대신), 代理(대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工(장인 공)과 力(힘 력)의 합자예요. 국가에 기여한 지대한 업적이란 뜻이에요. 力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工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工은 본래 자[尺]를 그린 것으로 규준, 법도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여기선 이 의미로 사용됐죠.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규준과 법도에 맞는 업적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공 공. 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論功行賞(논공행상), 功績(공적)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代 대신할 때   功 공 공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理   功(   )

 

 

3. 청도터널에 붙여진 '대천성공'을 대신할 적절한 각자(刻字)가 있으면 소개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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