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책이 없는 것은 몸에 정신이 없는 것과 같다 / 키케로의 말 소전 손재형 쓰다"

 

교학사에서 펴낸 필승이란 참고서 뒷면에 인쇄된 내용이에요. 이 참고서를 접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이니 벌써 38년 전 이네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이 내용을 쓴 글씨가 특이했기 때문이에요. 특이해서 자주 흉내냈던 기억이 나요(이 흉내가 기억에 도움을 준 듯 싶어요). 후일 이 특이한 글씨체가 '소전체(素體)'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소전체의 대표적인, 아니 대중적인 작품은 '샘터'와 '바둑'이란 제호예요(둘 다 월간 잡지죠). 한 번 쯤은 보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소전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호예요.

 

손재형은 근현대 서예가로, 추사이후 첫 손으로 꼽히는 서예가죠. 손재형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서예(書藝)'와 '세한도(歲寒圖)'예요. 손재형은 해방이후 서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어요. 유학의 교과였던 육예(六藝)의 '예'와 육예 중 한 과목이었던 '서(書)'를 합쳐 만든 서예란 용어는 중국의 서법(書法)과 일본의 서도(書道)란 용어에 비해 서의 예술적 풍미를 강조한 용어죠. 서법과 서도란 용어를 차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새로운 용어를 쓴 것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손재형이 한글 서예의 신기원을 연 것도 이런 의지와 상관성이 있을 거구요.

 

그가 일본인 후지즈카(藤塚)에게서 추사의 세한도를 돌려받은 것도 같은 맥락 이라고 보여요. 그가 세한도를 돌려받기 위해 애쓴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죠. 석달 넘게 일본 동경에 머물며 후지즈카를 설득해 댓가없이 돌려 받았다고 하죠. 추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던 후지즈카가 세한도를 손재형에게 댓가없이 돌려줬다는 것은 손재형의 정성이 그만큼 극진했으리라는 것을 반증해요. 재미있는(?) 것은 세한도를 돌려받은 지 얼마 안있다 후지즈카의 집이 미군의 공격으로 전소됐다는 거에요. 이런 우연의 사건 때문에 혹자는 하늘이 손재형을 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했다고도 말하고, 역으로 손재형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세한도를 구하게 됐다고도 말하죠.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돌려받은 세한도를 그가 말년에 선거 자금으로 저당 잡혔다가 끝내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이죠(애고, 정치가 뭐길래...). 하지만 세한도를 되찾아 온 그의 공은 결코 퇴색되지 않을 거예요. 

 

 

사진은 관음전(觀音殿)이라고 읽어요. 왼쪽의 낙관은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이라고 읽구요. 불국사에서 찍은 거예요. 아는 분의 글씨라 그런가 한결 더 정감있게 와닿더군요. 관음'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 본다'는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를 의역한 거예요.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죠. 관음전의 관음은 정확하게는 관음 보살의 준말이에요(보살은 산크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 따라서 관음전관음 보살을 모신 이란 뜻이죠. 관음 보살은 대개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표상되는데 중생의 수많은 고통을 살펴보고 구제하는 일을 맡고 있기에 그렇게 나타낸다고 해요. 불국사의 관세음 상도 후면에 천수천안 도상이 있더군요.

 

현판을 응시하노라니 문득 손재형은 관음전 현판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사와 비견되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면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처럼 자신의 글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해 주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썼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건 돈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요. 비록 말년에 선거 자금을 위해 세한도나 자신의 소장품들을 저당잡히고 매매했지만, 그건 말년의 일이고 그의 생애 대부분은 우리 서(書)의 자주성을 위해 분투했던 삶이었으니까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알아 볼까요?

 

은 雚(황새 관)과 見(볼 견)의 합자예요. 황새처럼 세밀하게 살펴 본다는 의미예요. 황새가 물가에서 물고를 잡을 때 집중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네요. 볼 관. 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觀察(관찰), 觀念(관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丰과 糸(실 사)의 합자예요. 丰은 초목의 꽃과 열매가 무성한 모습을 표현한 거예요. 그렇듯 곱고 촘촘하게 짠[糸] 흰색 명주란 뜻이에요. 지금은 '흰 색'이란 뜻으로 줄여서 사용하죠. '바탕'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하얀 색은 모든 색의 '바탕'이 된다란 뜻으로요. 흴 소. 바탕 소. 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素服(소복), 素質(소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艹(풀 초)와 全(온전할 전)의 합자예요. 매우[全] 향기로운 풀이란 뜻이에요. 향초 전. 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蕙(전혜, 향초의 이름)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은 殸(磬의 약자, 경쇠 경)과 香(향기 향)의 합자예요. 경쇠 소리처럼 멀리까지 그 냄새가 퍼져나가는 향기라는 뜻이에요. 향기 형. 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馨香(형향, 향기 좋은 냄새), 馨逸(형일, 향기가 보통 때와 달리 유달리 좋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觀 볼 관   素 흴 소   향초 전   馨 향기 형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蕙   (   )服    (   )逸    (   )察

 

3. '觀音殿'에 나타난 소전체의 특징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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