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좌우 연해에 큰 적들이 가득하여 저돌해 오는 환난이 반드시 아침과 저녁 사이에 있습니다. 군사를 일으킨 지 3년 만에 공사간의 재물이 탕진되고 전염병 또한 극성한데다 사망으로 거의 다 없어진 것이 육지나 바다가 똑같습니다. 대총(大總) 유정(劉綎)은 이미 군사를 철수시켜 고국으로 되돌아가니 위급한 형세가 호흡하는 사이에 닥쳐와 있어 온갖 생각을 해봐도 막아 지킬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 " (노승석 역 『난중일기』259 쪽)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3년이 된 1594년 11월 28일 난중일기에 적힌 내용이에요. 당시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고립무원의 위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대 군단의 적들이 앞에 있는데 자신의 상황은 물자와 인력이 절대 부족하고 원군으로 왔던 명군마저 철수했으니 고립무원의 지경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진은 같은 날짜에 나오는 장군의 시예요. (사진은 수안보의 한 숙소에서 찍었어요.)

 

  蕭蕭風雨夜(소소풍우야)    우수수 비바람 치는 이 밤에

  耿不寐時(경경불매시)    맘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懷痛如摧膽(회통여최담)    아픔 마음은 쓸개가 잘리 듯

  傷心似割肌(상심사할기)    슬픔 마음은 살을 에는 듯

  山河猶帶慚(산하유대참)    산하는 오히려 부끄러운 빛 띄고

  魚鳥亦吟悲(어조역음비)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國有蒼皇勢(국유창황세)    나라에 다급한 형세가 있는데

  人無任轉危(인무임전위)    평정을 맡길 인재 없도다

  恢復思諸葛(회복사제갈)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長驅慕子儀(장구모자의)    적을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經年防海策(경년방해책)    여러 해 바다 막을 계책 세웠으나

  今作聖君欺(금작성군기)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번역: 노승석 역 『난중일기』262 -263 쪽 인용)

 

 

이 시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장군이 처한 상황과 연계하면 금방 이해가 돼요. 더없이 힘든 상황에 처한 장군의 고뇌를 읽을 수 있죠. 그런데 이 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장군의 고뇌와 더불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배후에 있는 마음 자세예요. 

 

제갈량과 곽자의를 생각하는 것은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 제갈량과 곽자의처럼 자신도 고립무원의 상황을 타개하고 승리를 쟁취해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성군을 속인 것이 됐다는 것은 조정의 지원없이 전쟁을 수행하지만 결코 조정을 원망하지 않는 충의의 마음을 표현한 것 이에요.

 

이 시는 고뇌하면서도 고뇌의 수렁에 침몰하지 않고 희망을 찾으며, 타인[성군, 조정]을 원망하기 보다는 외려 가엾게(?) 여기는 평범하면서도 초월적인 한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최근 군 장성의 갑질 논란이나 군에 만연한 방산 비리 등을 생각하니 장군의 시가 한결 더 묵직하게 다가와요.

 

여담. 사진의 시는 『난중일기』에 나오는 시와 달라요. 『난중일기』에는 사진의 시와 유사한 내용의 시가 2편 나오는데, 사진의 시는 이 2편의 시를 짜집기한 거예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진의 시는 이은상 씨가 난중일기의 시를 '무제육운(無題六韻)'이란 제목으로 번역한 거라고 나오더군요. 그런데 노승석 씨가 새로 번역한 『난중일기』에는 이 시의 제목이 '소망(蕭望, 쓸쓸히 바라보며)'이라고 나와요. 이렇게 보면 이은상 씨는 이 시의 원제를 제대로 탈초해 읽지도 못하고, 원시도 함부로 짜집기 해 유포시킨 잘못을 범한 셈이 돼요. 아쉬운 일이죠. 하지만 인터넷 정보에도 오류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이은상 씨를 그릇된(?) 유포의 주인공으로 확정짓는 것은 좀 조심스러워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는 艹(풀 초)와 肅(엄숙할 숙)의 합자예요. 향기나는 쑥이란 의미예요. 艹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肅은 음을 담당해요(숙→소). '쓸쓸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향내가 다하고 시들었다란 의미로요. 쑥 소. 쓸쓸할 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蕭颯(소삽, 쓸쓸한 바람 소리), 蕭瑟(소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耳(귀 이)와 火(불 화)의 합자예요. 잠을 제대로 못자 귀가 뜨겁다(열이 난다)란 의미예요. 편안치않을 경. 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耿耿(경경, 마음이 편안하지 아니한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는 잠잔다란 의미예요. 정확하게는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편안하게 몸을 눕혔다란 의미예요. 未(아닐 미)는 음을 담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뜻을 나타내요. 잠잘 매.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寤寐(오매), 寐語(매어, 잠꼬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扌(손 수)와 崔(높을 최)의 합자예요. 꺾는다는 의미예요. 扌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崔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꺾으려면 높은(강대한)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요. 꺾을 최. 催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催枯拉朽(최고납후, 마른 나무를 꺾고 썩은 나무를 부러뜨림. 일이 대단히 용이함의 의미), 催感(최감, 기가 꺾이고 마음이 슬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刂(칼 도)와 害(해칠 해)의 합자예요. 베어낸다란 의미예요. 刂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害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베어내면 대상을 해하게 된다란 의미로요. 벨 할. 割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割引(할인), 分割(분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忄(마음 심)과 斬(벨 참)의 합자예요. 부끄럽다는 의미예요. 忄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음이 베어질듯이 부끄럽다란  뜻으로요. 부끄러울 참.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愧(참괴), 悔(참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忄(마음 심)과 灰(재 회)의 합자예요. 마음이 넓다는 뜻이에요. 忄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灰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바람이 불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재처럼 그같이 마음이 넓다란 의미로요. 넓을 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恢恢(회회, 여유가 있는 모양), 恢弘(회홍, 크고 넓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馬(말 마)와 區(지경 구)의 합자예요. 말을 몬다는 의미예요. 馬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區는 음을 담당해요. 말몰 구. 驅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驅使(구사, 사람을 몰아쳐 부림), 驅逐(구축, 쫓아 버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竹(대 죽)과 朿(가시 자)의 합자예요. 채찍이란 뜻이에요. 竹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朿는 음을 담당하면서(자→ 책)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채찍에는 가시처럼 돌기 부분이 있다란 의미로요. '꾀'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말을 달리게 할 때 사용하는 채찍처럼, 위기를 타개할 때 사용하는 지혜란 의미로요. 채찍 책. 꾀 책. 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鞭策(편책, 채찍질 함), 秘策(비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欠(이지러질 결)과 其(그 기)의 합자예요. 속인다란 뜻이에요. 欠로 뜻을 표현했어요. 속이는 사람은 그 마음에 흠결이 있다란 의미로요. 其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속일 때는 어떤 대상을 예로 들어 상대를 오도한다는 의미로요. 其는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예요. 속일 기.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詐欺(사기), 欺瞞(기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蕭 쓸쓸할 소   耿 빛날 경   寐 잠잘 매   摧 꺾을 최   割 벨 할    부끄러울 참   恢 넓을 회   

   驅 말몰 구      欺 속일 기   策 꾀 책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逐   (    )弘    (    )悔   分(    )     寤(    )   (    )耿   (    )瑟   秘(    )   (    )感   詐(    )

 

3. 다음을 읽어 보시오. 

 

  蕭蕭風雨夜 / 不寐時 / 懷痛如摧膽 / 傷心似割肌 / 山河猶帶慚 / 魚鳥亦吟悲

  國有蒼皇勢 / 人無任轉危 / 恢復思諸葛 / 長驅慕子儀 / 經年防海策 / 今作聖君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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