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청도터널 기념 휘호를 하나 쓰시지요?"
"뭐가 좋겠나?"
"글쎄요?"
"복리천추(福利千秋)가 어떻겠나?"
"복과 이로움이 끝없다 …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 청도터널로 조선인들이 무궁한 혜택을 입을테니 말입니다."
"자네 아직도 세상 물정 어둡군!"
"예에~?"
"왜 조선인들이 무궁한 혜택을 입나? 우리 대일본제국이 무궁한 혜택을 입지!"
"아, 아~ 그런 뜻이…. 역시 각하의 생각은 깊고 멀으십니다."
"으하하핫 …"
사진은 감 와인 숙성지로 유명한 청도터널 입구 옆에 세워진 석각이에요. '복리천추(福利千秋)'라고 읽어요. '복과 이로움이 끝없다'란 의미예요. 낙관 부분이 파손되어 있어 누구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일본 고위층 인물이 쓰지 않았나 싶어요. 청도터널이 일본에 의해 완성되었으니(1904), 그 기념으로 일본 고위층 인물이 쓰지 않았나 싶은 거죠. 낙관 부분의 파손은 후일 민족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누군가가 손을 댄 것 같아요.
복리천추란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가없이 좋은 의미예요. 하지만 누가 어느 시점에 무엇을 대상으로 이 말을 썼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위 대화는 그 '전혀 다른 의미'를 가상한 대화예요. 복리천추가 결코 조선(인)의 복리가 영원하길 기원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복리가 영원하길 기원한 것이라고 본 것이죠. 자신들이 놓은 철도로 인하여 생기는 부가 가치가 지속적으로 일본에 공급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말이죠. 이렇게 보면 복리천추는 일본(인)에게는 말 그대로 복리천추지만 조선(대한제국)에게는 고혈천추가 되는 거죠. 복리천추란 석각을 단순히 글자 그대로만 보는 것은 단견일 거예요.
이 석각은 보존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아요. 낙관도 파손된데다 석각 내용도 음흉하고(?) 글씨의 미적 가치도 별반 없어 보이거든요. 혹 청도터널과 관계된 불행한 역사의 흔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석각 상단 오른 쪽에 빨간 색의 경고 문구 ― 손을 대지 마십시오 ― 를 붙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여요. 하지만 아무런 설명없이 그저 경고 문구만 붙여놓으니, 개인적으로는, 없어졌으면 하는 억하심정이 더 들더군요. 굳이 보존을 하고자 한다면 석각의 유래와 낙관 파손 경위 그리고 보존하려는 이유를 적은 안내판을 석각 옆에 세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자를 살펴 볼까요?
福은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畐(가득할 복)의 합자예요. 신이 상서로운 일로 인간을 도와준다는 의미예요. 의미를 줄여 '복'으로 사용해요. 示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畐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인간을 만족시켜 주는 일이 바로 '복'이란 의미로요. 복 복. 福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禍福(화복), 福券(복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利는 禾(벼 화)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예요. 익은 벼를 베어[刂] 수확한다란 뜻이에요. 이롭다란 의미는 여기서 연역된 거예요. 그렇게 수확을 하여 이익을 얻었다란 의미로요. 이로울 리. 利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利益(이익), 利權(이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千은 人과 十의 합자예요. 사람의 수명을 보통 100으로 잡으면 열[十] 사람의 수명은 1,000이란 의미예요. 일천 천. 千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千年(천년), 千字文(천자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秋는 禾(벼 화)와 火(불 화)의 합자예요. 온갖 곡식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란 의미예요. 禾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火는 음을 담당해요(화→추). 秋는 귀뚜라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해요. 가을의 대표적 곤충인 귀뚜라미로 가을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죠. 가을 추. 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春秋(춘추), 秋收(추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볼까요?
1. 다음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福 복 복 利 이로울 리 千 일천 천 秋 가을 추
2. ( )안에 들어갈 알맞은 한자를 손바닥에 써 보시오.
( )年 ( )權 ( )收 ( )券
3. 아래 인용문을 읽고 우리가 취할 복리천추의 길은 무엇인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등문공: 우리나라는 소국이올시다. 제 아무리 정성을 다해 대국을 섬긴다해도 화를 면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런지요? 선생의 혜안을 빌리고 싶습니다.
맹자: 음... 옛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고 싶군요. 태왕이 빈 땅을 다스릴 때 일입니다. 적인이 빈을 침입해 왔습니다. 태왕은 온갖 재화와 육축으로 그들을 달래며 빈 땅에서 나가주길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허사였습니다. 태왕은 빈 땅의 원로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온갖 재화와 육축으로 그들을 달래며 떠나주길 요청했지만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땅을 차지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내 들으니, 군자는 사람에게 소용되는 물건을 가지고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땅 때문에 이 백성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 땅을 떠나고자 합니다. 내가 없다하여 무슨 큰 일이 있겠습니까?" 태왕은 빈 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 정착했습니다. 빈 땅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어진 이를 어이 좇아가지 않으랴! 어서 따라 가자!" 빈 땅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들은 어떤 이의 말을 해드리고 싶군요. "이 땅은 선조때 부터 대대로 지켜온 소중한 터전이다. 내 어찌 이 땅을 함부로 남에게 넘길수 있으랴. 죽음으로써 지키리라!" 왕께 드릴 수 있는 제 답은 이 두 가지 뿐입니다. 택일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