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어느 시인은 외로움을 삶의 숙명인 양 노래했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외로움이 숙명이고 당연한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노래할 필요가 없겠지요. 사람은 역시 사람과 어울려 지낼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존재이지 않나 싶어요.
당나라 천보(天寶, 현종) 연간에 변방 - 주로 서역 - 의 풍경과 생활 그리고 그곳에서 머무는 군인들의 애환을 주요 시제로 삼는 일군의 시인들이 나타나요. 이른바 변새시파(邊塞詩派)로 불리는 시인들이죠. 고적, 잠삼, 왕지환, 왕한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들은 실제 변방에서 근무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변방의 풍물과 인정을 핍진하게 그렸어요. 특기할만 한 것은 변방의 풍물과 인정을 그렸지만 시의 정서가 살풍경하지 않고 낭만적 정서가 배어 있다는 점이에요. 천보 연간 이후로 당나라의 국세가 많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 시인이 활약하던 시기는 아직 성세에 있었기에 그런 정서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폐색의 시기였다면 그런 정서는 불가능했겠지요.
사진의 시는 변새시파의 일원인 잠삼(岑參,715-770)의 '양주사(諒州詞)'란 시예요. 변방 지역의 고적한 분위기를 그린 시로, 앞서 말한 것처럼, 변새시임에도 불구하고 살풍경하지 않고 낭만적인 정서가 배어 있어요.
邊城暮雨鴈飛低 변성모우안비저 변성 저물 녘 비내리는데 기러기 낮게 날고
蘆笋初生漸欲齊 노순초생점욕제 갈대 싹 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웃자라 버렸네.
無數鈴聲遙過磧 무수영성요과적 방울 소리 울리며 사막 지난 비단 상인들
應駄白練到安西 응태백련도안서 지금 쯤은 안서에 도착했을 듯.
시의 화자는 병사인 듯 싶어요. 저녁 불침번 차례가 되어 창을 들고 성 위에 섰어요. 병사를 둘러싼 풍경엔 사람의 인기척이 하나도 없어요. 하늘엔 잿빛 물감만 가득하고 땅엔 웃자란 갈대 밖에 없어요. 움직이는 물체라곤 기러기 뿐인데 이마저도 날개를 늘어 뜨린 채 힘없이 낮게 날고 있어요. 고적한 심사를 달랠 길 없는데 무심한 하늘에선 어느새 추척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요. 더없이 인정이 그리운 병사는 문득 성의 관문을 통과해 사막 길을 지나갔던 비단 상(商)들을 생각해요. 통과시 그들과 있었던 인정의 교류를 떠올리며 고적한 심사를 달래는 것이지요. 아무런 친분도 없지만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한 건 그들이 자신과 감정이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병사는 허공을 향해 그리움의 소리를 질렀을 것만 같아요. 어어이~
낯선 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邊은 辶(걸을 착)과 自(부터 자)와 方(旁의 약자, 곁 방)의 합자예요. 자기가 있는 곳에서[自] 걸어서 갈 수 있는[辶] 근방[方]이란 뜻이에요. 의미를 확장하여 국경 지대란 의미로도 사용하죠. 가 변. 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周邊(주변), 邊境(변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低는 人(사람 인)과 氐(근본 저)의 합자예요. 氐는 본래 나무 뿌리가 땅[一]으로 곧게 내려갔다란 뜻이에요. 그렇듯 사람이 몸을 아래로 구부려 낮추었다란 뜻이에요. 낮출(을) 저. 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低價(저가), 低空(저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蘆는 艹(풀 초)와 盧(밥그릇 로)의 합자예요. 갈대란 뜻이에요. 艹로 뜻을 표현했어요. 盧는 음을 담당해요. 갈대 로. 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蘆岸(노안, 갈대가 우거진 물가의 언덕), 蘆花(노화, 갈꽃)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笋은 竹(대 죽)과 尹(맏 윤)의 합자예요. 대나무 순이란 뜻이에요. 竹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尹은 음을 담당해요(윤→순). 대순 순. 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竹笋(죽순), 笋籜(순탁, 죽순 껍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위 시에서는 대순의 의미가 아니라 갈대순의 의미로 사용됐어요.
漸은 본래 물이름이에요. 안휘성 이현에서 발원하여 남만을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물이에요. 물이름 점. 후에 '차차'란 의미로 주로 사용하게 됐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점수(漸水)가 서서히 흐른다는 의미로요. 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漸進(점진), 漸層(점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齊는 밭 두둑 위에 보리 이삭이 가지런히 핀 모양을 그린 거예요. 가지런할 제. 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齊家(제가), 齊整(제정, 정돈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鈴은 金(쇠 금)과 令(아름다울 령)의 합자예요. 방울이란 뜻이에요. 金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令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방울소리는 듣기 좋다는 의미로요. 방울 령. 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鈴語(영어, 방울 소리), 鈴閤(영합, 장수가 있는 곳)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駄는 馬(말 마)와 太(클 태)의 합자예요. 짐을 싣는다는 뜻이에요. 馬로 뜻을 표현했어요. 太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짐을 싣는 짐승은 대개 덩치가 크다는 의미로요. 실을 태. 駄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駄背(태배, 등에 짐), 駄價(태가, 짐을 실어다 준 삯)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練은 糸(실 사)와 柬(가릴 간)의 합자예요. 무명 모시 따위를 잿물에 삶아 물에 빨아 말린다는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柬은 음을 담당하면서(간→련)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삶을 적에 제대로 삶아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로요. 누일 련. 위 시에서는 누인 비단이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練囊(연낭, 누인 명주로 만든 주머니), 練帛(연백, 누인 비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遙는 멀어서 다니기 쉽지 않다는 뜻이에요. 辶(걸을 착)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멀 요. 遙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遙遠(요원), 遙望(요망, 멀리서 바라 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磧은 石(돌 석)과 責(積의 약자, 쌓을 적)의 합자예요. 돌이 쌓여있는 곳, 즉 자갈밭이란 뜻이에요. 자갈밭 적. '모래 벌판'이란 뜻으로도 사용해요. 이 경우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지요. 모래벌판 적. 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沙磧(사적, 사막), 石磧(석적, 자갈밭)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사진은 촛불 집회 1주년 기념차 서울에 갔다가 안국역에서 찍었어요. 역사 내 벽에 행인들을 위해 그림들이 전시돼 있더군요. (작가 분들껜 죄송하지만) 전시된 기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그림들이 추레해 보였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지나가는 대부분의 행인들이 거의 눈길을 주지 않더군요. 해당 기관에서 다시 한 번 관심있게 살펴보고 정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