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潭.

 

 주변의 - 제가 사는 지역의 - 사찰이나 음식점에서 심심찮게 보는 낙관이에요. 담(潭)은 읽을 수 있겠는데, ○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원'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긴 한데 확신할 수가 없더군요. 아이들이라면 장난삼아 '원(圓, 둥글 원)'자를 동그라미로  표기할 수도 있겠지만 성인 서예가라면 이렇게 할리 만무하니 필시 다른 의미를 동그라미로 표기했을 걸로 생각들어 선뜻 '원'으로 읽을 수 없었던 거예요. "에이, 고약한 서예가네. 왜 이렇게 읽기 불편하게 표기한거야. 글씨는 왜 또 이렇게 많이 까발리고." 욕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글씨는 의외로 맑고 군더더기가 없는 거예요. 생동감도 느껴지구요. "짜식, 글씨는 좀 쓰는 것 같네." 아니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지난 주말 지인과 예산에 있는 수덕사에 갔다가 '선(禪) 박물관'에 들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 박물관 안에 이 아니꼬운 자의 글씨가 가득한 거예요. 이 아니꼬운 자는 수덕사 3대 방장을 지낸 원담(圓潭, 1926-2008) 스님이더군요. 예의 맑고 군더더기 없으며 기운 생동하는 글씨를 대하니 덩달아 마음도 정화되며 기운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은 '원'으로 읽는게 맞는 거였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불필요한 생각을 일으켜 의심을 했던 셈이에요. '원(圓)'을 '○'으로 표기한 것은 선승다운 해학적 표기이자 저같이 의심많은 중생들에게 꺠우침을 주는 법문같은 표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님, 고맙습니다."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스님의 글씨가 주변에 흔한 것은 제가 사는 지역이 예산에 가까운 탓도 있고, 글씨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별 망설임없이 써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일종의 자비와 포교 수단으로요. 많이 까발린게 아니고 널리 베풀었던 셈이에요. "스님, 훌륭하십니다." 상찬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진은 원담 스님의 글씨예요(인용 출처: http://www.ggbn.co.kr/news/articlePrint.html?idxno=9241). 2005년 하안거 해제법어라는 군요. 앞서 말한대로 군더더기가 없고 맑으며 기운이 생동하는 느낌이 들어요. '대지산하시아가 갱어하처멱향토(大地山河是我家 更於何處覓鄕土)'라고 읽어요. "온 대지와 산하가 내 집인데 달리 어디서 고향을 찾는가!"라는 뜻이에요. 자타불이이(自他不二) ·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표현한 말인 듯 싶어요. 이 경지는 곧 깨달음의 경지겠지요. 진보와 보수, 남과 북, 부자와 빈자, 영남과 호남, 기성 세대와 신 세대 등 온갖 갈등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가르침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싶어요.

 

낯선 두어 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은 攴(칠 복)과 丙(밝을 병)의 합자예요. 고치다란 의미예요. 고칠 적에는 강한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攴으로 의미를 삼았어요. 丙은 음을 담당하면서(병→경)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고치는 것은 밝고 좋은 결과를 지향한다는 의미로요. 고칠 경. '다시'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란 의미로요. 다시 갱. 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甲午更張(갑오경장), 更新(갱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爪(손톱 조)와 見(볼 견)의 합자예요. 정체를 드러내기[見] 위해 파본다[爪]란 의미예요. 의미를 정리하여 '구하다'로 사용해요. 구할 멱. 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覓索(멱색, 찾음), 覓得(멱득, 구해 얻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나라 안의 특정 구역이란 의미예요. 고을의 의미를 갖는 좌 우의 글자가 뜻을 담당하고(幺와 阝는 모두 邑(고을 읍)의 변형이에요), 가운데 글자는 음을 담당해요. 고향이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고향 향. 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鄕(귀향), 故鄕(고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이란 말이 있죠. 요즘은 대부분의 문서가 워드로 작성되기에 손글씨 보기가 쉽지 않죠. 이제는 서여기인이란 말은 시효가 다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신어서판(身言書判)이란 말도 그렇구요. 그런데 역으로 시효가 다했기에 손글씨는 더 값어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치 시효 지난 도자기가 값나가는 골동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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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7-10-18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득도한 스님 말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