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 푸른 시내 흙과 돌이 가로막아 / 가득히 고인 물이 막혀서 돌아들 때 / 긴 삽 들고 일어나서 일시에 터뜨리니 / 우레처럼 소리치며 쏜살같이 흘러간다 /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송재소 역, 다산시선, 118)

  

다산의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不亦快哉行]란 연작시 중 한 수예요. 답답하게 고여 있던 시내 둑을 터뜨려 흘려보내면서 느끼는 통쾌함을 그렸어요.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연작시는 오랜 유배생활로 심신이 답답했을 다산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답답한 일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내용들을 그리면서 자신의 처지도 그같이 해소되었으면 하는 기원을 담고 있어요

  

살다보면 이런저런 인정(人情)과 세사(世事)에 얽매이기 마련이죠. 그물에 걸린 새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 답답함이 바로 삶의 본질 아닐까, 라는 생각조차 들죠. 이런 삶에서 이따금 가뭄의 단비처럼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는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쾌재(快哉)를 부를 거예요. 그러나 과연 그런 일이 얼마나 될까요? 다산 역시도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끝내 쾌재를 부르지 못했잖아요?

  

사진은 쾌재정(快哉亭)이라고 읽어요.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머물던 정자 이름이에요. ‘쾌재, 알려진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기거나 혹은 그럴 때에 내는 소리라는 의미예요. 채수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주로 성종 · 연산군 · 중종시기에 벼슬을 했던 사람이에요. 임금들의 이름이 말해주듯 정치적 명암이 교차하던 시기를 살았기에 환로(宦路)를 걸었던 그로서는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여요. 이 정자는 그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상주에 은거할 적에 지은 거예요. 쾌재정에 걸린 시를 보면 그가 왜 정자 이름을 쾌재라고 붙였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내 나이 금년 예순여섯 / 지난일 생각하니 모두가 아득키만 / 소년 시절 재주 출중했고 / 중년엔 공명 또한 뛰어났지 / 무정한 세월 흘러 이제는 탄식만 / 청운의 길 아득한데 말 걸음은 제자리 / 어찌하면 티끌세상 일 다 던지고 / 봉래산 신선과 벗이 될 수 있을지

  

정자 이름을 쾌재라고 지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거예요. 그의 불쾌재한 심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 내용 만으로 보면 출중한 능력을 자부하는 자신이 현실에서 그런 능력을 제대로 펴지 못했던 데서 오는 울울함이 불쾌재의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그 원인의 뿌리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삶 자체가, 앞서 말했던 대로, 인정과 세사에 얽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시의 마지막 두 구절 어찌하면 티끌세상 일 다 던지고 / 봉래산 신선과 벗이 될 수 있을지는 이런 추정이 무리 없다는 것을 말해줘요. 아울러 두 구절은 그가 생각한 진정한 쾌재가 무엇인지도 말해줘요. 바로 인정과 세사의 그물을 벗어버릴 때 가능한 것이라는 거죠. 쾌재정의 쾌재는 채수의 현실과 이상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마음 심)(터놓을 쾌)의 합자예요. 일이 뜻대로 되어 기쁘다는 의미예요. 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뜻대로 일이 성사되어 파안대소(破顔大笑)한다는 의미로요. 쾌할 쾌.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爽快(상쾌), 欣快(흔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재앙 재)의 고자(古字)가 합쳐진 거예요. 문장의 중간이나 말미에 사용되는 감탄 어미(語尾)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의 고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천재(天災)처럼 분명하게 감탄의 의미를 표현하는 어미가 라는 의미로요. 어조사 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哀哉(애재, 슬프구나!), 賢哉(현재, 어질도다!)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높을 고)(의 약자, 못 정)의 합자예요. 못처럼 길쭉하게 높은 곳에 설치한 건물이란 의미예요. 정자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樓亭(누정), 亭子(정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살면서 인정과 세사의 그물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불교의 무아(無我)나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그것 아닐까, 생각해 봐요. 인정과 세사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면 욕구의 충족보다는 욕구의 극복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욕구의 극복은 결코 허무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진취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만일 무아나 극기복례가 허무적인 것이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덕목일리 없었겠죠. 비록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도 그것이 분명 의미 있는 덕목이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은 운()이요 격()이다. 많은 것이 제일 아니요, 크다 하여 좋을 것 없다. 있을 곳에 있어야 하고, 놓일 때에 놓여야 한다. 비로소 그 향기-향내 가 나고, 까닭에 그 품위-격이 있는 것이다.

    

 

월탄 박종화(1901~1981) 선생의 수선화(水仙花)란 수필 일부분이에요. 무리지어 핀 수선화보다 함초롬히 핀 두어 송이 수선화가 더 품위 있어 보인다고 말하고 있어요. 수선화는 무리지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사진의 수선화처럼 외로이 피어있는 모습도 그 못지않게 아름다워요. 아름다움은 약간의 고독과 도도함이 더해질 때 더 빛을 발하는 것 같거든요. 정호승 시인의 유명한 시 수선화에게도 외롭게 피어있는 수선화를 보고 지은 듯해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해요. 이 소년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죽었고, 그 자리에서 피어 난 꽃이 수선화라고 하죠. 자기애(自己愛)라는 꽃말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고요. 수선화라는 한자명 역시 물가의 선녀 같은 꽃이라는 라는 뜻이 말해주듯 아름다움과 상관성이 깊어요. 황정견(黃庭堅, 10451105)수선화란 시를 보면,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조식(曹植, 192232)낙신부(洛神賦)일부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경국지색이란 성어를 원용하고 있어요(1구와 5). 낙신부는 고래로 미인의 묘사에 대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그 내용을 원용했다는 것은 수선화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경국지색의 원용 역시 매한가지구요.

 

 

凌波仙子生塵襪 능파선자생진말   물결 타고 걷는 선녀 가벼운 포말을 일으키며

水上盈盈步微月 수상영영보미월   물 위를 사뿐사뿐 희미한 달빛 아래 걷는 듯

是誰招此斷腸魂 시수초차단장혼   그 누가 이 애끓는 혼 불러다

種作寒花寄愁絶 종작한화기수절   차가운 꽃 만들고 애절한 시름 붙였는가

含香體素欲傾城 함향체소욕경성   향기 품은 하얀 몸 경국지색 미인이니

山礬是弟梅是兄 산반시제매시형   산반화는 아우요 매화는 형이로다

坐對眞成被花惱 좌대진성피화뇌   앉아서 보노라니 참으로 아찔하여

出門一笑大江橫 출문일소대강횡   문 나서 크게 웃자 대강(大江)은 유유히

 

 

그런데 정작 황정견의 시에서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것은 고사의 원용을 통한 묘사보다는 마지막 문 나서 크게 웃자 대강은 유유히란 구절이에요. 이 구절은 장대한 강물과 같은 웅혼함을 간직해야 할 사대부인 자신이 잠시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혼미한 상태에 있었음을 반성하는 내용이에요. 역설적으로 수선화의 아름다움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저도 황량한 마당 한 켠을 환하게 밝혀준 수선화가 고마워 시 한 수를 지었어요. 막상 지어놓고 보니 너무 엄숙한 분위기가 풍겨 산뜻한 미감을 전달하지 못하는 졸작이 되고 말았어요.

 

 

德必有隣古來及 덕필유린고래급   예부터 이르길 덕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知音一壓百不知 지음일압백부지   한 사람의 지인이 무정한 백 사람 보다 나은 법

勿悲斜丘獨開爛 물비사구독개난   비탈진 어덕에 홀로 피었다 슬퍼 마소

吾認汝形最上姿 오인여형최상자   나는 그대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소

 

 

수선화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 암컷만 꽃을 피워요. 사진에서 보면 매화나무 밑에 있는 녀석들이 수컷인데 무리지어 있기만 하지 꽃은 없어요. 반면 암컷은 떨어져서 저렇게 도도하게 꽃을 피우고 있구요. 저 수컷들 애간장이 탈 것 같아요. 하하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재훈.


이 이름 들어 보셨나요? 전통 복장을 한 젊은 학자로, 현재 연세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이예요. 오랜 기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교에 진학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어요. 사라진 전통 교육을 몸소 체험한 이로, 근(현)대 교육과 전통 교육을 머리와 가슴으로 온전히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언젠가 이 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은 부분이 있어요.


검정고시를 위해 학원에 다니다 크게 아파 상당 기간 공부를 못했다고 해요. 당시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대학에 진학한 뒤 아팠던 근본 원인을 알게 됐다고 해요. 그건 바로 학원의 시간표였어요. 기계적으로 짜여진 학습 시간과 쉬는 시간에 맞춰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자신의 몸이 적응을 못해 병이 났다는 거예요. 그가 경험한 전통 교육은 이와 달랐어요. 각자의 학습 과목과 진도가 다르기에 획일적인 시간과 휴식이 없었어요. 자신의 몸은 여기에 오랜 기간 적응돼 있었는데 그 리듬이 깨지면서 병이 났다고 본 거예요. 병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통찰하는 언급이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한재훈 씨와 반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에 들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강의 시간표였어요. 이동해 가면서 수업을 듣고 중간에 비는 시간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표도 다른 것에 적응이 안돼더군요. 제 경우엔, 한재훈 씨와 달리, 몸이 오랜 기간 기계적이고 획일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에 적응이 돼있어 그렇지 못한 환경을 접하자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거예요.


사진의 한자는 직행(直行)이라고 읽어요. 곧바로 가다란 뜻이죠.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갔다가 지하철에서 찍은 거예요. 관절전문병원 의료 광고 문구인데, 왠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직행이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속도와 효율'을 염두에 둔 말이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죠. 그런데 그 속도와 효율의 끝은 무엇일까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근(현)대 교육 - 앞서 든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시간표가 그 한 실례죠 - 을 받으며 병이 난 한재훈 씨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커요(제 경험은 한재훈씨와 반대 상황이지만 이 역시 속도와 효율 중시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론 한재훈씨의 발병 사례와 다를 바 없어요). 무엇보다 속도와 효율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는 거예요. 최고의 가치란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하는데 탈이 나게 만든다면 그 가치엔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수 없죠. 저 관절전문병원의 광고 문구 '직행'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이자 심각히 되돌아보아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直은 乚(숨길 은)과 十(열 십)과 目(눈 목)의 합자예요. 많은[十] 이들[目]이 주목하는 것은 제 아무리 숨겨도[ 乚]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의미예요. 능동의 의미로 바뀌어, 숨기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해요. 곧을 직. 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直視(직시), 正直(정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行은 본래 사거리를 그린 거예요. 다니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다닐 행. 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行動(행동), 慣行(관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하나.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경우가 있죠.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미 몸이 여기에 만성이 돼있어서 말이죠. 왠지 한재훈 씨 처럼 일찍이 현대 사회와 다른 전통 사회를 깊이 체험해 본 이들은 내공이 있어 효율과 속도의 문제를 이겨낼 힘이 있을 것 같아요. 새삼 초중등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돼요. (제가 전통 체험을 하자든가 한학 교육을 시키자든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란 것, 아시죠?)


여담 둘. 관절이 안좋으면 무조건 관절전문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정확한 판단이 안서요. 몸은 기계가 아니고 유기체라 관절이 안좋으면 그와 관련된 다른 요인들도 안좋을텐데 관절전문병원만 간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말이죠. 무식한 생각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종원(柳宗元, 773-819))재인전(梓人傳)은 한 재인(목수의 우두머리)에 대한 전기문으로, 그에 대한 기술을 통해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빗대어 말한 작품이에요. 이 글은 약간 시니컬하게 시작돼요. 어느 날 자신이 아는 집에 세들게 된 한 재인을 만났는데, 그 재인이 자신은 여러 목수들을 부리며 자신이 없으면 집짓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그러기에 관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의 세 배, 사가를 지을 적에는 일반 목수 총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고 호언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의 망가진 침대 다리 하나도 못 고치고 후일 목수를 불러다 수리할 것이라고 말하자, 유종원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그를 비웃어요. ‘~ 능력도 없으면서 녹(祿)만 탐하고 재물만 좋아하는 자로군!’

  

그런데 후일 그가 집짓는 곳에서 하는 일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어요. 작은 설계도 한 장이 벽에 붙어 있는데 큰 집을 짓는데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게 그려놓은 것을 보고 감탄해요. 모든 목수들이 그의 명령대로 일을 수행하고, 그의 지시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한 질책을 받아도 아무 말 못하고 서운한 감정도 품지 않는 것에 놀라요. 건물이 완성되자 대들보엔 오직 그의 이름만 씌여지고 함께 일한 많은 목수들의 이름은 씌여지지 않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요. 여기서 유종원은 이 재인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를 재상의 역할과 임무 및 가치에 빗대어 말해요.

  

재인이 많은 목수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재상 역시 많은 관리들을 적절히 부리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목수들을 질타한다면 재상 역시 제 역할을 못하는 관리들을 처벌하고 좋은 관리를 등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며, 재인이 설계도를 갖고 집을 짓는 대체를 관할한다면 재상 역시 국정에 대한 철학과 도를 가지고 국정의 대체를 관할하며,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 공이 오롯이 재인에게 돌아가듯 정치가 잘되면 그 공은 오롯이 재상에게 돌아간다고 말하죠

  

유종원은 재인전후반부에서 재인이 각각의 소임을 맡은 목수들의 일을 일일이 간여하지 않듯 재상도 그와 같아야 하며, 아울러 집 주인이 재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튼튼한 집이 지어지듯 군주도 재상의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국정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는 과감한 발언을 해요. 재인전은 유종원의 정치철학을 나타낸 글이자, 당시 신진 사류들의 정치철학을 대변한 글이기도 해요.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표기되어 있듯, 대목장(大木匠)이라고 읽어요. “목수는 궁전이나 사원등 큰 건물을 짓는 장인목수와 민가를 짓는 일반목수로 대별되는데 장인목수의 우두머리를 대목장이라고해요. “목수의 우두머리인 대목의 역할은 많은 장인들을 지휘 통솔하는 능력 뿐 아니라 건축과 관련된 모든 기술과 기법을 충분히 갖춘 이들만이 수행할 수있죠. 대목은 수십 년을 두고 스승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갈고 닦은이들이에요(이상 인용문, 국립문화재연구소, 대목장). 


최근 제가 사는 동네의 목수 한 분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 지정되었어요(경사스러운 일이죠). 사진은 이 분의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간판인데, 사진을 찍으며 문득 유종원의 재인전이 생각나 인용해 봤어요. 유종원은 재인의 역할과 재상의 역할을 견줘 이해했지만, 비단 재인만이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오랫동안 공력을 쌓아 최고 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일은 모두 재상의 역할에 견줘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유종원이 그의 글 후반부에서 강조하듯 최고책임자의 중요한 덕목은 적절한 임무와 책임성 부여이지, 간섭과 통제가 아니에요. 간혹 최고책임자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이 중요한 덕목을 망각하여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도 무형문화재 대목장 지정을 받은 저 분은 왠지 그런 최고 책임자는 아닐 듯해요. 대목장을 지정받기까지 최고 책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좋은 성과를 냈기에 대목장 지정을 받은 것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이 낯설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볼까요?

  

(상자 방)(도끼 근)의 합자예요. 본래,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목기(木器)란 의미였어요. 지금은 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으로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장인 장.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匠人(장인), 巨匠(거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유종원은 재인전서두에서 재인이 자신의 부서진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한다고 비꼬았는데 이는 순전한 오해였어요. 재인은 그 일을 하지 않은 것 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재인은 대목장과 같은데, 앞서 말했듯, 대목장은 여러 목수 기술을 두루 경험한 뒤에 오르는 지위이기에 그깟 침대 다리 하나 수리 못할 사람은 아니죠.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멋진 글을 위해 그렇게 서두를 설정한 것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의 피아노란 시예요. 피아노 소리에 대한 흥취를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청각 예술인 음악을 시각 예술인 시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죠. 그러다보니 이런 강렬하면서도 도발적인 이미지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여요. 많은 이들이 피아노 연주를 듣지만 그 연주의 정수를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전봉건은 그 많지 않은 이들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그랬기에 이 같은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사진은 당대의 시인 고황(顧況, 생몰년 미상)이 지은 이공봉의 공후 연주를 노래하다[李供奉彈箜篌歌]의 일부분이에요. 프랑스에 가있는 딸아이가 찍어 보낸 사진인데, 위아래에 프랑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프랑스어 번역 밑에 원문을 소개해 놓은 것으로 보여요. 읽어 볼까요? (간자체로 쓰고 원시와 다른 한자를 쓴 것도 있어 번체자로 쓰고 잘못 쓴 한자도 바로 잡았어요.)

 

胡曲漢曲聲皆好 호곡한곡성개호   호곡(胡曲) 한곡(漢曲) 그가 타는 소린 다 좋아

彈著曲髓曲肝腦 탄착곡수곡간뇌   곡들의 정수를 연주하기 때문이지.

徃徃從空入户來 왕왕종곡입호래   그 소리 왕왕 공중을 타고 민가에도 전해져

瞥瞥隨風落春草 별별수풍낙춘초   언뜻언뜻 바람타고 봄풀에 내리기도.

草頭只覺風吹入 초두미각풍취입   풀들은 그 바람 아는 듯

風來草即隨風立 풍래초즉수풍립   바람 불면 바람 따라 일어서지.

草亦不知風到來 초역부지풍도래   풀들은 바람 불어오는 곳 모르고

風亦不知聲緩急 풍역부지성완급   실어 보낸 바람도 소리 완급은 이해 못해.

 

이공봉 공봉은 벼슬이름, 이름은 빙(凴) - 이 연주하는 절묘한 공후 솜씨를 찬미하고 있어요. 그의 손길이 닿으면 세상의 어떤 곡도 다 명곡이 된다고 했으니, 이 이상의 극찬은 없을 거예요. 더불어 그의 연주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풀과 바람을 통해 그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한 번 더 찬미했어요.

 

그런데 풀과 바람을 통해 이공봉의 공후 소리가 갖는 절묘함을 찬미한 내용은 은연중 시인 자신의 감상안(鑑賞眼)을 자랑한 것이기도 해요. 이해 못하는 대상을 통해 이해하는 자신을 드러낸 것이니까요. 여기 풀과 바람은, 어쩌면, 시인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이들을 상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전봉건이 피아노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듯 고황 역시 이공봉의 공후 연주에 남다른 감흥을 느꼈던 거예요. 그런 남다른 감흥을 평범한 이들은 이해 못할 거라고 은연중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몇 자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활 궁)(홑 단)의 합자예요. 한 번에 하나씩 활을 쏜다는 뜻이에요. 쏠 탄. 연주하다란 의미의 타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활줄을 당겨 활을 쏘듯 줄을 당기거나 쳐서 연주를 한다는 의미로요. 탈 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彈丸(탄환), 彈奏(탄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눈 목)(해진옷 폐)의 합자예요. 언뜻보다란 뜻이에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언뜻볼 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瞥瞥(별별, 언뜻언뜻 보이는 모양), 瞥眼間(별안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볼 견)(배울 학) 약자의 합자예요.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사물을 인지하듯 이치를 터득해 무지몽매한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예요. 은 뜻을, 의 약자는 뜻과 음()을 담당해요. 깨달을 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覺醒(각성), 觸覺(촉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실 사)(느즈러질 원)의 합자예요. 풀어 헤쳐진 실처럼 느슨하다란 의미예요. 느슨할 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緩慢(완만), 緩衝(완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마음 심)(미칠 급)의 합자예요. 옷폭이 좁다란 뜻이에요. 급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옷폭이 좁다보니 입는데 허둥대고 허둥대다보니 마음도 급하게 된다는 의미로요. 급할 급.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뒤에서 앞으로 가려고 급하게 서두른다는 의미로요.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急行(급행), 火急(화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공후는 우리 고조선 시대의 노래 공후인(箜篌引)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악기예요. 본래 서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파됐어요.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렸고, 지금은 사라진 악기예요(현대 중국에 들어와 복원됐다고 해요). 서양의 하프와 비슷한 악기로 알려져 있어요. 당나라 때 최전성기를 누린 것은 황실의 애호와 깊은 관련이 있어요. 반대로 공후가 사라진 것도 황실의 애호와 관련이 깊은데, 황실의 애호를 받는 음악이 민간에 전파되는 것을 원치 않아 왕조의 멸망과 함께 쇠멸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사진의 내용에서도 그런 폐쇄적 느낌이 나타나 있어요. 민가에 이따금 들린다는 것이 그것이죠. 공후는 아무리 좋은 음악도 많은 이들과 함께 해야 오래가지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여민락(與民樂)’의 교훈을 일깨우는 악기라고 볼 수 있어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9-03-2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공후란 악기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서양악기 하프와 많이 비슷하네요.
호곡은 오랑캐나라 (서역)의 곡, 한곡은 한나라 곡을 말하는것이겠지요? 이것 역시 이공봉 자신의 감상안을 드러낸게 아닌가 싶네요.
전봉건의 피아노라는 시는 학교 다닐때 국어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하고요.
어렵지만 재미있게 써주셔서 매번 읽어보게 됩니다.

찔레꽃 2019-03-24 11:33   좋아요 0 | URL
깊은 관심에 깊이 감사드려요^ ^ hnine님의 댓글이 저를 더욱 분발하게 만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