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恒産, 생계를 유지할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항심(恒心, 도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사(, 군자)이지만, 일반 백성은 그러기 어렵습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범죄도 저지르게 됩니다. 그때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흡사 투망질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투망질은 어떻게 합니까? 고기가 모이도록 떡밥을 던진 후 고기가 모이면 투망을 던지지요. 백성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처벌하면 이는 투망질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일장 훈계하는 장면이에요. 훈계라는 말이 어색한가요? 맹자 당시는 각국이 지식인을 우대하는 기풍이 있어 군주라 해도 어렵게 여겨 할 말을 못하는 법은 없었어요. 특히 제나라는 직하학궁(稷下學宮, 직하에 있던 연구소)라 하여 자유롭게 사상과 학문과 정치를 논하는 씽크 탱크를 운영했기에 그런 기풍이 더 강했지요. 제선왕에게 훈계했다고 해도 대과 없어요.

  

유학하는 선비 하면 왠지 남산 골 샌님의 가난하지만 꼬장꼬장한, 즉 가난에 초연한 모습이 연상돼요. 그러나 유가의 종주(宗主, 우두머리)라 할 맹자의 주장을 보면 사(, 앞서는 군자라 했지만 지식인 혹은 리더라 봐도 무방)에겐 그런 모습을 허여해도(견딜 수 있기에) 일반 백성에겐 그런 모습을 강요하지 않아요(견딜 수 없기에). 항상 배불리 먹고 부모 잘 모시고 형제 처자 잘 거느려야 한다고 말해요. 지배층에겐 희생을 요구해도 피지배층에겐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죠.

  

가난이 미덕인 법은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 가난한데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가난은 악덕이에요. 그런데 이 악덕을 없애는 건 위정자의 몫이죠. 만일 그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그는 위정자의 자격이 없어요. 맹자의 말을 빌면, 그것은 백성을 범죄자로 모는 행위와 같아요. 가난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범죄자의 잘못 이전에 위정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됐어요.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있는 사람은 더 있는 사람이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으니 이른바 투자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돈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니 있는 사람은 더 있는 사람이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요

  

이런 상황이 됐으니, 맹자의 말을 빌면, 없는 사람은 자꾸 수렁에 빠져 범죄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돼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를 해결할 수 방책은 무엇일까요? 복지의 확대 밖에는 없지요. 그래야 없는 이들이 수렁/범죄에 빠지지 않게 되지요.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못 보고 있는 거예요.

  

사진의 한자는 재()라고 읽어요. 재물이란 뜻이지요. (조개 패, 재물의 의미)(재주 재)의 합자예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활용된 예로는 財物(재물), 財貨(재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재물이란 한자를 보니 정치와의 함수 관계가 생각나 몇 마디 해봤어요. 사진은 동네 쓰레기 모아놓는 장소에서 찍었어요.

  

성장도 잘 되고 복지도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 둘 다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 고도 성장기는 그 이전에 워낙 못살았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라면 복지는 뒤로 미뤄도 괜찮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성장도 쉽지 않고 풍요의 일부 단맛도 본 상태에서는 복지를 뒤로 미뤄도 괜찮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기 어려워 보여요. 거기다 부익부 빈익부 현상도 심화되고 있으니. 복지 확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책임에 틀림없어요. 지금 정부[위정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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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우리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죠. 주변 물건 중에 플라스틱 제품 아닌 것이 몇 개나 될까요? 예전엔 그와 반대였는데. 저 어릴 적만 해도 쌀을 씻을 때 실제 박을 켜서 말린 바가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고학년 쯤에 실제 바가지 대신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사용했어요. 이렇게 플라스틱 제품이 널리 퍼진 건 용이한 제작과 저가라는 실용성 때문이죠. 이 때문에 플라스틱엔 빈티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달려있는데, 이는 편견이에요. 고가도 많아 하이브리드 자동차 엔진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경우엔 그 가격….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얻는 부산물인데, 그 종류가 무척 많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플라스틱의 재료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이에요.


사진은 '취병희(聚丙烯)'라고 읽어요. 중국어로는 '쮸빙시'라고 읽고요. 폴리프로필렌의 중국어 표기예요. 폴리프로필렌은 무색 무취 무독의 반투명고체물질이에요. 저 자루 속에 있는 내용물도 그럴거예요(직접 열어서 확인해 보지는 못했어요). 서울  남산 에 갔다가 찍었는데, 으슥한 골목에 방치되어 있어 찍을 때 약간 겁이 났어요(슬럼가를 다룬 중국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 듯). '취병희[쮸빙시]'는 폴리프로필렌을 의역한 거예요. 폴리프로필렌의 사전적 정의는 '프로필렌을 중합(衆合, 화학적 합성)하여 얻은 열가소성 수지'인데, 취[쮸]는 중합(衆合)이란 의미의 폴리를, 병희[빙시]는 프로필렌(탄화수소, 그 중에서도 알켄에 속하는 화합물)을 표현한 거예요.


聚와 烯 두 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聚는 衆(무리 중)의 약자와 取(취할 취)의 합자예요. 사람들이 모여사는 촌락이란 의미예요. 衆의 약자로 의미릂 표현했어요. 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사람들이 모인[取] 곳이 촌락이란 의미로요. 마을 취. 모으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 일부를 사용한 거예요. 모을(일) 취. 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聚落(취락), 聚斂(취렴, 세금을 가혹히 징수함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烯는 火(불 화)와 希(바랄 희)의 합자예요. 불꽃 색이란 의미예요. 火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希는 음을 담당해요. 색깔 희. 지금은 에틸렌계의 탄화수소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해요.



석유 부산물 추출은 우리나라가 그 기술력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 중국어 폴리프로필렌 자루를 보니 이제는 석유 부산물도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조사해 보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모름). 중국의 저가 공세에 관련 업체 무너진 곳이 한 두곳이 아닌데 이제 석유 부산물 관련 업체도.


최근 한일간 무역분쟁으로 관련 업체들이 힘들어 하고 있죠. 강대국들은 자기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든 미소뒤에 감췄던 칼을 꺼내 들죠. 중 · 일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는 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인 듯 싶어요. ·  일 무역 관련 업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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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밥은 잘 먹었는가? 구치소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하니, 집 음식 좋다는게 새삼 느껴지지 않던가? 다시는 그곳 음식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네. 자네가 구치소를 나오면서 "과거와는 단절되게 반성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했는데, 그 말처럼 산다면 다시는 그곳 음식 먹을 일이 없겠지. 부디 그 말이 면피용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를 바라네. 


자네 외삼촌 남양유업 홍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을 본 적이 있네. 외조카의 일탈에 자신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죄송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지. 외삼촌이 외조카의 일탈에 무슨 책임이 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 자신의 기업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사과문으로 밖에 볼 수 없었네. 실제도 그 사과문 말미에 조카의 일탈과 남양유업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하고 있더군. 대리점 갑질 논란이 홍회장에게 큰 충격을 주긴 주었던 모양일세. 출소 후에 외삼촌한테 죄송하다는 말은 했는지 모르겠네? 꼭, 하게나! 


재벌가 자녀들의 -- 자네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니 이에 해당되지-- 갑질 논란이나 퇴폐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자네의 마약 투여 행위도 사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네.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있지. 나는 자네같은 재벌가 자녀들의 일탈 행동은 자네들의 문제라기보다 자네 부모들의 문제라고 보네. 일탈 행위를 해도 그 잘난 배경과 돈을 이용해서 조사에서 면제시키거나 풀려나게 해주니 어찌 자네들이 기고만장하여 일탈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일세. 


앞서 자네가 다시는 구치소 밥을 먹지 않길 기원했지만 솔직히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사람에게 한 번 박힌 습(習)은 쉽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지. 하여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네.


위에 있는 사진 보았나? 바로 자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아이스크림 사업 브랜드일세. '백미당(百味堂)'이라고 읽는 건 알겠지? 뜻도 아는가? 백미는 '온갖 맛'이란 뜻이라네. 당은 '집'이란 뜻이고. '백미당'은 '온갖 맛난 것을 파는 집'이란 의미일세. 한자에서 백(百)은, 천(千)이나 만(萬)도 그렇지만, 꼭 그 숫자만큼의 수만 나타내지 않고 '많다'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네. 그래서 '백미'를 '온갖 맛'이란 뜻으로 풀이한 것이지. 창업 연도가 1964년으로 돼있는데, 저건 남양유업의 창업 연도라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이미지가 좋았으면 저 브랜드 어딘가에 그 이름을 넣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뺀 것이라네. 어떤 이는 백미당이란 아이스크림 가게가 196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는데, 말 그대로 오해일세.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괜히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사진은 서울 종로서적에서 찍은 것일세. 매장이 종로서적 내에 있더군. 매장에는 자네보다 약간 어린 학생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네. 내가 자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어린 학생들 대신 자네가 서빙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거네. 물론 자네의 정체는 노출시키지 않아야겠지. 한 1년만 매장에서 서빙을 해보게. 그러면 동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절절히 알게 될걸세. 그걸 알게 되면 자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네. 


그런데 자네가 하고 싶어도 자네의 부모나 외삼촌이 만류하지 않을까 싶군. 자네의 현재를 지금처럼 만든 이가 그들이니 그럴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자네도 성인이니 그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제안대로 한 번 해보게나. 분명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일세. 


초면인데 함부로 반말을 해서 미안허이. 그러나 연배상으로 자네의 아버지 뻘이 되기에 말을 놓은 것이니 크게 허물하지는 말게. 잘 지내시게나. 앞으로 흐뭇한 소식만 있기를 고대하겠네.


                                                                                                                             2019. 7. 24,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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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7-24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 백미당은 말씀하신것처럼 남양유업에서 나온 아이스크림 브랜드죠.남양유업의 이미지가 워낙 안좋아서 백미당이 남양유업에서 나온것을 소비자들에게 모르게하는 마케팅을 펼쳤는데 그래도 좀 역사가 있다는 것처럼 보이기위해 남양유업 창업년도인 1964년을 살면시 끼워 놓았죠.갠적으로 백미당이 남양유업에서 나온 브랜드인것을 알고 아모도 모르지만 저 혼자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답니다^^

찔레꽃 2019-07-25 09:30   좋아요 0 | URL
경의를 표합니다 ^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보면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 번은 어느 교사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며 수업에 태만하고 걸핏하면 교사에게 대드는 현실을 열거하며 도대체 왜 교육 현실이 이런지 답답하다면서 그 처방을 부탁했어요. 현 교육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스님은 뜻밖에 엉뚱한 대답을 했어요. 먼저 교사에게 대뜸 "질문한 분은 왜 교사가 됐냐?"고 물었어요. 흔한 말로 밥벌어 먹고 살기 위해 교사가 됐는지, 아니면 가르치는 일 자체가 좋아 교사가 됐는지를 물은 거예요. 교사가 후자라고 답하자, 스님은 다시 질문했어요. "그러면 현직 교사 그만두고 거의 무보수의 우리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근무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어요. 그러자 교사가 약간 머뭇거렸어요. 몇 차례 실강이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 끝에 질문한 교사는 "밥벌어 먹기 위해 교사가 됐다"고 실토했어요. 이 답을 들은 뒤 스님은 "그러면 밥값을 하라"고 주문했어요. 자는 애들이 있으면 왜 자는지 연구하여 대처하고, 수업에 태만한 애들을 어떻게 하면 흥미를 갖고 수업에 임하게 할지 고민하고, 애들이 대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공부하라고 주문했어요. 그러면서 과거 자신의 만행(萬行) 시절 학원 강사 경험담을 들려줬어요. 거대 담론에 대한 답은 일체 하지 않고 질문 당사자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 그에 대한 해결만 제시한 것이죠. 스님의 해결책은 맞는 답일까요? 어긋난 답일까요?


저도 약간 법륜 스님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교육 문제에 관한 답이 아니고, 숙취 해소에 관한 답이에요. 한 번은 동료가 간밤에 과음하여 숙취를 풀려고 '헛개즙'을 먹는다길래, 우스개로 이런 말을 했어요. "아니 술은 취할려고 먹은 건데 왜 숙취 해소하는 헛개즙을 마셔?" 동료가 뜨악한 표정을 짓길래 한 마디 더했어요. "숙취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동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뭔데?" "술을 안마시는거지!" 제 해결책은 맞는 답일까요? 어긋난 답일까요?


사진은 '한국익간보(韓國益肝寶)'라고 읽어요. 익간보는 '간을 돕는 보배'라는 뜻이에요. 금차도(金茶陶)라는 회사가 만드는 건강 식품인데, 주로 간 보호를 목적으로 한 식품이에요(이 회사의 이름 금차도는 우리 나라의 금속 공예품, 차, 도자기 등을 외국에 소개하고 판매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해요). 성분을 보니, 헛개나무 열매 · 밀크씨슬 · 마카분말이 주성분이더군요. 고가의 제품이에요. 그런데 익간보라는 식품이 제 아무리 간을 돕는 제품이라 해도 한계가 있을 거예요. 간을 돕는 제일의 방법은 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예요. 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고가의 제품을 굳이 사먹을 일이 없겠지요? 사진은 종로에서 찍었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益은 水(물 수)의 변형과 皿(그릇 명)의 합자예요. 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 물을 더한다란 의미예요. 더할 익. 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利益(이익), 損益(손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肝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干(방패 간)의 합자예요. 간이란 뜻이에요. 月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干은 음을 담당해요. 간 간. 肝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肝臟(간장), 肺肝(폐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寶는 宀(집 면)과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缶(장군 부, 항아리의 일종)와 貝(조개 패, 재물의 의미)의 합자예요. 집안  깊숙이 숨겨놓은 값나가는 재물이란 의미예요. 보배 보. 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寶物(보물), 寶貨(보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우리는 이따금 자신이 발을 디딘 땅을 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본 채 해답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교사도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스님이 해준 답은 하늘을 쳐다보기 전에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을 먼저 보라는 말이었요. 그 다음에 하늘을 봐야겠죠. 실제 스님도 해당 교사에게 답을 한 뒤 뒷부분에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약간 언급을 해요. 스님의 답이 현명한 것은 질문 해당자에게 맞춤 답을 줬다는 거예요. 하늘을 쳐다보는 답을 줬다면 아마 그 교사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거예요. 건강 회복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늘을 쳐다보기 --  건강에 관한 도서 탐독이나 좋은 약 구입 복용 -- 전에 땅을 먼저 쳐다보는, 즉 현재의 생활을 반성하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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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7-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한국익간보라고 음을 읽어놓고서, 이런 말이 있나 싶어 맞게 읽은것인가 자신이 없어지던 참이었어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때 근본을 따져 올라가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군요.

찔레꽃 2019-07-22 08:24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저 간판의 상호가 무슨 뜻인지 의아했습니다 ^ ^ 의외로 답은 간단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죠? 장마철이라 그런지 기분도 왠지...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이즈음의 최고 건강법인 듯 합니다. 홧팅! ^ ^
 


                                   



"그대가 소식을 전하고 오라!"


전국(戰國, B.C.403 -221) 초기 위(魏)나라의 관리였던 서문표(西門豹, 생몰년 미상)는 업(鄴)땅에 부임하면서 그곳의 악습인 인신공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했어요. 매년 물의 신 하백(河伯)에게 처녀를 바치는 풍습 때문에 민심이 흉흉하고 이주하는 사람도 늘어 미곡 생산량이 줄고 있었거든요. 인신공양과 관련한 관리들의 타락도 문제였어요. 돈있는 집 처녀는 뇌물을 받고 인신공양에서 면제시켰거든요. 하백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날, 서문표는 대상자로 뽑힌 처녀를 보더니 얼굴이 못생겼다며 타박을 했어요. 그리고 행사를 주관하는 늙은 무당에게 하백을 만나 좀 더 나은 처녀를 데려올 때 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하라며 사람을 시켜 그를 물 속에 처넣었어요. 얼마 뒤 서문표는 왜 이리 소식이 늦냐며 젊은 무당을 시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 오라고 시켰어요. 그 또한 물 속에 처넣은 것이지요. 이런 행태를 두 세번 더 한 뒤 이번엔 마을의 장로(長老)라는 이들을 불러 같은 말을 하고 그들 또한 물 속에 처넣었어요. 마지막으로 그간 뇌물을 받아먹던 관리들을 향해 일갈하며 그들 또한 물 속에 처넣으려하자 관리들이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찧으며 목숨을 구걸했어요. 이후 업땅에는 인신 공양 풍습이 사라졌어요. 자연스럽게 관리의 부정부패도 일소됐고, 떠났던 이들도 되돌아 왔지요. 서문표는 인신공양을 하던 그 물[水]을 대대적으로 다스려 비약적으로 미곡 생산량을 늘렸어요.


서문표의 일화는 그 한 사람만의 일화가 아닌 당시 사류 계층의 인식을 대변하는 일화예요.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마디로 신비/미신을 타파한 인문 정신의 승리이죠. 개명한 지금도 신비/미신이 횡행하는데 이천 수백년 전에 이를 타파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에요.


동아시아 문명에서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인격신은 이미 이천 수백년 전에 죽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만일 그러한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다면 기풍(氣風)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우리 근대사의 천주교 박해 사건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지만 동아시아의 인문 정신에서 보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른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무리를 처단한 것이니까요. 서문표는 일찌기 그런 실행의 전범을 남겼던 사람이죠.


사진은 보령댐 근처에 있는 서짓골 성지(聖地)의 순교자 현양비예요. 한자는 '광영위주치명(光榮爲主致命)'이라고 읽어요. 흔히 '한빛이어라, 임께 다다른 숨'이라고 의역하는데, 직역하면 '영광되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예요. 서짓골 성지는 병인박해(1866)때 희생됐던 4명의 순교자가 15년 6개월 동안 묻혔던 장소예요(현재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안치). 현양비를 보며 문득 다른 각도에서 현양비를 볼 수는 없을까 싶어 몇 마디 해봤어요.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해 죽은 이는 그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일이지만,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봤어요. 혹시 천주교를 믿는 분들은 제 언사에 불쾌감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순교자를 폄훼하는 듯한 말도 그렇지만 특히 천주님을 신비/미신의 존재처럼 본 시각에요. 순교자나 천주님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어요. 다만 한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너른 이해를!


榮과 致가 낯설어 보이네요. 자세히 살펴 볼까요?


榮은 木(나무 목)과 熒(등불 형) 약자의 합자예요. 오동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熒의 약자는 음(형→영)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오동나무는 자주 혹은 붉은 색이 감도는데 그 색이 등불 빛과 흡사하다는 의미로요. 오동나무 영. 지금은 빛나다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빛날 영. 榮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榮華(영화), 榮枯盛衰(영고성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致는 夂(뒤져올 치)와 至(이를 지)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이에요. 夂로 뜻을 표현했어요. 夂에는 뒤쳐져 오지만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늦지만 계속 나아가 목표 지점에 '이르렀다'는 뜻을 표현한 거예요. 至는 음(→치)을 담당해요. 이루다 · 다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致命傷(치명상), 致死(치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상과 신념을 달리한다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이런 각도에서 보면 비록 서문표의 행위가 인문주의의 승리이긴 하지만 상찬(賞讚)받을 일은 아니지요. 일찌기 공자는 이단은 공격하면 해로울 뿐이라고 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공경하되 멀리하는 태도를 취하라고 권했어요.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하여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설혹 그것이 혹세무민의 사상이나 신념이라 할지라도요.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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