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 영광을 같이 고생한 모든 스텝들에게 돌리겠습니다."

 

 영화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들이 흔하게 하는 감사말 중 하나죠. 겸손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일 수도 있을 거예요. 자신의 공을 애써 타인에게 돌리니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빛나는 주연을 만들기 위해 그늘속에서 일한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사실일 수도 있잖겠어요? 주목받는 이들이 자신뒤에 가려진 이들을 기억해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자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진의 한문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글이에요.

 

 석재상고 결승이치 강급후재 역이서계 (서계)지흥 (흥)자힐황 조체일체 침수번창 미륜군사 통원달유 수훈기전 비필미수(昔在上古 結繩而治 降及後載 易以書契 (書契)之興 (興)自頡皇 肇逮一體 浸遂繁昌 彌綸群事 通遠達幽 垂訓紀典 非筆靡修)

 

 아득한 옛날엔 매듭을 지어 의사를 표현했다. 후대에 이르러 서계(초기 문자)로 대체되었다. 서계는 창힐이 처음 제작했다. 처음에는  간단했고 양도 적었지만 갈수록 복잡하고 양도 많아졌다. 덕분에 많은 일들을 두루 적고 멀고 외진 곳까지도 의사를 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삶의 교훈과 중대한 사실들을 후세에 남길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려면 그것(문자)을 적는 붓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문자의 기원과 탄생 그리고 그것이 이룩한 성과를 말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문명의 핵은 문자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글의 핵심은 문자에 대한 찬양이 아니에요. 그 문자를 실어나르는 도구인 붓에 대한 찬양이에요. 문명의 핵인 문자의 공을 치켜 세운 것은 붓의 공로를 극대화하기 위한 배경일 뿐이죠. 주연도 훌륭하지만 그 주연을 있게 한 스텝들의 공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아니 어쩌면 스텝들이 있었기에 주연도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에요. 

 

 이 글은 당대(唐代) 구양순 등이 편집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예문유취(藝文類聚)필(筆)편에 나오는 거예요. 『예문유취』는 해당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연원과 그에 관련된 역대 시문들을 수록해 놓고 있는데, 이 글은 붓에 관한 시문 중 하나예요(위(魏)나라 부선(傅選)의「필명(筆銘)). 붓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시문이라 수록한 것으로 보여요. 흔히 중국의 4대 발명품을 화약, 종이, 나침판, 인쇄술이라고 하는데 이 시문의 저자가 이 말을 들으면 왜 붓을 빼놓았냐고 항의할 것 같아요.

 

 사진은 모 대학 도서관에 들렸다 찍은 거예요. 책과 문자 그리고 그것을 실어나른 필기구에 대한 의미를 사색해 보라는 의미에서 써놓은 것 같더군요(더불어 그 미래도). 저는, 위에서, 이 글을 약간 다른 각도로 보았지만 이 액자를 건 의도는 방금 말한 것이 맞을 거예요. 도서관에 잘 어울리는 액자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를 위해 한쪽에 해설표를 붙여놓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볼까요?

 

繩은 糸(실 사)와 黽(蠅의 약자, 파리 승)의 합자예요. 끈(줄)이란 의미예요. 糸로 뜻을, 黽으로 음을 나타냈어요. 끈(줄) 승. 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繩度(승도, 규칙이나 법도), 繩墨(승묵, 먹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契는 大(큰 대)와 丰刀(약속할 기)의 합자예요. 상호간에 맺은 중대한 약속이란 의미예요. 맺을(약속) 계. 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契約(계약), 契員(계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肇는 본래 肈로 표기했어요. 시작하다란 의미예요. 시작할 때는 분발해야 하기에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운다는 의미의 戈(창 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비롯할 조. 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肇國(조국, 건국), 肇春(조춘, 이른 봄. 早春과 통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繁은 말 갈귀 장식이란 의미예요. 糸(실 사)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번)을 담당해요. 지금은 주로 번거롭다(번성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번거로울(번성할) 번. 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頻繁(빈번), 繁盛(번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綸은 糸(실 사)와 侖(생각할 륜)의 합자예요. 관리들이 허리에 두르던 끈을 의미해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侖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끈을 제작할 적에는 정밀하게 사고하듯 일정한 순서를 지켜 꼬아야 한다는 의미로요. 허리끈 관. 지금은 주로 통괄하다란 의미를 담은 벼리(그물 코)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벼리 륜. 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綸音(윤음, 임금의 말), 綸命(윤명, 임금의 명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靡는 非(아닐 비)와 麻(삼 마)의 합자예요. 분산하여 흩어지다란 의미예요. 분산하여 흩어지면 본 모습과 달라지기에 非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麻는 음(마→미)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가느다란 삼실처럼 분산하여 흩어진다는 의미로요. 지금은 '없다'로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없을 미. 靡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靡寧(미령, 병이 있어 몸이 편하지 못함), 靡他(미타, 다른 것이 없음. 無他와 통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붓은 진(秦)나라의 몽염이 발명했다고 하죠. 그러나, 일반적으로, 발명했다고 보기 보다는 개량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아요. 주목받는 문명의 이기들은 대개 기존의 토대위에 가감한 것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이 의견이 타당성 있어 보여요. 한문 원문에 괄호친 것이 있는데, 글씨를 쓴 분이 빼놓고 쓴 부분이라 보충해 넣은 거예요. 괄호의 내용이 없으면 문맥이 통하지 않아 보충해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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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개정판 통감절요 인물 이야기』와 『당신을 위한 한자 자원 사전』이란 책을 냈습니다. POD 방식으로 출판했습니다. 혹 책을 주문하시면 1주일 정도 있어야 받으시게 됩니다.  POD 방식 출판은 주문을 받으면 그때 인쇄하는 출판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 도서 배송보다 시일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개정판 통감절요 인물 이야기』는 기 출판했던 책의 표지 장정을 새롭게 하여 츌판한 것이고, 『당신을 위한 한자 자원 사전』은 그간 마이페이퍼 <길에서 주운 한자> 코너에서 연재했던 내용 중 한자 자원 설명 부분만을 모아서 펴낸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감히 권합니다.

 

 

그간 책을 내면서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광고해도 요청하시는 분이 없어서 이번엔 그냥 책광고만 합니다 ㅠㅠ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유의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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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시, 옷을 벗다> 잘 보고 있는 중입니다. 후루룩 읽을 책이 아니기에 한 페이지를 여러번 읽기도 하고, 어떤 한시는 학교 다닐때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도 하고요. 나름대로 즐기며 읽는 중이랍니다. 그런데 또 새로운 책을 내셨군요. 부지런히 읽어야겠습니다. 축하드려요.

2019-12-18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9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이 돼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관아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과일의 개수를 세어서 장부를 만들고 그것이 익으면 진상하는 용도로 공급한다. 과일의 수가 줄면 즉시 징벌하므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제주 풍토기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해요(김풍기, , 감사의 마음 세 에 담아서」, 『월간 중앙(201710) 참조 인용). 인용문의 과일은 이에요. 윗글은 과거에 귤이 얼마나 희소성 높은 과일인지를, 아울러 이것을 공물로 바치기 위해 제주민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귤 공납의 시달림을 피하고자 일부러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고사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예전에 어떤 지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제주민은 자신들을 한 국가의 일원으로 보기보다는 뭍사람들과 구별되는 섬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그리고 뭍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긍정보다는 부정 인식이 강하고.” 예전에 제주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 왕국(탐라국)이었던 것과 중앙 정부의 공물 수탈 , 말 등 및 홀대(유배지로 활용) 등을 생각해보니 과히 틀리지 않은 말 같았어요. 제주 4.3항쟁에도 이런 뿌리 깊은 뭍사람에 대한 부정 인식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사진은 제주명품(濟州名品)이라고 읽어요. 말 그대로 제주의 이름난 물건이란 뜻이지요. 그리고 그 대상은, 말할 것 없이, ‘이고요. 직장 동료가 제주에서 직송해온 거라며 맛 좋다고 몇 알 나눠줬는데, 제주와 귤에 대한 아픈 일들이 떠올라, 마냥 맛있게만 먹기엔 살짝 송구한 마음이 들더군요.

  

만 자세히 살펴볼까요?

  

(의 변형, 물 수)(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물 이름이에요. 하북성 찬황현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민수로 들어가는 물이에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물이름 제. ‘건너다, 구제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제수를 건너다, 제수의 풍부한 수량이 가뭄을 극복하게 했다의 의미로요. 건널 제. 구제할 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救濟(구제), 濟度(제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는 섬, 모래톱을 의미해요. 은 강의 흐름을, 는 그 흐름 속에 둘러싸인 땅을 표현했어요. 섬 주. 모래톱 주. 의미를 확장하여 고을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해요. 고을 주.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州縣(주현, 지방), 州宰(주재, 주의 장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어렸을 때 겨울철에는 귤껍질을 말려 차로 달여 먹었어요. 요즘은 농약 때문에 왠지 꺼림칙해서 그렇게 해 먹지 못하겠어요. 희소성 과일이 보편 대량생산화되면서 생긴 단점이라고 할 거예요. 어느 한쪽이 충족되면 다른 한쪽은 기울기 마련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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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강동의 張翰(장한) 생애를 / 가을 바람에 홀연 고향 그리워 강동으로 돌아갔지 / 생전의 한잔 술이 좋지 / 천년 뒤의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이백의 「行路難(행로난)」일부분이에요. 가을 바람이 불자 홀연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 생각이 나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한 장한의 결행을 찬미하고 있어요. 장한은 왜 힘들게 들어섰을 벼슬길을 헌신처럼 내버리고 귀향했을까요? 고향에서 먹던 순채국과 농어회가, 벼슬을 그만 둘 정도로, 정말 그토록 간절했을까요? 그랬을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장한의 마음을 건드린 자극(핑계))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미 그의 마음 속엔 귀향의 결심이 무르익은 상태였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우발적으로 보이는 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코 우발적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내막을 모르기에 우발적으로 보이는 것 뿐이죠.

 

사진은 대구 침산 공원에 있는 徐居正(서거정, 1420-1488) 「砧山晩照(침산만조)」시비예요.

 

水自西流山盡頭  수자서류산진두  물은 서쪽에서 흘러와 산머리에 이르고

砧巒蒼翠屬淸秋  침만창취속청추  침산 푸른 숲에는 가을 빛이 어리었네

晩風何處舂聲急  만풍하처용성급  해질녘 바람에 묻어오는 촉급한 방아소리

一任斜陽搗客愁  일임사양도객수  석양의 객수를 아프게 두드리네

 

나그네 설움을 토로하고 있어요. 멋진 풍경과 대조를 이루니 나그네 설움이 더더욱 핍진해요. 재미있는 것은 나그네 설움을 돋우는 자극이 '방아소리'라는 거예요. 이 방아소리는 저 장한의 순채국과 농어회 같은 자극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새삼스레 자극하기에 애처롭게 들리는 걸 거예요. 시인에게 방아소리는 단순한 방아소리가 아닌 남다른 느낌을 전하는 그 무언가일 거예요. 그렇기에 남다르게 그의 고단한 객수를 자극하는 것이죠.

 

남다른 느낌을 주는 방아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어릴 적의 추억일 수도 있겠고, 집안의 그리운 풍경일 수도 있겠고, 다소 저급하지만 아내와의 房事(방사)― 방아는 흔히 남녀의 교합을 은유하죠―일수도 있을 거예요. 여하간 그에게 방아소리는 남다른 그 무엇이고 그 남다른 소리로 인하여 자신의 나그네 처지가 새삼스럽게 인식됐을 거예요. 그리고 이는 귀향의 결의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본래 이 시는 「達城十景(달성십경)」이라는 서거정의 연작시 중 한 수예요. 몇 경 몇 경을 읊는 연작시는 대개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는데, 이 시는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객수의 고단함을 일깨우는 것이 주가 돼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워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砧은 石(돌 석)과 占(점칠 점)의 합자예요. 다듬잇돌이란 의미예요. 石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占을 음을 담당해요. 다듬잇돌 침. 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砧石(침석, 다듬잇돌), 砧杵(침저, 다듬잇 방망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巒은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란 의미예요. 山(뫼 산)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해요. 뫼 만. 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巒峰(만봉, 산봉우리), 巒岡(만강, 언덕 혹은 작은 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舂은 (拱의 옛 글자, 두 손 맞잡을 공)과 臼(절구 구)의 합자예요. 두 손으로 절구 공이를 들고 절구통에 임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곡식을 찧는다는 의미예요. 찧을 용. 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舂碓(용대, 절구통), 舂炊(용취, 절구질과 밥 짓는 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搗는 扌(手의 변형, 손 수)와 島(섬 도)의 합자예요. 공이를 들고 찧거나 두드린다는 의미예요.  扌로 뜻을, 島로 음을 표현했어요. 찧을(두드릴) 도. 擣와 통용해요. 搗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搗衣(도의, 다듬이질을 함), 搗精(도정, 현미를 찧거나 쓿어서 등겨를 내어 희고 깨끗하게 만듦)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愁 는 秋(가을 추)와 心(마음 심)의 합자예요. 우울한 마음이란 의미예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秋는 음(추→수)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가을이 되면 만물이 쇠락하여 풍경을 접할 때마다 우울한 마음이 든다는 의미로요, 근심 수. 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愁心(수심), 憂愁(우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위에서 시를 혹평했지만 이 시를 침산의 수려한 풍광과 특히 이곳에서 맞이하는 저녁 풍경이 운치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한 시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저는 약간 삐딱하게 봤지만요). 서거정의 본관은 '달성'이에요. 자신의 뿌리 풍경을 읊는 소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읊는 소회와 분명 다를 거예요. 위 시를 포함한 '달성십경'시는 서거정이 자신의 본향에 바친 흠모의 헌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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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이 뭔지 아나?”

   

글쎄요?”

   

그럼, 부유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뭔지 아나?”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식사를 하는데, 선배가 뜬금없이 물었어요. 선배는 수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어요. 이후 직장을 나와 조그만 개인 사업을 하며 지내는데, 침술과 민간 치료에 관심이 많아요. 질문도 그런 관심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물은 듯해요. 대답을 못하니, 선배가 답을 알려 줬어요. “가난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위암이고, 부유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폐암일세.”

   

위암 발병률이 식습관 맵고 짠 음식을 많이 먹고 또 급하게 먹는 과 관련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죠. 그런데 선배의 말은 그것이 경제적 지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거였어요.

   

선배의 말을 되새겨보니 어렵지 않게 수긍이 가더군요.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마음이 조급하고 마음이 조급하니 음식 맛을 음미할 여유가 없고 음식 맛을 음미할 여유가 없으니 음식을 빠르게 먹게 되고 그때의 음식은 아무래도 심심한 것보다는 자극적인 음식이 주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은 거죠.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마음이 없으면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대학의 말은 빈곤 계층의 식습관을 대변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을 듯싶어요.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조급하고, 빈곤해도 조급하지 않은 이들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는 일반적인 경향을 언급했어요.)

   

사진은 진미(眞味)’라고 읽어요. ‘참된 맛이란 뜻이죠. 그냥 이라 해도 될 것을 이란 말을 덧붙인 것은 거짓 맛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테고, 자신들이 만든 음식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걸 거예요. 보태어 이 음식물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급히 먹지 말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고 보여요. 급하게 먹는 음식에서 맛을 음미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천천히 먹어 참맛을 알 때 진정으로 그 음식을 먹는 것이고, 이는 병을 예방하는 지름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오징어 채 봉투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한자의 뜻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의 변형, 화할 화)(눈 목)과 ㄴ(의 옛 글자, 숨을 은)(기초의 의미로 쓴 글자)의 합자예요. 눈에 보이는 기본적인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숨어버린 사람이란 의미예요. 신선이란 의미예요. 신선을 진인(眞人)이라고도 하지요, 주로 참되다란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 된 의미예요. 육신의 거짓된 모습을 벗어 버려야 참된 사람[신선, 진인]이 된다는 의미로요. 참 진.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眞珠(진주), 眞善美(진선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입 구)(아닐 미)의 합자예요. 입을 통해 느끼는 맛이란 의미예요. 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는 음을 담당해요. 맛 미.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調味(조미), 吟味(음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경제적 위치에 따라 식습관도 달라지고 이에 따라 특정 질병의 발병률도 관계가 깊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일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위한 적정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더불어 일하는 분들도 자발적으로 '천천히 식사하기'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고요. 적정 식사 시간이 확보된다해도 '천천히 식사하기' 습관이 돼있지 않으면 '후딱' 먹어치우고 담배 피우기나 커피 마시기 혹은 밀린 일 하기 등으로 시간을 흘려(?) 보낼 것 같거든요. 이렇게 되면 식사를 위한 적정 시간 확보가 무의미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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