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일부이다. 새로운 결실을 위한 아름다운 떠남(죽음)을 노래한 시이다. 봄철 흔하게 보는 꽃이 영산홍과 벚꽃이다. 둘 다 화사함으로 겨우내 쌓였던 칙칙함을 덜어내는 고마운 꽃이다. 그런데 질 때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산홍이 끝까지 살고자 애쓰는 식물인간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벚꽃은 과감히 생명을 던지는 투사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당사자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무심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면 질 때의 모습은 확실히 벚꽃이 아름답다. 이형기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느 꽃을 보고 시를 구상했는지 모르지만, 봄날의 흔한 꽃을 대상으로 시를 구상했다면 벚꽃을 보고 시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봄날의 낙화는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있기에 지는 것이 그다지 슬프지 않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없이 지는 것은 어떨까? 참으로 서글프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낙화보다 낙엽에 더 서글픔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형기 시인의 작품에 낙엽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사진의 내용은 가을날 낙엽 지는 모습을 묘파(描破)한 시구이다.

 

 

湛露灑林庭 담로쇄림정    맑은 이슬 숲속 정원에 내리니

密葉謝榮條 밀엽사영조    화사한 가지의 조밀한 잎들 소리 없이 지네

 

 

동진(東晉)의 현언시인(玄言詩人) 손작(孫綽, 314~371)추일(秋日)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여름날 짙푸른 녹음을 뽐냈던 잎들이 가벼울법한 이슬방울에 덧없이 지는 모습을 그렸다. 봄 한 철 화사함을 발했던 벚꽃이 가벼울법한 봄바람에 덧없이 지는 모습과 짝을 이룰만한 구절이다. 그러나 둘 다 지는 모습은 같지만, 벚꽃은 뒤이을 미래가 있기에 서글프지 않으나 저 잎은 뒤이을 미래가 없기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저 구절 어디에서도 그런 서글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더없이 명징(明澄)한 가을 아침의 모습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이는 시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세상사의 이치를 담는 현언시를 지었던 손작이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아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물 수)(심할 심)의 합자이다. 깊은[] []에 빠지다란 의미이다. 빠질 담.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맑은 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湛樂(담락,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김), 湛露(담로) 등을 들 수 있겠다.

 

(물 수)(고울 려)의 합자이다. 에는 사슴이 떼 지어 간다는 의미가 있다. 사슴이 떼 지어 가듯 연속적으로 물[]을 뿌린다는 의미이다. 뿌릴 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灑落(쇄락, 기분이나 몸이 개운함), 灑掃(쇄소, 물을 뿌리고 비로 씀) 등을 들 수 있겠다.

 

(뫼 산)(편안할 밀)의 합자이다. 산속의 분지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고, 분지는 거주하기에 편안하기에 로 뜻을 보충했다. 은 음도 담당한다. 분지 밀. 빽빽하다, 숨기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빽빽할 밀. 숨길 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秘密(비밀), 密輸(밀수) 등을 들 수 있겠다.

 

(말씀 언)(쏠 사)의 합자이다.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다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는 음을 담당하면서도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활을 쏘면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그같이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사례할 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謝絶(사절), 感謝(감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한 음식점에서 찍었는데, 음식점과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 모르겠다. 주인의 가치관을 나타낸 내용일지도. 아니면, 손님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일지도. “손님, 음식을 드시고 가실 때는 앉으셨던 자리 깔끔하게 마무리하시고 가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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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밖에 안남았네."


"반이나 남았어?"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물컵에 물이 절반 남았을 때 누구는 아쉬움을 표하는 반면 누구는 여유를 표한다.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동일 사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작품이 있다. 북송시대 말기 장택단이란 화가가 당시 수도 변경의 청명날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대단한 장폭(長幅)의 그림으로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중국 풍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송대의 인물풍정과 사회적 번영을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렸다(인용문 출처: NAVER 지식백과). 당시 황제였던 휘종은 이 그림을 혹호(酷好)해 직접 「청명상하도」란 이름을 붙였다. 휘종은 글씨와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의 지우(知遇)를 입었으니 뛰어난 작품이었음에 틀림없다.「청명상하도」는 후일 하나의 그림 소재가 되어 원본을 모사한 그림들이 원 · 명 · 청을 거쳐 많이 제작되었다.


사진은 이 모본들 중 하나인 「원본청명상하도(院本淸明上河圖)」에 쓴 화제(畵題)이다. 글은 건륭제가 지었고, 글씨는 양시정이 썼다.



蜀錦裝全璧 촉금장전벽   질 좋은 비단에 티없는 옥으로 장식 더하고

吳工聚碎金 오공취쇄금   뛰어난 화공들이 훌륭한 솜씨로 장려하게 그렸네

謳歌萬井富 구가만정부   집집마다 부유함을 구가하고

城闕九重深 성궐구중심   황궁은 구중심처에 있어라

盛事誠觀止 성사성관지   풍요의 성세 예서 다 볼 수 있고

遺踪借探尋 유종차탐심   그윽한 자취 예서 다 찾을 수 있어라

當時誇豫大 당시과예대   당시엔 지극히 기쁘고 자랑할만 했겠지만

此日歎徽欽 차일탄휘흠   이날엔 휘종과 흠종을 안타까이 여기노라


乾隆壬戌春三月御題 건륭임술춘삼월어제   건륭 임술(1742) 춘삼월에 황제께서 지으시고

臣梁詩正敬書 신양시정경서   신 양시정 삼가 쓰다


繪院璚瑤 회원경요  화원의 아름다운 작품



「원본청명상하도」는 청 황실 화원 소속 작가였던 진매, 손호, 금곤, 대홍, 정지도 등이 건륭제의 요청을 받아 합작으로 그린 것이다. 이 화제는 납품받은 작품을 대하고 쓴 감상문이다. 1 · 2구는 수고한 화가들에 대해 상찬의 말을 한 것이고, 3 · 4구는 그림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며, 5 · 6구는 이 그림이 갖는 가치를 언급한 것이다. 7 · 8구는 이 그림을 대하는 건륭제의 소회를 언급한 것이다. 이 화제의 핵심은 마지막 7 · 8구에 있다.


「청명상하도」가 널리 유행한 것은 훌륭한 그림에 더해 이 그림이 보여주는 성세의 풍요로움 때문이다. 가난한 날의 불행을 그린 것보다 풍요로운 날의 행복을 그린 것이 감상하기에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건륭제가 이 그림의 모본을 요청한것도 이런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보태어 이런 성세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 또한 있었을 것이다(실제 그는 이 열망을 달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성세의 그림을 혹호한 휘종과 흠종(휘종의 아들)의 최후는 더없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성세를 유지하지 못했음은 물론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여기 안타까움에는 그들에 대한 책망과 더불어 자신은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을 대할 때 저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한다. 건륭제는 황제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제를 썼다고 할 수있다.「청명상하도」의 화제를 건륭제의 신하가 썼다면 어땠을까? 필경 다른 내용으로 썼을 것이다. 상전벽해한 오늘 날 저 그림을 보는 이들 또한 다른 내용의 화제를 쓸 것이 틀림없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裝은 衣(옷 의)와 壯(씩씩할 장)의 합자이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민다는 의미이다. 衣로 뜻을 표현했다. 壯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미면 씩씩한 모습처럼 한층 더 성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꾸밀 장. 裝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裝飾(장식), 治裝(치장) 등을 들 수 있겠다.


聚는 衆(무리 중)의 약자와 取(취할 취)의 합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이란 의미이다. 衆의 약자로 의미를 표현했다. 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촌락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마을 취. 모으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 모을 취. 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聚落(취락), 聚斂(취렴) 등을 들 수 있겠다.


碎는 石(돌 석)과 卒(졸개 졸)의 합자이다. 부수다, 부서지다란 의미이다. 石으로 뜻을 표현했다. 卒은 음(졸→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卒은 본래 비루한 사람이란 의미인데 깨지면 그같이 비루하게 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부술 쇄. 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粉碎(분쇄), 碎石(쇄석) 등을 들 수 있겠다.


謳는 言(말씀 언)과 區(지경 구)의 합자이다.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言으로 뜻을 표현했다. 區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區는 본래 일정한 곳에 여러 물건을 모아놓는다는 의미인데 그같이 여러사람이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노래할 구. 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謳歌(구가), 謳詠(구영) 등을 들 수 있겠다.


尋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寸(마디 촌)의 합자이다. 손으로 거리를 측정하듯 정교한 근거와 말솜씨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다란 의미이다.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尋訪(심방), 尋常(심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豫는 象(코끼리 상)과 予(나 여)의 합자이다. 몸집이 큰 코끼리라는 뜻이다. 象으로 뜻을 표현했다. 予는 음(여→예)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予는 자기 중심적이란 의미인데 豫는 자기 중심적이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코끼리 예. 기뻐하다, 미리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글자를 차용해 쓴 것이다. 기뻐할 예. 미리 예. 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猶豫(유예, 1차 의미는 원숭이와 코끼리란 뜻이다. 2차 의미는 머뭇거린다, 망설인다란 뜻인데 두 동물이 의심이 많아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특징이 있는데서 비롯된 의미이다), 豫感(예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즐겨가는 추어탕 집에서 찍은 것이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들렸다 사온 기념품인 듯 했다. 미니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든 것을 펼쳐 벽면에 붙여 놓았는데 상당히 길었다. 미니 기념품도 이런데 원본은…. 실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대륙인들 크게 만드는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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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용산에 있는 헌 책방「뿌리」에 간 적이 있다. 헌 책방이 으레 그렇듯 미어지게 채우는 바람에 끝내 터져버려 추스리기 어려워진 자루마냥 책방 안과 밖은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책방이라기 보다는 책 숲 혹은 책 무덤같은 공간이었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입구 초입에 있으면서 오는 손님들에게 봉지 커피를 타서 대접했다. 잡지에 소개된 헌 책방 순례에 나온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그날 이곳을 찾은 것은 모처럼만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볼 일만 보고 그냥 내려 가기엔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드는데다 잡지에서 소개된 이곳의 흥미로운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고가의 희귀본을 저렴한 가격에 구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 '혹시 내게도 그런 행운이…' 하는 흑심이 떠올랐던 것이다. 헌 책방이 아니래도 이상하게 오래된 가게에 가면 항상 이런 흑심이 피어 오른다. 주인이 알지 못하는 뭔가 값진 것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 미로같은 책방 안을 기웃거리는데 관심가는 고서들이 눈에 띄었지만 가격을 물으니 만만치 않았다. 하긴, 주인의 눈을 속일 저렴한 희귀본이 어디 그리 손쉽게 얻어지겠는가. 눈호강만 실컷 하다가 마지막에 그냥 나오기 미안하여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에버그린 문고판 플라톤의『국가』를 샀다. 500원을 줬던 것 같다. 


사진의 한자는 '노포(老鋪)'라고 읽는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 된 가게'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한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古)'보다 '노(老)'라는 말을 쓴 것에서 오래된 가게 그 자체보다 그 가게를 운영하는 장인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강해 가업 계승의 전통이 강한 일본의 문화를 잘 나타낸 용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말로 대체할 만한 용어를 찾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뚜렷한 대체어를 찾지 못한 듯하다. 사진에 나온 방송 매체가 '노포'라는 말을 사용하는 자체가 이를 말해준다. 


사진의 노포는 중국집인데 건물도 그렇고 실내 장식도 그렇고 모든 것이 오래 된 티가 난다. 무엇보다 주방장 되는 분이 그렇다. 외관으로 보면 거의 칠십 가까이 돼보인다. 새것이라곤 손님 좌석을 관리하는 전자 계산대 뿐이다. 이곳은 늘 손님이 북적인다. 점심 시간 때는 밖에서 줄을 서 대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현란한 먹거리와 산뜻한 장식의 가게들도 많으련만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방송을 탄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방송을 타기 이전에도 소문이 났던 곳이니. 6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한 이유일수도 있겠다 싶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싼 맛에 먹는 비지떡은 한 두끼에 그치지 자주 오래도록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은 바닷가의 둥근 조약돌과 같다. 예리하고 기괴한 맛은 없지만 완숙(完熟)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헌 책방에 들러 '혹시 내게도…'하는 흑심이 생기는 것은 이런 편안함에 기댄데서 나온 엉뚱한 바램이다. 경직된 상태라면 그런 바램은 추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교보문고 같은데서 주인의 눈을 속인 희귀본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노포 중국집을 찾는 이들의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고목같은 주방장의 손에서 빚어 나오는 한그릇 짬뽕을 대하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배부르게 해줄 것 같은 기대가 들기에 찾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현란한 먹거리와 산뜻한 장식의 가게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기대이다. 바쁜 점심 시간에 굳이 줄을 서가면서까지 이 노포 중국집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몸의 곡기보다 마음의 곡기가 더 간절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老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과, 人(사람 인)과 毛(털 모)와 匕(化의 약자, 화할 화)의 합자로 머리털이 흑색에서 백색으로 변화한 사람 즉 노인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이다. 늙을 로. 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老齡(노령), 老化(노화) 등을 들 수 있겠다.


鋪는 金(쇠 금)과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화려한 문고리라는 뜻이다. 金으로 뜻을 표현했다.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남자의 미칭처럼 보기 좋은 장식의 문고리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문고리 포. 가게라는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가게 포. 鋪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金鋪(금포, 황금 문고리), 店鋪(점포) 등을 들 수 있겠다.


일본과 달리 가업 계승의 장인 문화가 희박한 우리나라에서는 노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오래된 것= 무소용'의 가치관까지 더해져 그나마 있던 노포조차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 찾던 헌책방은 한군데도 남아 있는 곳이 없다. 음식점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아가 다른 가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된 가게들의 퇴조는 당연히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 정작 더 큰 아쉬움은 가게의 퇴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시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무소용'의 가치관이 그것. 이런 가치관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포를 중시하는 장인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왠지 노인이 홀대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거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노인을 공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건 일본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노인 공대 문화이다. 이것을 되살릴 수는 없는 걸까? 조약돌도 기암괴석 못지 않은 가치와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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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공룡 여당 탄생.

 

과반수를 넘는(더불어 시민당 포함) 180석으로 더불어 민주당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선거를 치른 더불어 민주당이나 투표를 한 국민들도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에 놀랐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 유시민의 발언― 범진보 180석 전망―을 왜곡하여 읍소 전략을 편 미통당의 흑색 선전만 없었다면 대구 · 경북도 이 놀라운 투표 결과에 동참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놀라운 투표 결과에 대한 여러 분석들이 나오는데 대세를 이루는 평은 세가지이다. 하나. 전쟁(현 시국) 중에는 장수(집권당)를 바꾸지 않는다. 둘. 세계가 감탄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셋. 미통당으로 대변되는 구태 정치의 청산 열망. 

 

공룡은 빙하기를 맞으면서 전멸했다. 거대 몸집을 유지할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 더불어 민주당이 커진 몸집에만 만족한다면 자칫 공룡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정청래 당선자는 이런 우려를 한 방송 매체에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180석이라는 큰 기대를 안겨준 만큼, 그 기대를 저버리면 국민은 180도로 돌아설 것입니다." 한 정치학자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에 각기 '겸손'과 '쇄신'을 주문했는데 시의적절한 충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더불어 민주당이 '겸손' 이전에 가져야 할 더 중한 덕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한 덕목을 갖지 못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여러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입지용왕능도만리(立志勇往能到萬里)'라고 읽는다. 뜻을 세워 용감하게 나아가면 능히 만리에 이를 수 있다, 란 뜻이다. 여기 '만리'는 원대한 목표를 상징하는 말일 터이다. 이 문구에서 핵심은 '용'이다. '용'이란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 뜻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


그렇다면 용기있게 나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말한다. "스스로 반성하여 거리낄 것이 없다면 비록 내 앞에 수천 수만의 사람이 있어 나를 위협한다 해도 그곳을 하등의 두려움없이 지나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맹자의 말로 사용하고 나도 그렇게 사용했지만, 사실 이 말은 맹자가 인용한 증자의 말이다.『맹자』에 등장하다보니 맹자가 한 말로 굳어진 듯 싶다.) 여기 "하등의 두려움 없이"란 바로 용기(있는 자세)를 가리킨다. 맹자는 용기(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선 이른바 자신을 이기는 극기(克己)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내면에 들끓는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을 이기는 극기가 없는데 어떻게 용기가 생기겠는가! 자신을 이겨야 자기 확신이 생기고, 자기 확신이 생겨야 용기가 샘솟지 않겠는가! 이런 극기와 자기 확신이 없는 용기도 있겠지만 그건 만용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조용하면서도 이성적인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겸손'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갖춰야 할 것은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한 '용기'이고, 그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맹자가 말한 철저한 자기 성찰의 극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 앞에는 수천 수만의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자기 성찰의 극기 노력을 멈춰  '용기'를  잃는 순간 그들은 가뭇없이 빙하기의 공룡처럼 전멸할 것이다. 부디, 용기를 갖고 겸손한 자세로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를!


사진은 사전 투표 장소에서 찍었는데, 우연하게도 더불어 민주당에 바라는 마음이 실린 듯한 문구라 생각되어 견강부회해 사용해 보았다.

 

낯선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勇은 力(힘 력)과 甬(솟을 용)의 합자이다. 甬은 초목이 무성하다란 의미이다. 무성한 초목처럼 기세가 높고 세다란 의미이다. 날랠(용감할) 용. 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勇士(용사), 勇猛(용맹) 등을 들 수 있겠다.

 

能은 곰을 그린 것이다. 厶는 머리, 月을 배, 匕 두 개는 다리를 그린 것이다. 지금은 본뜻에서 연역된 '능하다'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본래 뜻이었던 곰은 熊(곰 웅)으로 표기한다. 능할 능. 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能力(능력), 有能(유능) 등을 들 수 있겠다.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이다. 칼같이 정확하고 빠르게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이를 도.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도착(도착), 도달(도달)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누님들은 전부 미통당 후보들을 찍으셨다. 코로나19 대응 초기 정부가 중국 입국자들을 막지 않아 코로나19가 창궐했고, 이인영(더불어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우리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누님들은 이와 관련된 동영상도 내게 보내 주셨다. 가짜 뉴스들인데, 누님들이 마음 상할까 봐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짐작컨대, 이상한 쪽으로 투표 결과를 왜곡하여 생각하실 것 같다. 틀림없이 또 가짜 뉴스를 접하실테니 말이다. 접하는 매체를 좀 바꾸셨으면 좋겠는데, 이 또한 마음 상하실까봐 섣불리 말씀드리기 어렵다. 인식을 왜곡시켜 현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짜 뉴스, 코로나19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악성 바이러스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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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사람 마음 알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속담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표현한 시나 소설은 어떨까? 역시 그 진의를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은 작품의 진의 파악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천지에 무서리 가득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풍(江楓)의 어화(漁火)만이 가물가물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한 밤의 종소리 객선(客船)에 내리다

 

천고의 절창으로 평가받는 장계(張繼, 미상-779)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고단한 객수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홍운탁월(烘雲托月, 주변의 구름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달을 표현하는 기법)의 풍경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렸다. 달마저 자취를 감춘 칠흑같은 밤, 까마귀 소리가 스산함을 더하는데 여기에 무서리까지 내렸다. 객수(客愁)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능히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둘째 구의 강풍어화(江楓漁火)도 마찬가지. 환한 불빛이 아니고 칠흑같은 밤에 어슴푸레 비추는 빛이니, 이 또한 객수의 고단함을 말없이 절절히 드러낸다. 셋째구의 한산사(寒山寺)는 명칭 그 자체로 객수의 서늘함을 전한다. 마지막 구, 객선(客船)에 들리는 한 밤중의 종소리 또한 매한가지이다. 신새벽을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아닌 한 밤중의 둔탁한 종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켜켜이 쌓아온 객수의 고단함을 더할바 없는 무게로 또다시 짓누르는 무거운 소리인 것. 객수의 고단함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십분 공감하게 된다. 서경을 통해 서정을 표현한 절창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이렇게 보면 어떨까?

 

첫구는 시인의 암울한 현실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든 것이 폐색(閉塞)된 시련의 연속 상황인 것. 달 진 깜깜한 밤, 까마귀 울음 소리, 천지에 편만한 무서리는 그 상징체이다. 둘째구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발견하는 미미한 희망을 그린 것이다. 칠흑같은 밤을 밝히는 어화(漁火)는 비록 미미할지언정 암울한 상황을 뚫고자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셋째구는 한산사 이름 그 자체가 시인이 처한 서늘한 상황을 상징한다. 넷째구는, 둘째구와 마찬가지로, 엄혹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시인의 희망을 그린 것이다. 고요한 공간에 파열을 내는 종소리로 현실 타개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이 시는 엄혹한 현실과 그 현실을 뚫고자 분투하는 시인의 마음을 그린 시이다.

 

앞 해석과 정 반대의 해석이다. 앞 해석이 절망에 방점을 찍은 해석이라면, 뒤 해석은 희망에 방점을 찍은 해석이기 때문. 당연하지만, 정답은 없다. 사람 마음 알기 어려워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듯, 문학 작품의 해석도 매한가지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된 문학작품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사진은 인터넷에서 취재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사진을 올린 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시(詩)의 옆에 있는 내용은 시비를 건립하게 된 사연을 적은 것이다.

 

寒山寺舊有文 待詔所書 唐 張繼 楓橋夜泊詩 歲久漫漶 光緖丙午 筱石中丞 於寺中新葺數楹 屬余補書刻石 兪樾(​한산사구유문 대조소서 당 장계 풍교야박시 세구만환 광서병오 소석중승 어사중신즙수영 촉여보서각석 유월) : 한산사에 전부터 비문이 있었는데, 임금의 조서를 받아 쓴 것으로, 당 나라 장계의 「풍교야박」 시이다. 세월이 오래되어 닳거나 희미해져 광서 병오년(1906)에 소석중승(篠石中丞)이 절 가운데에 새로이 몇개의 기둥을 수선하고  나에게 보서(補書)하여 돌에 새기라 부탁하였다. 유월(1821 ~ 1906, 청대의 문학가).

 

낯선 자를 서너 자 살펴보자.

 

啼는 口(입 구)와 帝(임금 제)의 합자이다. 울다라는 뜻이다. 口로 뜻을 표현했다. 帝는 음을 담당한다. 울 제. 啼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啼聲(제성, 울음 소리), 啼血(제혈, 피를 토하며 욺) 등을 들 수 있겠다.

 

對는 丵(떨기풀 착)과 寸(마디 촌)과 土(흙 토)의 합자이다. 여러 질문에 대하여, 여러 내용[丵]을 일정한 근거[土]를 가지고 통일시켜 원칙[寸]에 맞게 그 질문들에 답한다는 의미이다. 대답할(대할) 대. 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對答(대답), 相對(상대) 등을 들 수 있겠다.

 

蘇는 艹(풀 초)와 穌(깨어날 소)의 합자이다. 기운을 유통시키고 피를 정화시켜 사람 몸을 일깨우는 풀이란 의미이다. 소엽이란 한약재를 가리킨다. 소엽 소. 깨어나다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깨어날 소. 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蘇生(소생), 蘇葉(소엽) 등을 들 수 있겠다.

 

船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 따라 내려갈 연)의 합자이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가 아닌, 목재를 사용하여 인공으로 만든 배라는 뜻이다.  舟로 뜻을 표현했다.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물을 따라 띄우는 것이 배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船舶(선박), 船長(선장)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 시에서, 전통적으로, 이치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서리는 땅에 내리는데 왜 하늘[天]에 내린 것으로 썼냐는 것이 그 하나이고, 절에서는 한밤 중에 종을 치지 않는데 왜 야밤에 종을 친 것으로 썼냐는 것이 그 하나이다. 시인을 위한 변명은 이렇다.  하늘 속에 이미 땅이 포함된 것이니 서리가 하늘에 내렸다해도 무리가 없고, 한산사에서는 다른 절과 달리 한밤 중에 종을 친다!  그런데, 이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나 시인을 위한 변명이나 모두 부질없는 문답이다. 문학은 과학과 다르다. 사실을 넘어선 것이, 아니 사실을 넘어서야 문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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