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만든 병풍이었다. 아버지는 남들에게 액자나 족자 병풍 글씨 등을 많이 써주셨는데 정작 집에는 번듯한 액자나 족자 병풍이 하나도 없었다. 집 치장에 돈 들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특별한 취향 때문이었다. 끈질긴 어머니의 간청으로 병풍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병풍의 글씨가 희한하기 그지 없었다. 메마르고 비틀린 것이 꼭 시들어가는 나뭇가지를 연상케했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뭐래요?"


어머니가 물으셨다. 무슨 내용이냐는 질문에 힘들게 만든 병풍에 왜 이렇게 이상한 글씨를 썼냐는 힐문도 섞인 것 같았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여. 이 병풍이 집에 있으면 재액이 없어!"


어머니는 흡족한 대답을 듣지 못하신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재액을 막는 병풍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병풍이 어디 있으랴. 괴벽한 글씨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 병풍이 우리 집안의 재액을 물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을 조금 따뜻하게 보내는데 일조를 한 건 확실하다. 잘적에 방문 앞에 이 병풍을 둘러 웃풍을 막았기 때문. 


사진은 아버지께서 임모하셨던「척주동해비」이다. 무슨 내용이길래 재앙을 막아준다는 것일까?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취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

영해망양 백천조종 기대무궁 동북사해 무조무석 호위대택


큰 바다 끝없이 넓어 온갖 냇물 모여드니 그 큼이 끝이 없도다. 동북쪽은 사해(沙海)여서 밀물 썰물 없으므로 대택(大澤)이라 이름하였네.


積水稽天 渤遹汪濊 海動有曀 明明暘谷 太陽之門 羲伯司賓

적수계천 발휼왕예 해동유애 명명양곡 태양지문 희백사빈


바닷물 하늘에 닿아 출렁댐 넓고도 아득하니 바닷물 일렁일 때마다 구름이 자욱하네. 밝고 밝은 양곡(暘谷)으로 태양의 문이라서 희백(羲伯)이 공손히 해를 맞이하네.


析木之次 牝牛之宮 日本無東 鮫人之珍 涵海百産 汗汗漫漫

석목지차 빈우지궁 일본무동 교인지진 함해백산 한한만만


석목(析木)의 위차(位次)요 빈우(牝牛)의 궁()으로 해가 본시 돋는 동쪽의 끝이라네. 교인(鮫人)의 보배와 바다에 잠긴 온갖 산물(産物)은 많기도 많아라.


奇物譎詭 宛宛之祥 興德而章 蚌之胎珠 與月盛衰 旁氣昇霏

기물휼궤 완완지상 흥덕이장 방지태주 여월성쇠 방기승비


기이한 만물이 변화하여 너울거리는 상서로움이 덕()을 일으켜 보여준다네. 조개 속에 든 진주는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기운을 토하고 김을 올리네.


天吳九首 怪夔一股 回且雨 出日朝暾 轇軋炫慌 紫赤滄滄

천오구수 괴기일고 표회차우 출일조돈 교알현황 자적창창


머리 아홉인 괴물 천오(天吳)와 외발 달린 짐승 기()는 태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네. 아침에 돋는 햇살 찬란하고 눈부시니 자주 빛 붉은 빛이 가득 넘치네.


三五月盈 水竟圓靈 列宿韜光 扶桑砂華 黑齒摩羅 撮髻莆家

삼오월영 수경원령 열수도광 부상사화  흑치마라 촬계보가


보름날 둥실 뜬 달 하늘의 수경이 되니 뭇별이 광채를 감추네. 부상(扶桑)과 사화(砂華) 흑치(黑齒)와 마라(麻羅) 머리 맨 보가족(家族)


蜑蠻之蠔 爪蛙之猴 佛齊之牛 海外雜種 絶黨殊俗 同囿咸育

연만지호 조와지후 불제지우 해외잡종 절당수속 동유함육


연만(蜑蠻)의 굴과 조개 조와(爪蛙)의 원숭이 불제(佛齊)의 소들 바다 밖 잡종으로 무리도 다르고 풍속도 다른데 한곳에서 함께 자라네.


古聖遠德 百蠻衆譯 無遠不服 煌哉凞哉 大治廣博 遺楓邈哉

고성원덕 백만중역 무원불복 황제희재 대치광박 유풍막재


옛 성왕의 덕화가 멀리 미치어 온갖 오랑캐들이 중역(重譯)으로 왔으나 멀다고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아아, 크고도 빛나도다. 그 다스림 넓고 크나니 그 치적(治績) 영원히 빛나리.


(번역 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척주동해비」내용은 글씨만큼이나 낯선 말과 고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문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동해, 그대 위대한 바다여!" 동해에 대한 찬가이자 진혼문(鎭魂文)이라 할 수 있다.


척주동해비의 저자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삼척(척주)부사로 부임했을 때 조수의 피해가 막심했다. 심한 때는 부사가 머무는 처소 가까이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이때 허목이 처한 조처중의 하나가 이척주동해비를 세운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혼의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 조수 피해가 사라지고 간척지까지 일구었다고 한다. 이후 이 비는 일명 '퇴조비(退潮碑)'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런 신비한 일화를 갖고 있다보니 이 비문을 병풍으로 만들어 집에 두면 재액을 막는다는 소문이 나게 됐고 재액 예방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을, 대개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나는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말한다. "이 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대안의학자이자 작가인 에모토 마사루(1943-2014)는 좋은 말과 나쁜 말에 반응하는 물의 결정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을 냈다. 좋은 말에는 물의 결정체가 선명하고 온전한 육각형의 모습을 띄었고, 나쁜 말에는 불투명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 물없는 곳(것)이 없으니(우리 몸도 70%가 물이다), 좋은 말은 그 대상을 선명하고 온전하게 만들 것이고, 나쁜 말은 그 대상을 불투명하고 일그러지게 만들 것이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증적 증거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책을 읽고 실험을 해봤다. 교실에 동일한 물을 담은 두 비이커에 양파를 놓고 한 쪽에는 '좋아' 한 쪽에는 '나빠'라는 라벨을 붙였다. 학생들에게 '좋아' 쪽에는 좋은 말을, '나빠' 쪽에는 나쁜 말을 하게 했다. 근 한 달 가까이 진행했는데,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좋아' 쪽 양파는 싱싱한 반면, '나빠' 쪽 양파는 썩은 것.『물은 답을 알고 있다』출간 당시 의사과학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실험을 통해, 나는 에모토 마사루의 주장을 믿게 되었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 소이이다.


「척주동해비」는 동해를 위로하는 좋은 말이다.「척주동해비」가 세워진 후 조수 피해가 없어졌다는 것을 완전히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난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 좋은 글은 그것에 반응하는 대상을 순화시킨다.「척주동해비」의 저 찬송 진혼문이 동해의 조수를 순화시켰을 거라고 굳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한자가 많다. 핵심적인 두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瀛은 氵(물 수)와 嬴(가득할 영)의 합자이다. 육지를 가득 둘러싼 끝 모를 물이란 뜻이다. 바다 영. 신선이 사는 섬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이 섬은 동해에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 신선이 사는 섬 영. 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瀛表(영표, 해외), 瀛海(영해, 큰 바다) 등을 들 수 있겠다.


邈은 辶(걸을 착)과 貌(모양 모)의 합자이다. 왕래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貌는 음(모→막)을 담당한다. 멀 막. 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邈然(막연, 근심하는 모양 혹은 아득한 모양), 邈志(막지, 원대한 뜻) 등을 들 수 있겠다.


척주동해비」는 한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 파괴에 대해서는 설이 구구하다. 탁본을 구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그 소임을 해야 했던 이들이 귀찮아 파괴했다는 설도 있고, 조수로 파괴됐다고 설도 있고, 정적(政敵)이 파괴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에 척주동해비」가 파괴된후 조수 피해가 다시 생겼고, 복원되자 다시 멎었다고 한다. 파괴가 이 비의 신비성을 더하게 해준 셈이다. 


미수 허목의 글씨는 미전체(眉篆體)라고 하는데, 그의 전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계(耳溪) 홍양호(洪養浩, 1724-1802)는「척주동해비」의 전서 글씨에 대해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큰 바다와 같고, 그 소리가 노도와 같아 만약 바다에 신령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질 것이니,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라고 평했고, 현대의 서예 평론가들도 조선적인 전서체를 선보였다고 평한다. 그러나 역시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기벽한 필체이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 허목의 성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어쩌면 그런 성정이었기에 저런 주술성을 지닌 비문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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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 - 2018) 선생의 논어 백가락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자신이 대학을 다닐 적에는 교수들이 학생을 성인으로 깍듯하게 대했는데, 자신이 교수가 되어 대학에 들어와 보니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다른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애 취급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선생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1950년대이고, 교수를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나는 1980년에 대학을 다녔다. 선생의 경험을 빌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학과에는 학생 이름에 꼭 를 붙여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계셨다. 황병기 선생의 경험담에 의거하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지만 황병기 선생의 대학 시절 여풍(餘風)이 잔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부분적인 경험이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나는 90년대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90년대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지 못한다. 추정만 할 뿐이다. 황병기 선생이 대학에서 정년한 것이 2001년이니, 선생의 언급을 빈다면, 여전히 교수들은 학생을 애 취급했을 것이고 내가 경험했던 여풍도 완전히 사라졌을 것 같다.

 

그러면 2000년대 교수들은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사진은 어느 대학의 홍보 문구이다. 이 대학에서 강조하는 교육 5계명이란다.

 

● 수업 중 학생의 질문이 엉뚱해도 무안주지 않기

● 학생과 상담할 때는 마칠 때까지 웃으며 공감하기

● 교수가 가는 길은 사제동행의 길임을 잊지 않기

● 좋은 교육은 훌륭한 연구와 함께 함을 잊지 않기

● 교육은 항상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수행하기

 

이 교육 5계명은, 가혹하게 말하면, 두어 글자만 바꾸면 초등학교에 어울릴만한 문구이다. 2000년대 교수들이(대학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이 역시 부분적인 사례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대학생이면 법적으로 엄연한 성인이다. 성인이라도 학생의 신분이니, 따뜻하게 이끌어줘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대학을 나오면 곧바로 사회생활이란 전쟁터로 들어간다. 강인하게 단련시켜도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말지인데 따뜻한 보호로 일관한다면 그가 과연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따뜻한 이끔이 외려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릇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누구든지 대접받은 대로 행동하게 된다. 어른 대접하면 어른답게 행동하고, 아이 대접하면 아이처럼 행동한다. 성인이 된 대학생을 애 대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대학 교육이 소수 정예에 한정되던 시대와 다중 보편화된 시대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 학교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듯한 구호學生第一(학생제일) 創業最强(창업최강)’은 공허하게 들린다. 초등학생처럼 보살핌을 받은 학생이 과연 험난한 창업을, 그것도 최강의 창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낯선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의 변형, 칼 도)(곳집 창)의 합자이다. 칼에 맞아 난 상처란 뜻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곡식 창고에서 곡식이 새 나오듯 피가 흘러나오는 곳이 상처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창. ‘비롯(처음)’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상처에서 피가 나온 시점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 비로솔 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創傷(창상), 創設(창설)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종이나 북을 거는 거치대를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톱니 모양의 거치 부분을 표현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받침대를 표현한 것이다. ‘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종이나 북을 거는 일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일 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業務(업무), 事業(사업) 등을 들 수 있겠다.

 

(의 약자, 무릅쓸 모)(취할 취)의 합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취한다란 의미이다. ‘가장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가장 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最高(최고), 最低(최저) 등을 들 수 있겠다.

 

본의 아니게 한 대학을 폄훼하는 말을 했다. 혹 이 대학에 관계된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적잖이 언짢을 것 같다. 이 대학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으며 단지 현 대학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한 사례로 든 것 뿐이니,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다소 구태의연하지만 위 교육 5계명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교수는 교수답게 학생은 학생답게[師師弟弟]

 

구체적인 요목을 제시하지 않아도 이 속에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여담. 황병기 선생의 논어 백가락은 내가 꼽는 최고의 논어 해설서이다. 공자는 정치가이자 철학자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최고의 실력을 보지한 분야는음악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국을 떠돌다 실패한 뒤 고국 노나라로 귀국하여 한 말이 내가 돌아온 뒤 노나라 음악이 바로 잡혔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에서 논어를 제대로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나 정치가보다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이런 점에서 황병기 선생은 논어를 해설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인데, 이분이 논어해설을 했으니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선생의 생애 후반부에 쓴 것이기에 더더욱 믿음직스럽다. 논어가 심심하여 해설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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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인간, 사림인 사이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 속에 있을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영웅이라도 예외가 없다.


강감찬(姜邯贊, 947~1031), 동북아의 강자로 떠오른 거란의 2, 3차 침입을 막아내 누란의 위기에 있던 고려를 구한 영웅이다. 다양한 민간 설화가 만들어질만큼 민중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외로움에 시달렸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사진(서울 관악구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인 낙성대에 전시된 영인본)은 강감찬 장군의 시이다. 활달한 필체가 돋보여 장군의 기상이 어떠했을지를 가늠케 한다. 필체만 보면 도무지 외로움이라곤 모를 사람같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활달함과 달리 내용은 너무도 쓸쓸하다.


孤鶴寵衛軒 고학총위헌   외로운 학은 위의공의 총애를 받았고

雙鴦入毛論 쌍앙입모론   원앙 한쌍은 모공의 지우를 입었지

秋風無限恨 추풍무한한   스산한 가을 바람 한없는 아쉬움은

不能共一尊 불능공일준   술 한잔 함께 할 이 아무도 없는 것


혼자 있든 둘이 있든 새[鳥]조차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사람인 자신은 아껴주는 이가 하나도 없어 외롭다고 말했다. "술 한잔 함께 할 이"란 그를 아껴줄 사람을 말한다.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얼마나 외롭겠는가. 화려한 찬사가 넘칠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갔을 터이다. 영웅은 人間이고 싶었던 것이다.


장군의 추모(醜貌)는 익히 알려져있다. 체구도 작았다고 한다. 민간 설화에 의하면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고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형상이었다고 한다. 과장은 있겠지만 추모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혹 이런 추모가 그를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게 한 요인은 아니었을까?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외양과 내면은 대개 일치한다. 물론 불일치하여 실망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놀라움을 안겨주는 경우 또한 있다. 장군은 후자쪽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추모는 사람들 사이에선 비호감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추모 탓에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장군은 외로움에 시달렸던 것 아닐까 싶다.


성형 수술에 대해 오랫동안 거부감을 가져왔다. 타고난 천품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본 것. 그런데 장군의 시를 읽고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오죽 사람 속에 있고 싶으면 성형 수술을 할까 싶은 것. 외로움을 떨치고 人間이고 싶어 몸부림치는 그 행동을 굳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장군도 기꺼이 동의하실 것 같다.


시 한편을 가지고 장군에 대해 무리한 해석을 했다. 관련 자료를 읽어본 바 없기에 필시 오류가 있을 터이다. 읽는 분들의 양찰(諒察)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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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떠나가는 배 / 거친 바다 외로이 / 겨울비에 젖은 돛에 /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 언제 다시 오마는 / 허튼 맹세도 없이 / 봄날 꿈 같이 / 따사로운 / 저 평화의 땅을 찾아 / 가는 배여 / 가는 배~여 / 그곳이 어드메뇨 / 강남길로 해남길~로 / 바람에 돛을 맡겨 /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 저기 멀리 / 떠나가~는 배


정태춘의 노래 '떠나가는 배' 1절이다. 저 '떠나가는 배'가 닿고자 하는 따사로운 평화의 땅은 어디일까? 인적없는 무인도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고통은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인적없는 무인도야 말로 따사로운 평화의 땅이 아니겠는가. 무인도는 황폐함의 한 상징이지만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사진은 「파수도(波水島)」라고 읽는다. '파도치는 섬'이란 뜻이다. 파수도는 안면도에 산재하는 무인도 중의 하나로, '내파수도(內波水島)'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동백나무 군락과 천연 뭉돌(둥근 자갈) 방파제로 유명하다. 과거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 정박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안면도 가는 길에 찍었는데, 얼핏보면 횟집 간판처럼 보이지만 물류업체 간판이다. 


안면 사람들은 이 섬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이곳까지 기름띠가 번졌는데, 무인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배를 타고 가서 기름띠를 제거했다고 한다.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혹 안면 사람들은 이 무인도를 저 '따사로운 평화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波와 島가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波는 氵(물 수)와 皮(가죽 피)의 합자이다. 몸의 바깥 부분인 가죽처럼 외부로 용솟음쳐 흘러가는 물결이란 의미이다. 물결 파. 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波濤(파도), 波高(파고) 등을 들 수 있겠다.


島는 山(뫼 산)과 鳥(새 조) 약자의 합자이다.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고지대[섬]란 뜻이다. 山으로 뜻을 표현했다. 鳥는 음(조→도)을 담당한다. 섬 도. 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島嶼(도서), 孤島(고도) 등을 들 수 있겠다.


'떠나가는 배'를 타고 '따사로운 평화의 땅'을 찾던 정태춘은 파수도같은 무인도에 안착하지 않고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현실에 도로 안착한다. 가요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비롯 이른바 사회 변혁을 위한 문화운동에 헌신한 것. 이상은 바로 현실의 이면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도가 황폐함의 상징이자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안면 사람들이 파수도를 그저 마음의 귀향처로 삼을 뿐 가서 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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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 한 분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서울 시장 박원순. 대의(大醫)는 세상을 치료하는 이라 했다. 평생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애써 온 분이니 그를 의사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듯 자신의 아픔도 치유하면 될 터인데, 성급히 생명을 버린 것이 너무 안타깝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대의도 자신의 아픔은 치유할 줄 몰랐던가 보다.


그의 죽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맹자가 말했듯, 죽음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것도 있기에 때로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기도 한다. 박원순 시장에게 그것은 신뢰와 명예의 상실이었을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그것을 송두리째 잃게 했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타깝다. 정작 죽어야 할 자들은 끝까지 살아, 그것도 떵떵거리며 사는 것과 대조하면 더더욱 그렇다.


사진은 제생의세(濟生醫世)’라고 읽는다. 문구 밑에 나온 것처럼 일체의 생령을 도탄으로부터 건지고 병든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원불교의 종지(宗旨), 불교의 자비나 유교의 인 기독교의 사랑과 같은 유의 말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함유한 특징이 있다. 상기(上記) 종지들은 주로 정신적 구원에 치중되어 있지만, 제생의세는 물질과 정신의 구원 양면을 지향하고 있는 것. ()는 물질적 구원, ()는 정신적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교조(敎祖)들의 모습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상기 종지를 내건 교조들은 포교를 우선했지만, 원불교의 교조 박중빈은 포교보다 간척지 개간을 우선했다. 정신적 구원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는 물질적 구원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질적 구원을 정신적 구원에 비겨 결코 낮게 보지 않은 특별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재생의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한 세상일 터이다. 그것은 확실히 대의의 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소의(小醫)도 대의와 다를 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 것이니, 한 사람을 치유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치유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일 터이다(사진은 원불교 계통 제약회사에서 만든 약 포장지에서 찍은 것이다).


아주대 외상치료센터 소장이었던 이국종 교수는 의대생들이 외과를 기피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힘들고 보수도 적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의대생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보수도 많은 성형외과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의사도 사람이니 덜 힘들고 더 많이 얻는 것을 싫어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의사마저 일반인과 똑같이 덜 힘들고 더 많이 얻는 것을 선호한다면 우리 사회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치료하기 쉬운 병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치료할 때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이 자신이 하는 일은 결코 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점을 크게 깨달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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